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일반

변화하려면 두 배 더 빨리 뛰어라

박운석
박운석

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

토끼를 따라 굴 속으로 들어갔다가 땅 속 이상한 나라에서 모험을 겪고 원래 세계로 돌아온 일곱 살 소녀 엘리스는 6개월 후 다시 거울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거대한 체스판의 세계인 거울 나라에서 칸과 칸 사이를 누비던 앨리스는 붉은 여왕의 손에 이끌려 엄청난 속도로 달리기 시작한다. 붉은 여왕의 “빨리, 더 빨리”라는 재촉에 숨이 막힐 정도로 달렸지만 이상하게도 앨리스는 출발 장소인 나무 아래를 벗어나지 못한다. 한 사물이 움직이면 다른 사물도 그 만큼의 속도로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다. 의아해하는 앨리스에게 여왕은 “여기선 죽어라고 뛰어야 같은 장소에 있을 수 있어. 만약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면 최소한 두 배 이상 빨리 뛰어야 해.”

영국의 작가인 루이스 캐럴(Lewis Carrol)의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후속작인 ‘거울 나라의 앨리스’의 한 장면이다.

붉은 여왕이 주는 이 교훈은 미국의 진화학자인 베일른이 생태계의 평형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붉은 여왕 효과(Red Queen Effect)’라고 부르면서 널리 알려졌다. 계속해서 진화하는 경쟁 상대에 맞서 끊임없이 변화하지 않으면 결국은 도태되고 마는 현상을 설명할 때 동원되는 이야기다. 경영학에선 주로 적자생존 경쟁론을 설명할 때 유용하게 사용된다. 경쟁이 시장의 모든 기업을 강하게 만든다는 이론이다.

변화속도에 적응하지 못해 상대적으로 뒤처지고, 결국 도태된 세계적인 기업들이 이 이론을 증명해준다. 1990년대 전 세계적으로 ‘워크맨’을 히트시켰던 소니, 세계 필름시장을 주도하면서 세계 최초로 디지털 카메라를 개발했던 코닥, 세계 최초로 노트북PC를 상품화한 도시바, 메모리반도체 D램을 최초로 개발한 인텔이 그랬다.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을 선보이고, 가격 경쟁력을 갖추지 않으면 세계 최고라 하더라도 경쟁 기업에 뒤처져 무너질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붉은 여왕이 주는 교훈은 ‘이상한 거울 나라’나 생물학의 적자생존이나 경영학의 기업 경영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동화 속 붉은 여왕의 경고는 종종 현실이 돼 우리들 앞에 나타날 때가 많다. 지난해부터 폭등한 부동산 시장이 그렇다. 집 한 채를 장만할 돈을 마련하기 위해 젊었을 때부터 열심히 달려왔는데 집값은 어느새 저 멀리 가 있다. 심기일전, 다시 뛰어보지만 집값은 더 멀리 달아나 버렸다. 달려도 달려도 잡히지 않는다.

어차피 끊임없이 변하는 게 세상 이치다. 나 역시 숨이 턱 막힐 만큼 쉬지 않고 달리지만 겨우 출발과 같은 지점에 머물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내가 아무리 달려도 앞서가지 못한다는 데서 좌절감을 느낀다.

범위를 조금 넓히면 대한민국의 현실을 살아나가는 청년들이 이상한 거울 나라 속 앨리스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죽자 사자 뛰는데도 취업은 물론 결혼도, 내 집 마련도 점점 더 어려워지고만 있다. 게다가 기회는 평등한 게 아니라 박탈당했고, 과정은 공정한 게 아니라 졸속이었으며, 결과마저 정의롭지 못하다고 느낀 이들의 불만이 이번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로 표출됐다.

현실이 이런데도 여야정치권은 아직 두 배 더 빨리 달려야겠다는 생각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그나마 정신 차린 여당은 뒤늦게 초심으로 돌아가 반성하고 성찰하겠다고 하지만 두고 볼 일이다. 야당은 합당을 두고 힘겨루기에 들어간 양상이다.

‘제3의 물결’, ‘권력 이동’ 등 저서를 남긴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부의 미래’라는 책에서 집단별로 변화의 속도를 비교했다. 기업의 변화속도가 시속 100마일이라면 비정부조직인 NGO는 90마일, 가족은 60마일, 노동조합은 30마일, 정부는 25마일이었다. 충격적인 것은 학교가 10마일, 정치조직은 3마일이었고 법 조직의 변화속도는 고작 1마일이었다.

정치조직에 변화와 혁신을 맡겨뒀다간 대한민국이 제자리걸음을 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붉은 여왕의 경고를 되새긴다면 두 배는 더 빨리 달려야하는데 정치권은 과연 그럴 준비가 돼있는지 자문해볼 일이다. 동화에서 교훈을 얻는다면 사회의 전 조직이 지금이라도 당장 변화의 가속페달을 밟을 때다. 앨빈 토플러에게 묻는다면 분명 정치조직부터라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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