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시욱
▲ 김시욱
김시욱

에녹 원장

미얀마 군부 쿠데타와 반대시위가 연일 국제뉴스로 전해지고 있다. 미얀마 민주 수호세력의 세계를 향한 간절한 외침은 400여 명의 사상자를 내면서 더욱 간절해지고 있다. 국가고문 아웅산 수치와 미얀마의 대통령 윈 민 및 여당 지도자들이 축출된 뒤 가택 연금됐으며 체포된 사람들만 약 2천여 명이다. 미얀마 시위대들은 각국에 지원을 요청했고, UN에 평화유지군을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 미국, 영국, 프랑스를 비롯한 세계 강대국들의 쿠데타 규탄과 여러 국가들의 우려의 표명에도 불구하고 1년간의 비상사태를 선언한 미얀마군은 수도 양곤과 여러 도시에서 무력 진압을 계속하고 있다. 이후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긴급 소집, 미얀마군의 행동을 규탄하고 억류된 사람들을 석방하며 민주주의를 복구할 것을 촉구하는 성명의 초안이 나왔지만, 최종적 의견 결정에 이르지 못했다. 본국에 성명 초안을 보내 검토해야 한다는 중국과 러시아 대표의 주장으로 15개국 회원국 모두의 지지라는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까닭이다. 국제법과 그 실제적 효력의 한계가 드러나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미국 백악관의 쿠데타 세력에 대한 경제 제재 선언이 오히려 실효성을 담보하는 수단으로 보인다. 국내 문제로 내정간섭을 주장할 수 있는 부분이라 더욱 그러하다.

미얀마 군부 쿠데타는 지난 날 우리를 떠올리게 한다. 5·16 군사 쿠데타로 시작된 군사 정권은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대통령의 사망과 전두환, 노태우를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의 집권으로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된다. 신군부의 집권으로 인한 민주주의의 후퇴를 우려한 반대 진영과 민주 운동세력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민주화 운동을 시작한다. 1980년 5월, 서울을 비롯한 전국에서 집회와 시위가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광주에서는 전남대와 조선대 학생들의 주도로 시국성토대회가 연일 개최됐다. 학생들은 광주 도심으로 진출했고, 시민들과 연합해 대규모 가두 정치집회를 개최하기에 이른다. 시위가 확산되자 신군부는 공수부대 투입과 전국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전국에서 대학생들과 재야인사들을 연행하기 시작했다. ‘피로 얼룩진 광주 금남로’로 표현되는 광주민주화 운동의 모습이었다.

1985년 2·12 총선은 야당의 승리였다. 야당은 지역별 개헌추진본부 결성식을 통해 군사 독재의 퇴진과 민주헌법을 쟁취하기 위한 범국민 서명 운동을 전개하고 정국을 직선제 개헌 국면으로 몰고 갔다. 당시 집권당이었던 민정당 당사와 연수원이 점거되고 학생들의 분신, 투신자살이 이어졌다. 1987년 ‘책상을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라는 서울대생 박종철 고문치사 은폐 사건과 연세대생 이한열의 최루탄 사망사건은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넥타이 부대’라고 불린 직장인들과 중산층 시민들이 직접 시위 대열에 참여했으며 일부 시위대는 삭발과 혈서 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결국 1987년 6월29일, 노태우 민정당 대표는 기자회견을 갖고 직선제 개헌 요구를 받아들였다. 피로 얼룩진 군사 정권에 대한 저항운동과 민주화 투쟁의 결실이었다. 이후 김영삼 정권이 들어서면서 5·16 쿠데타 이후 32년간 지속된 군사 정권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서울과 부산에서 시행되는 시장 보궐선거의 후보자와 여야 진영 모두는 그 시대의 ‘살아있는’ 증인들이다. 그 누군가는 죽어간 친구를 가슴에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직까지 ‘행방불명자’로 등록된 누군가의 가족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선택적 정의’만 살아있고 국민을 위한 정치를 부르짖지만 정작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선거에서의 득표를 위한 국민이 필요할 뿐 목숨을 내 걸고 민주를 갈망하던 국민을 염두에 둔 정치인은 없어 보이는 것 지나침일까. 민주세력이라던 그들이 정치인이 되는 순간 이미 기득권층이 되고 지지기반을 위해 ‘편가르기’에 앞장서고 있다. 더더구나 현 집권여당과 정부는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정권이다. 소통 부재의 독단과 국정 농단의 비선 실세를 끌어내리고 오직 국민만을 바라보고 나가겠다는 정부가 아니었던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의 거부와 수많은 정책의 실패에도 ‘내 편’을 끝까지 안고 간 현 정부의 독선과 아집은 전 정권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일주일 뒤에 치러지는 선거는 민주당 당적을 가졌던 시장들의 성추행으로 발생한 보궐선거다.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잘못으로 보궐선거가 치러질 경우 후보자를 내지 않겠다’는 정당의 당헌마저 바꾸고 후보자를 내고 있는 집권당이기에 오만함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대통령과 정당 지지도가 30%이하로 떨어지고 나서야 대국민 사과에 나서는 그들에게 우리는 안타까움을 넘어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럼에도 선거결과를 낙관하는 집권당의 현실인식 앞에 차라리 절망감이 앞선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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