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일반

붉은 신발/김진숙

넘어진 삶을 일으켜 다시 사는 이 봄날//당신은 돌아왔지만 당신은 여기 없고//바닥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보이는 길들//짐승 같은 시간들 바람에 씻겨 보내도//눈물은 그리 쉽게 물러지지 않아서//행불자 묘역에 들어 아버지를 닦는다//닦고 또 닦아내는 사월의 문장들은//흩어진 신발을 모아 짝을 맞추는 일//아파라, 동백 꽃송이 누구의 신발이었나

「정음시조」(2020, 2호)

김진숙 시인은 제주 출생으로 2006년 제주작가, 2008년 시조21 신인상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미스킴 라일락’, ‘눈물이 참 싱겁다’, 현대시조선집 ‘숟가락 드는 봄’ 등이 있다.

‘붉은 신발’의 배경은 제주 4·3사건이다. 비극의 제주 4·3 사건은 1947년 3월1일을 기점으로 해 1948년 4월3일에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넘어진 삶을 일으켜 다시 사는 이 봄날 당신은 돌아왔지만 당신은 여기 없고 바닥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보이는 길들, 이라는 첫 수에서 그러한 정황들을 잘 헤아릴 수 있다. 실로 그 일은 감당 못할 짐승 같은 시간들이어서 바람에 씻겨 보내도 눈물은 그리 쉽게 물러지지 않아서 시의 화자는 행불자 묘역에 들어 아버지를 닦는다, 라고 슬픈 울음이 밴 노래를 부르고 있다. 행불자 묘역은 누군가의 아버지, 아니 우리 모두의 아버지가 잠들어 있는 곳이다. 하여 그립고 그리운 아버지를 닦으면서 끓어오르는 아픔을 다독인다. 그런 후 닦고 또 닦아내는 사월의 문장들은 흩어진 신발을 모아 짝을 맞추는 일이라고 그 뜻을 간절히 되새긴다. 그것은 실로 흩어진 역사를 모아 짝을 맞추는 일이다. 4·3사건 그 당시 얼마나 많은 이들의 피에 젖은 신발들이 산지사방으로 흩어졌을까? 그날의 아픔을 과연 그 누가 씻어줄 수 있으랴? 끝으로 화자는 아파라, 동백 꽃송이 누구의 신발이었나, 하고 결구에서 마음 속 깊이 저미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화자는 동백꽃송이를 바라보면서 붉은 신발 즉 피에 젖은 아버지의 신발을 떠올렸던 것이다. 앞으로는 동백꽃을 바라볼 적마다 붉은 신발이 기억될 것이다. ‘붉은 신발’이 한 편의 진혼곡이기 때문이다

그의 다른 작품 ‘나는 자주 불안을 물어뜯었다’를 보자. 떠나지 못한 섬은 늘 바다를 맴돌았고, 한소끔 파도를 끓여 문밖에다 내걸면 하얗게 생의 노래는 자주 닻을 내렸다고 노래한다. 이어서 나는 늘 아비에게 가장 아픈 새끼손가락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면서 촛불 켠 소녀처럼 기도란 걸 처음 했던 것을 생각한다. 불안이 커지지 않게 물어 뜯곤 했던 밤이었다. 그리해 손톱과 불안 사이 불안과 결핍 사이 어둠을 갉아대도 이빨은 또 자라나서 남몰래 초승의 한 획 훔치고도 싶었다고 고백한다. 성장통증이 그만큼 컸던 것이다. 끝수는 잘근잘근 씹어대는 어제의 결심들이 혀 끝에 닿았다가 툭, 떨어져 달아날 때 그토록 뱉고 싶던 말 이름 석 자 아버지, 라고 맺고 있다. 화자가 자주 불안을 물어뜯었던 것은 아버지와 깊은 관련이 있었던 것이다.

사월에 세상의 모든 아버지를 생각해본다. 아버지의 자리는 늘 위태로웠다. 오래 전부터 역사의 전면에는 아버지가 서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니인들 그렇지 않았으랴. 더 모진 세월을 감당했을 것이다. 시인은 ‘붉은 신발’과 ‘나는 자주 불안을 물어뜯었다’에 아버지를 등장시켜서 개인적인 그리움과 더불어 역사의식을 일깨우고 있다. 하얗게 꽃 핀 산딸나무 곁을 지나며 더 이상 이 땅에 비극이 없기를 간절히 비는 아침이다.

이정환(시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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