눈을 뜰 수 없을 정도의 바람이 매몰차다/집마다 문을 걸고 놀란 눈을 뜨고 있다/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아귀힘에 맥 놓았다//거센 소용돌이에도 숨구멍은 있게 마련/그 숨구멍 속에다 내 숨소리를 얹혀/휘돌이 맥을 잡는다, 주리를 잡아 튼다//내가 잡은 아귀힘으로 혼돈을 잠재우고/광픙에 휘날리던 꽃들이 활짝 웃는 날/한 바퀴 돌아온 달도 만월로 떠서 비추리

「오늘의 시조」 (2021, 제15호)

이승현 시인은 충남 공주 출생으로 2003년 유심 신인상 시조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빛, 소리 그리고’, ‘사색의 수레바퀴’ 등이 있다.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하고 진솔한 눈길로 말미암아 그의 시편은 잔잔한 감동을 안긴다. 어떻게 살아야 올곧은 길인지 나직이 일러주곤 한다. 이 점은 타고난 품성에 기인하기도 하겠지만, 부단한 담금질과 절차탁마가 뒷받침 됐기에 가능한 일일 터다. 시조문단에서 그는 시조문학의 발전을 위해 앞장서서 일하면서 열정적으로 창작의 길을 걷고 있는 시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코로나 백신’은 팬데믹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작품을 통해 잘 말하고 있다.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바람이 매몰차서 집마다 문을 걸고 놀란 눈을 뜨고 있다. 이것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아귀힘에 맥을 놔버린 사태다. 그러나 화자는 거센 소용돌이에도 숨구멍은 있게 마련이라면서 그 숨구멍 속에다 내 숨소리를 얹어서 휘돌이 맥을 잡고 주리를 잡아 틀고 있다. 바이러스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방식이다. 그리해 마침내 내가 잡은 아귀힘으로 혼돈을 잠재우고 광풍에 휘날리던 꽃들이 활짝 웃는 날을 맞을 것이라는 강렬한 열망을 보인다. 그 어떤 힘으로도 굽힐 수 없는 강인한 의지의 발현이다. 그때쯤이면 한 바퀴 돌아온 달도 만월로 떠서 비출 것이라는 희망의 전언을 들려준다. 그야말로 시조로 쓴 ‘코로나 백신’이다. 의료계에서 개발한 약만 백신이 아니라는 것을 자각케 한다. 이러한 시각은 자연으로부터 온 상상력 덕분이다. 모든 문제는 결국 자연에서 찾아야 하고, 자연의 힘이 질병을 치유케 하리라는 점을 ‘코로나 백신’은 환기시켜주고 있다. 셋째 수에 전면 배치된 꽃과 만월이 그 핵심 이미지다. 우리 시조가 여기까지 왔다.

또 다른 생명사랑을 용해한 ‘유기견 분양소’에서 시든 꽃들이 서로 껴안고 숨 쉬는 곳이자 구름도 발소리 죽여 빗물 떨구며 가는 곳이면서 슬퍼진 검은 눈동자 촉촉하게 젖는 곳이라고 유기견 분양소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곳은 젖은 땅에 앉지도 서지도 못하는 곳이고, 한 줌 햇살이라도 얼비치면 축복인 곳이면서 버려진 인정을 부르며 목쉰 울음 우는 곳이기도 하다. 여기까지는 6행이 모두 ‘곳’으로 각운 처리되고 있다. 의도적이다. 애절한 상황을 도드라지게 하고자 하는 시적 장치인 셈이다. 아리고 서글펐던 정은 멀리 떠났지만 새롭게 찾아온 인정과 따뜻한 눈망울에 결국은 우화의 껍질을 벗고 천지가 개벽하는 곳, 이라고 끝으로 곳을 한 번 더 끝자리에 놓고 있다. 일찍이 고려시대 문인 이규보는 ‘슬견설’을 말한 바 있다. 무릇 피와 기운이 있는 것은 사람으로부터 소·말·돼지·양·벌레·개미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살기를 원하고 죽기를 싫어한다. 그런즉 개와 이의 죽음은 같은 것이다. 이와 같은 이규보의 ‘슬견설’은 생명에 대한 편견이나 차이를 두지 않음에 대한 확고한 견해다. 사물을 그 대상이 갖고 있는 외향이 아닌 본질에 의미를 두고 있는 태도다.

시조를 통해 코로나 백신을 맞고, 유기견 분양소를 살피며 이 좋은 봄날 자신을 더욱 애지중지 여길 일이다. 또한 이웃을 자주 돌아보며 생명 사랑을 실천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이정환(시조 시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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