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일반

모서리는 서럽다/ 하외숙

그녀의 취미는 조약돌 줍기/ 뭇 섬에 다녀올 적마다 슬쩍슬쩍 갖다 옮긴 게/ 유리진열장 속에 섬들이 옹기종기 모였다// 늘 모서리에 붙어 앉는 그녀/ 책 귀퉁이도 접지 않는 그녀/ 날선 칼날로 싹둑싹둑 무를 써는 그녀/ 그녀가 바닷가 몽돌을 만나고부터 한없이 둥글어졌다// 예리한 눈빛, 오똑한 콧날이 세상의 중심이라 여기며/ 스케이트 날 세우듯 예각처럼 살았다/ 굽히고 꺾이면 지는 것이라 배웠다// 모서리는 자존심이라 되뇌던 그녀가/ 차르르 차르르/ 몽돌이 바닷물에 씻기는 소리에 맥없이 무너진 것이다

「그녀의 머릿속은 자주 그믐이었다」 (시와반시, 2021)

수석은 강가나 바닷가, 산 등 대자연에서 모양이나 문양, 색깔이 기묘한 돌을 수집해 집에 갖다놓고 감상하는 취미생활이다. 우리나라, 중국, 일본 등 동양 3국에서 주로 행해진다. 사람이 들고 옮길 수 있는 정도의 돌을 대상으로 하고 정원을 장식하는 큰 돌이나 바윗돌은 수석이란 용어를 쓰지 않는다. 어떤 형상을 닮거나 상징하는 돌은 신묘한 흥취를 유발한다. 수석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이나 인생의 깊은 진미를 발견하려면 성숙한 심미안과 창의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돌은 동호인에게 이해하기 힘든 가격으로 거래되기도 한다.

응마주색난석(鷹馬酒色蘭石)이라는 말이 있다. 10대엔 매, 20대엔 말, 30대엔 술, 40대엔 여색, 50대엔 난초, 60대엔 수석에 관심을 둔다는 의미다. 물론 억지로 짜 맞춘 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고개를 끄덕일만한 면도 분명히 존재한다. 나이가 듦에 따라 역동적이고 본능적인 것에서 정적이고 상징적인 것으로 선호가 바뀐다. 성에 눈뜨기 전인 청소년기에는 매와 말처럼 날쌔고 활발한 동물에 사로잡히고 성욕이 넘치는 청·장년기 시절엔 이성에 탐닉하며 움직임이 둔해지는 노년기엔 난초나 돌에 심취하는 식이다.

조약돌만 수집하는 취미도 큰 카테고리로 보면 수석으로 취급할 수 있지만 결이 조금 다른 뉘앙스를 풍긴다. 그냥 예쁘고 좋아서 수집하는 범주를 벗어나지 않고 거래대상이 되거나 취미의 유형으로 공식적으로 분류되는 정도는 아니다. 조약돌을 보고 즐기다 보면 조약돌의 함의를 우연히 깨닫게 된다. 거칠고 모난 돌도 오랜 세월을 겪으면서 비바람과 물결에 단련된다. 거친 표면이 부드러워지고 모난 모서리도 깎여서 둥글게 변모한다. 반들반들하고 매끄러운 표면이 매력적이고 아름답다.

나이가 차면 조약돌을 닮고 싶어진다. 젊고 패기만만하던 시절, 사소한 일에도 날을 잔뜩 세워 칼을 휘둘렀다. 늘 모서리에 붙어 앉았고 책 귀퉁이도 접지 않았다. 무를 써는 날카로운 칼날 같았던 사람이 자갈과 몽돌을 통해 인생을 깨닫는다. 모난 부분이 깎이고 갈리어 둥글둥글하고 반들반들하게 된다. 콧날을 세우고 매서운 눈빛으로 세상사를 재단하며 유난을 떨었던 기억이 부끄럽게 다가온다. 자존심이 과한 탓에 남과 부딪힌 적이 다반사였다. 끝없이 밀려오는 세월의 물결에 모서리는 둥글게 깎이고 자존심마저 맥없이 무너진다.

그렇다고 모서리가 없는 몽돌과 표면이 매끈한 자갈이 절대 선은 아니다. 모두 몽돌과 자갈일 필요는 없다. 날카로운 모서리를 간직한 모난 돌도 필요하다. 모난 돌이 모난 돌을 단련한다. 원만한 돌은 숙성된 결과일 뿐이다. 결국 자갈이 될지언정 처음부터 모두 자갈일 필요는 없다.

오철환(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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