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시안
▲ 오시안
오시안

한국영화기획프로듀서협회 상임이사

만적은 몸을 불태워 부처님께 바칠 때 비가 쏟아지는데도 불길이 치솟았으며, 금물을 입힌 등신불로 변신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뒤 그의 소신공양이 깃든 나무를 각별한 마음으로 보게 됐다. 경북 울진군 소광리 미말에 있는 검댕이 나무였다.

키가 6m나 되는 이 벼락 맞은 나무를 하마터면 흑탄으로 볼 뻔했다. 나무 주위에는 낙엽들이 에워싸고 있어 길을 찾기도 쉽지 않았다. 두 팔을 벌려 안아 보니 한 아름이나 됐다. 액이 서린 듯한 이 나무의 수령은 백여 년이 된 것 같았다. 하지만 모습이 일그러지지 않아 깊고 검지만 어둡지도 않다. 그야말로 우람한 목불(木佛)이다.

이 목불이 벼락을 맞기 전에는 주변에 큰 나무가 없어 그들의 희생도 혜택도 받지 못했을 것으로 보인다. 어울리는 지기들도 없어 영양분을 혼자 궁리하는 것이 일과였을 것이다. 추운 겨울날, 잎과 가지들이 다 뜯겨나가고 흙 위에 덩그러니 드러난 벌거숭이였다.

스스로 깊은 성찰에 잠겨 가지를 쳐내던 이 나무는 액을 몸 안으로만 받았던 것일까. 백년이나 된 이 나무의 역사적인 순간을 나름으로 상상해 보기도 했다.

소신공양으로 껍질은 허물어지고 다 타버려도 나무의 본심은 추호도 흔들리지 않았을 것 같다. 목불답게 고통을 굳힌 채 맺힘도 풀림도 없이 정적 그대로라 할 수 있다. 이 나무에는 그 누구도 금물을 칠해 주지는 않았다. 나무의 염으로 산이 밝으니 한 그루를 베면 열 그루를 심는 게 맞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 봤다.

소광리의 산길을 오른다. 다리의 힘이 풀린다. 이 산에 익숙한 사람들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지인들의 뒤도 제대로 따라갈 수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등신목의 불은(佛恩)을 받아서인지 하산 때는 내가 앞장을 섰다. 뒤를 돌아보니 지인들이 따라오고 있었다.

칠흑 같은 산길에서는 미로처럼 고달픈 삶이 보인다. 이런 때는 모든 게 다 내 잘못인 양 신경을 꺼버리자. 나무가 돼 성찰하자.

나쁜 세상 만난 걸 어쩌겠는가. 고개 숙이면 불목이 나타나 올랐던 산길을 무사히 내리도록 도와줬을 것 같다. 검댕이 등신목 앞에서는 잘 삭일 줄 모르는 마음이 자꾸만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나무는 종자가 흩어지면 뿌리가 썩는 하루나 몇해 살이 풀꽃들과는 다르다. 종자를 모두 날려 보내고 잎들도 다 떨군다. 심지어 벼랑 앞에서도 성찰을 잊지 않는다.

등신목을 멀리서 바라본다. 파릇파릇 돋아나는 생명들이 고개를 든다. 나무 한 그루의 삶이 숙연해지는 4월이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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