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철환 객원논설위원
▲ 오철환 객원논설위원
오철환

객원논설위원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제1원전 방사능 오염수 해양 방류를 결정하자 이를 규탄하는 목소리가 전국 곳곳에서 빗발치고 있다. 국내의 비판 여론이 비등하자 대통령도 국제해양법재판소에 제소를 검토하라는 말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바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외교부장관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적합한 절차에 따라 방류된다면 굳이 반대할’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대통령과 외교부장관의 말에 온도차가 느껴진다. 선출직인 대통령과 임명직인 외교부장관의 태생적 한계로 보이긴 하지만 임명권자의 말이 보도되고 난 후 장관이 국회에서 답변한 점을 보면 저급한 레임덕 조짐이 아닌지 염려된다.

어떤 정권이든 집권 말기로 가면 정도의 차는 있지만 레임덕을 피할 수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국민의 안전과 직결된 사안에 대해서 대통령과 장관이 사전에 의견을 조율하지 않은 채 각자의 입장만 주장하는 것은 최고통치자나 외교책임자다운 자세는 아니다. 대통령은 어엿한 법조인으로서 국제법상 승소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을 터, 아무리 국민정서를 살핀 것이라고 하더라도 문외한 같은 감정적 언동은 어울리지 않는다. 외교부장관은 전문외교관으로서 국제법적으로 막을 방도가 마땅찮다는 사실을 알고 있더라도 국민정서를 고려한 임명권자의 말을 존중해주는 것이 맞는다.

이성적으로 봐 객관적 판단은 외교부장관의 말이 타당할 수 있다. 미국과 IAEA의 태도에서도 이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주도면밀한 일본정부가 오죽 잘 알고 결정했을까. IAEA가 정한 기준과 절차에 따라 국제법규에 맞도록 해양 방류가 진행된다면 공식적으로 막을 방법이 없다. 그 기준과 절차는 다른 생명체나 인체에 영향을 주지 않는 것으로 과학적으로 입증된 결과를 토대로 설정된 것이다. 대부분의 사계 과학자들의 견해도 해양 방류에 호의적이다. 해양 방류 반대가 이론적으로 세 불리하다. 다만, 문제가 되는 삼중수소 외 미지의 치명적 방사성 핵종이 오염수에 섞여 방출될 수 있다는 주장이 살아있긴 하다.

법적 과학적 근거를 찾아 해양 방류를 막기보다 다른 방향에서 접근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국제여론뿐만 아니라 일본 내부의 반대세력도 만만찮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서적 감성적 접근 방법이 유효할 수 있다는 뜻이다. 방사능에 대한 무조건적 공포와 생선이나 해조류를 통한 불특정 다수의 피폭 개연성이 일반대중을 불안하게 하는 점에 집중한다면 의외의 결실을 기대해봄직하다. 과학적 이론적으로 안전성이 증명된 사안이라 하더라도 심정적으로 불안하다면 문제가 있는 법이다. 모두 안전하다고 느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세련된 선택이다.

국가나 공식기구는 법규를 따르지만 시민단체나 민간협의회는 명분 혹은 손익을 중시한다. 그린피스를 위시한 환경단체는 환경보호가 제1의 과제다. 방사능 오염수 해양 방류가 기준 이하라 하더라도 환경단체는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어업이나 수산물유통관련 민간단체는 당해 업종 종사자의 손익에 민감하다. 과학적 결론에 관계없이 해양방류가 생업을 위협한다면 과격한 단체행동도 불사한다. 이런 점에 착안한다면 국제환경단체와 민간협의회를 앞세운 우회적 접근방법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국가 간에도 ‘채찍과 당근’은 필요하다. 경제적 외교적 압박이나 시민단체의 반대시위만으로 소정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 역지사지로 배려하고 십시일반으로 협조하는 접근 방법이 탈출구를 열 수 있다. 매년 5~6만 톤 가량 늘어나는 방사능 오염수를 무작정 계속 저장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일본의 사정도 이해하는 것이 선결과제다. 더불어 고민하고 함께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데 머리를 맞대야 한다. 막다른 골목에 몰리면 쥐도 고양이를 문다. 도망갈 길을 열어 두고 쫓아야 한다. 방사능처리기술을 연구·개발하고 자금을 갹출·지원하는 것도 선택 가능한 방법이다.

2년 여 기간을 앞두고 오염수 방류를 결정한덴 윈·윈 하는 방법을 함께 찾아보자는 뜻이 숨어있다. 방사능이 더 잦아들 때까지 오염수를 계속 저장토록 하려면 명분과 실질을 아울러 제공할 필요가 있다. IAEA 기준 이하로 해양 방류하면 무해하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때까지 인내하며 기다리도록 일본 정부를 설득해야 한다. 지금은 아직 때가 아니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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