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철환 객원논설위원
▲ 오철환 객원논설위원
오철환

객원논설위원

한 일간신문의 시사만평으로 인해 뜻하지 않은 풍파가 거세게 일고 있다. ‘집 없이 떠돌거나 아닌 밤중에 두들겨 맞거나’라는 제목의 만평 코너에서 부동산 실정과 세금폭탄으로 인한 서민의 고통을 신랄하게 꼬집은 한 컷짜리 만화에 대해 5·18민주화운동 관련 단체가 불쾌감을 갖고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항의 청원을 올린데 이어 주한교황청대사관과 한국신문윤리위원회에 강력한 조치를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다. 해당 신문사 앞에서 항의 시위를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법적인 조치도 촉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재산세’, ‘종합부동산세’, ‘건강보험료’ 등을 의인화한 세 명의 무장군인이 땅바닥에 쓰러져 웅크리고 있는 ‘9억 이상 주택보유자’를 몽둥이로 때리는 모습의 그림이다. 누가 봐도 만평의 목적은 국정 비판이다. 부동산가격 폭등과 부동산공시가의 급격한 인상으로 인해 주택보유자에게 세금폭탄이 떨어진 상황을 날카롭게 비튼 기발한 패러디다. 가혹한 세금과 폭정은 호환마마보다 무섭다는 점에 착안한 듯하다. 전달하고자 하는 주 메시지는 명약관화하다.

민주화운동 관련 단체는 무장군인은 5·18 당시 가혹하게 진압하던 공수부대원을 연상시킨다면서 해당 만평은 5·18 민주화운동을 폄훼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 주장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자라를 보고 놀란 가슴은 솥뚜껑을 보고도 놀란다지 않는가. 게다가 그 희평이 ‘트레이싱(tracing) 방식’의 그림이라면 그 원본이 5·18 사진일 가능성이 크다. 일반인들이야 눈치 채지 못하겠지만 관련 당사자들은 그 사실을 몰라 볼 리 없다.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릴 그 사진을 베꼈다면 관련자의 기분이 좋을 리 없다. 그렇긴 하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 목적이 엄혹한 현실고발에 있고 5·18과 전혀 무관하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정책의 실패로 부동산가격이 폭등해 집 없는 서민과 청년이 절망하고 있고, 아파트 하나 겨우 장만한 사람에게 재산세를 대폭 인상함으로써 민심이 폭발하고 있다. 설상가상, 서울의 평균 아파트시세가 11억 원을 웃돌자, 9억 원 이상 1가구 1주택 서민이 징벌적 성격의 종부세까지 내야하는 상황이 도래했다. 은퇴자라면 더욱 난감하다. 세금폭탄은 목줄을 죄는 폭압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저간의 사정을 감안하면 설사 5·18 사진을 의식적으로 끌어와 썼다 하더라도 악의적으로 해석하기엔 무리가 따른다. 폭압적인 세금폭탄을 비유할 악랄한 캐릭터로는 계엄군이 제격이고, 세금폭탄을 맞아 궁지에 몰린 억울한 서민을 표현하는 캐릭터로는 유린당한 시민이 적격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민주화운동 관련자가 해당 일간신문을 구독하리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터이고, 혹시 보더라도 원본 사진을 연상해내지 못하거나 그 선의를 이해해주리라고 안이하게 생각한 점은 결정적인 실책이다.

일간신문의 만평에서 완벽을 기대할 순 없다. 마감시간에 대한 압박이 과중하다. 비판할 만한 시사뉴스를 매일 찾아내고 이를 간결하고 세련되게 가공해 촌철살인의 메시지를 표현하는 작업은 쉽지 않다. 게다가 이를 일목요연하게 한 컷의 그림으로 그려낸다는 것은 뼈를 깎는 고행이다. 시사만평은 비꼼과 비틂이 그 본질이고, 풍자와 익살이 그 생명이다. 그 대상으로 채택됐다 하더라도 타산지석으로 삼아 성찰하면 그만이다. 아무런 제재나 처벌이 없다. 그 의도나 목적과 무관하게 단지 수단으로 채택된 것에 대한 과민 반응은 실익이 없다. 지나치면 역효과가 난다.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는 오랜 세월 투쟁한 끝에 획득한 기본적 인권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국민의 알권리 차원에서 보더라도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으면 위정자를 견제·감시할 수 없고 주인 된 소임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이들이 무한정 보장되는 건 아니다. 국가안전보장이나 공공복리에 반하지 않아야 한다는 한계가 존재한다. 그렇지만 ‘집 없이 떠돌거나 아닌 밤중에 두들겨 맞거나’ 희평은 한계를 일탈했다고 보기 힘들다. 가리키는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만 나무랄 수 없다. 손가락에 찔린 옛 사연만 되뇌며 가리키는 사람만 탓한다면 화풀이는 되겠지만 호응은 고사하고 싸늘한 시선만 받을 터다. ‘나 홀로 블루스’를 자초할 수 있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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