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철환 객원논설위원
▲ 오철환 객원논설위원
오철환

객원논설위원

부동산광풍이 쓰나미가 돼 온 나라를 휩쓸고 있다. 하인리히의 법칙에 따르면 이는 예고된 재앙이다. 대형 사고는 그 전에 그와 연관된 자잘한 사고와 징후가 여러 번 나타나는 법이다. 정부는 부동산 대책을 스물 대여섯 번씩이나 쏟아냈지만 그 맥을 적시에 제대로 짚지 못하고 오히려 증상만 악화시켰다. 잘못된 부동산정책에 대해 시장이 여러 번 빨간 신호를 보냈지만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작금의 대형 쓰나미는 ‘시장의 실패’가 아니라 ‘정부의 실패’라는 의미다.

부동산 쓰나미가 정치권을 초토화시키자 정부는 부랴부랴 가능한 모든 방법을 총망라한 부동산대책 종합세트를 내놨다. ‘부동산 투기근절 및 재발방지대책’이란 무시무시한 정책믹스를 공표했다. 예방, 적발, 처벌, 환수 등 전 단계에 걸친 포괄적 투기근절 시스템을 구축하고 법과 제도 그리고 행태에 이르기까지 제로베이스에서 근본적으로 개혁함으로써 부동산투기와 부패를 발본색원하고 국민신뢰를 회복하겠다는 당찬 계획이다. 구체적 내용을 보면 소름이 돋을 만큼 섬뜩하다.

예방만 확실히 하면 적발, 처벌, 환수는 사족이거나 부차적이다. 예방에 주력한다고 하고선 실상은 그렇지 않다. 촘촘한 그물망을 만들어 옴짝달싹도 못하도록 옥죄는 것으로 일관하고 있다.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 교각살우 정도를 지나 모기 잡으려고 미사일을 쏘는 꼴이다. 그렇게 한다고 목적 달성을 장담하기도 어렵다. 모기엔 모기약 스프레이 정도가 적당하다. 그 이상은 사람 잡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미사일을 쏘면 모기도 못 잡고 애꿎은 사람만 작살난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울 순 없다.

공기업 임직원을 포함한 전 공직자로 재산등록 대상을 확대하는 것만 해도 획기적인 충격요법이다. 부동산실명제와 금융실명제가 뿌리 내린 상황에서 전 공직자의 재산등록을 제도화하면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재산을 불리거나 숨기는 일은 사실상 어려워진다. 그것만으로도 과할 수 있다. 부동산 신규 취득까지 제한한다면 공직자의 부동산투기는 아예 불가능하다. 감정적 과잉대응 내지 재산권 침해 소지마저 있다. 의지만 있다면, 공직임용 때 재산을 등록하고 승진 때마다 재산상태를 검증하는 정도로도 목적달성이 가능하다.

부동산 거래분석을 전담하는 부동산거래분석원(가칭)을 만들겠다는 것은 그 취지는 십분 이해하지만 구색 갖추기 용이거나 생색내기 용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국세청과 한국부동산원 등 기존 조직을 활용하는 방법도 가능하다. 위기를 틈타 자기들 자리 만들기에 나선 것처럼 비쳐져서 마음이 불편하다. 사건만 발생하면 조직을 새로 만들어 세금 쓸 일만 궁리하는 일은 이젠 청산해야 할 폐단이다. 하는 일마다 사사건건 물고 늘어진다고 입을 내밀 수 있겠지만 그것은 스스로 신뢰를 무너트린 인과응보다.

사후약방문일지라도 그 대책을 내놓는 것은 맞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의 졸속 처방이거나 감정적으로 과잉대응을 해선 곤란하다. 삼풍백화점 붕괴 이후 시설물안전진단이 매년 의무화돼 건물주에게 부담과 책임을 돌렸지만 이십 수년이 지난 지금 있으나마나한 형식적인 규제로 전락했다. 세월호 침몰 이후 정부조직에 국민안전처를 신설하고 지자체마다 재난안전국을 만드는 등 부산을 떨었지만 그 결과는 ‘태산명동 서일필’ 격이다. 충남 아산 어린이교통사고 사망사건이 발생하자 정치권은 여론에 떠말려 일명 ‘민식이법’을 서둘러 통과시켰다. 어린이보호구역 내 주정차전면금지, 제한속도 30키로 및 위반한 자에 대한 처벌 등이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여론이 대세다. 그 외에도 졸속대처 사례는 차고 넘친다.

강력한 정부대책을 곧이곧대로 시행한다고 당초 의도한 목적을 달성한다고 장담할 순 없다. 편법이나 빈틈을 찾아내는 재주가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공직자가 브로커에게 정보를 판다거나 추적 불가한 예술품이나 보석, 비트코인 등 의외의 교란변수가 등장할 수 있다. 또 부동산투기와 부패를 발본색원하는 일이 정당하다는 이유만으로 기본권침해를 허용해도 된다는 건 아니다. 자유권과 재산권은 오랜 투쟁을 통해 어렵사리 획득한 헌법적 가치다. 상충하는 가치를 조정하고 균형 잡힌 방안을 찾는 일이 결코 만만치 않다. 허나 감정대로 대응해선 답이 없다. 급할수록 돌아가는 지혜가 아쉽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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