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현

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

선거는 돈, 조직, 바람에 의해 승패가 좌우된다. 세 가지 중 앞의 둘은 바람을 이길 수 없다. 한국의 선거는 이성보다는 감성이라는 습기를 머금은 바람이 당락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감성과 바람은 동전의 양면처럼 한 몸을 이룬다. 총선, 대선, 지방선거 등 모든 선거에서는 바람을 일으키기 위해 다양한 수단과 방법이 동원된다. 선거 캠페인에는 춤과 노래가 있다. 바람에 선행하는 유권자의 관심과 감성을 자극하기 위해서다. 춤과 노래는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 있는 무속적 상상력과 관계가 있다고 설명하는 학자도 있다. “무속적 상상력의 특징은 감성적 충동과 즉흥성에 있다. 여기서는 형식적 균형을 깨는 파격, 비대칭을 낳는 역동적 흐름이 관건이다. 무속적 역동성은 단순히 질서가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니다. 여기에 있는 것은 어떤 무질서의 질서, 비형식의 형식이다. 물론 이런 역동성은 비합리적 충동과 광신적 맹목으로 빠져들기 쉽다. 무속적 상상력이 통제 불가능한 광기로 번져갈 가능성, 이 끔찍한 위험성이 과거 한국문화의 진보와 좌절을 모두 설명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라고 서울대 김상환 교수는 말한다.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말이다.

최순실의 국정 농단으로 촉발된 촛불집회는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졌다. 촛불 집회가 일으킨 바람은 그 무엇으로도 잠재울 수 없는 태풍으로 발전해 정권 교체를 가져왔다. 그 바람으로 권력을 장악한 현 정권은 적폐 청산, 원전 폐지, 부동산 정책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이성보다는 감성과 바람을 활용했다. 합리적인 설명과 설득, 양보, 토론과 합의보다는 감성을 앞세운 파격적 행보로 정책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경우가 많았다. 견해가 다른 사람은 수구 골통, 토착 왜구, 적폐로 몰아붙였다. 코로나19 초반의 효율적인 통제가 일으킨 바람은 다른 모든 바람을 잠재우며 국민적 지지를 받았다. 그 바람으로 다수 의석을 차지한 여당은 비합리적 충동과 광신적 맹목으로 관행을 무시하고 법사위원장을 비롯한 모든 상임위원장을 독식하고는 법안 처리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 국민적 불신과 저항이 있을 때마다 콘크리트 지지층은 그들의 오만과 독선, 위선의 방패막이 돼 주었다. 그러나 코로나19의 재유행, 집값 폭등, LH 사태 등은 국민적 분노를 촉발했다.

여당은 촛불집회가 일으킨 바람이 아직도 민의의 바다에 불고 있다고 착각했다. 여당은 당헌을 고치고 궁색한 변명으로 후보를 냈다. 뚜렷한 전략이 없다 보니 내곡동 땅 보상에 상대 후보가 개입했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분명하게 입증을 못 하니 생태탕, 신발 이야기로 핵심을 벗어난 프레임을 만들어 바람을 일으키려고 했다. 누적된 불만이 야기한 분노의 바람 앞에선 백약이 무효였다. 정책 대결은 사라지고, 역대 최악의 네거티브 선거가 되고 말았다. 우리 민족은 감성적 충동과 즉흥성에 좌우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는 차가운 머리로 현실을 직시하는 능력도 갖추고 있다. 중국 진나라의 재상 여불위가 쓴 ‘여씨춘추’에 ‘엄이도종(掩耳盜鍾)’이란 말이 있다. 어느 도둑이 남의 집에 들어가 종을 훔치려고 했다. 도둑은 종이 너무 무거워 조각으로 깨뜨려 지고 가기로 마음먹었다. 망치로 종을 내려치는 순간 종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도둑은 다른 사람이 쫓아올까 두려워 자신의 귀를 막았다. 자신의 귀를 막아도 다른 사람은 그 종소리를 듣는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집권 여당은 자신의 귀만 막고 선거운동을 했다. 야당 역시 별 차이가 없으니 착각해서는 안 된다. 막대기를 세워뒀더라면 더 많은 표를 얻었을 것이라는 지적을 뼈아프게 되새겨 봐야 한다.

4·7 재·보궐 선거를 감성과 이성의 관점에서 짚어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임마누엘 칸트는 “이성이란 본능·충동·욕망 등에 좌우되지 않고 스스로 도덕적 법칙을 만들어 그것에 따르도록 의지를 규정하는 능력, 올바르게 사물을 인식하는 능력을 말한다. 감성은 욕구 또는 본능을 가리키며, 그것은 이성에 의해 억제될 수 있다”고 했다. 감성과 이성은 우리 삶과 정치에 필수적인 요소지만, 상호 조화와 균형이 필요하다. 이번 선거를 돌이켜 보며 여야 정치인과 모든 국민이 “감성 없는 이성은 공허하고, 이성 없는 감성은 맹목이다”라고 한 칸트의 말을 다시 곰곰이 음미해 보길 소망해 본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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