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충환

교육문화체육부장

“지난해 입학도 하기 전 코로나 사태가 터져 1년 동안 학교에 가본 기억이 없습니다. 학과 동기라고는 하지만 누가 누군지 솔직히 얼굴도 생소하니까 동기애는 애초부터 생길 수 없죠. 사이버대학에 다니는 것도 아닌데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가 대학생활의 절반이 날아 갈 것 같아요”

지인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지난해 입학한 한 대학 신입생이 들려준 대학생활 이야기는 안타깝고 서글프다. 그런데 그보다 더 황당한 이야기는 자기가 입학한 학과가 내년부터 신입생을 받지 않기로 한 이른바 ‘구조조정 대상 학과’에 포함됐다는 사실이라고 했다. 신입생을 유치하지 못해 학과가 없어지는 상황은 학교당국과 해당 학과 교수들이 책임질 문제인데 그 피해가 오롯이 학생들의 몫으로 돌아오는 현실이 힘들고 슬프다는 이야기를 토로한다.

올해 지역 대학가의 핫 이슈는 단연 모집정원 미달사태와 이로 인한 초유의 총장 사퇴, 학과 통폐합과 신입생 모집 중단 결정 등의 뼈를 깎는 구조조정 후폭풍이다.

사실 국내 대학의 구조조정 논의는 2003년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후부터 시작돼 20여 년 가까이 이어져 왔기 때문에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노무현 정부 때는 국립대 통폐합과 정원 감축에 초점을 맞춰 전국 18개 국립대를 9개 대학으로 통폐합 하는 등 강도 높은 국립대 구조조정을 통해 7만 명이 넘는 정원을 감축했다.

이후 이명박 정부때는 부실 사립대 퇴출이 본격 진행돼 4개 대학이 폐교했고, 정원도 3만6천여 명을 줄였다. 이후 박근혜 정부 때는 지방대를 중심으로 6만 명 가량의 정원을 줄이는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정원 감축을 대학자율에 맡기는 방식으로 1만 여명을 줄여 역대 정부 중 가장 적은 숫자를 기록했다.

1970년대 초반 연 100만 명을 넘어섰던 출생인구 시대에 맞춰 만들어진 대학이 지난해 신생아 숫자가 27만 명으로 떨어진 현재도 대부분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1970년대 168개이던 국내 대학 숫자는 2020년 429개로 늘어났다. 이 가운데 대학의 전성기라고 불리는 1990년대 10년 동안 무려 107개가 더 늘었다. 하지만 이 시기는 우리나라 출생아 수가 년간 100만 명을 넘어섰던 1970년대 초반에 비해 40만 명 가까이 줄어든 65만 명으로 급감하던 시기다. 이후 출생아 감소수는 가파르게 떨어져 2020년에는 27만 명을 기록하기도 했다. 10년 동안 100개가 넘는 대학이 새로 문을 여는 사이 정작 대학에 입학할 인원은 외려 크게 줄어든 셈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우리 대학들은 근본적인 대책은 외면한 채 아이폰, 아이팟으로 유혹하고 외국인 유학생 유치로 숫자 채우기에만 열중하는 등 눈앞에 닥친 위기를 애써 외면해왔다.

지역교육관계자들은 오늘날 대학의 위기에는 낡은 커리큘럼에만 매달린 채 현장의 요구에 무감각한 일부 교수들의 책임이 더 크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군 입대 전 수강했던 과목의 담당교수가 수업 중 설명한 강의보충자료가 복학한 후 다른 과목 강의에서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더라는 어느 복학생의 하소연은 오래전 기자가 대학 재학 중 실제로 경험했던 내용과 너무나 흡사해 쓴웃음이 난다.

대학의 위기를 불러온 주체를 교수나 학교 당국, 정부 등 특정 집단으로 특정할 수는 없지만 비싼 등록금을 꼬박꼬박 가져다 바치는 학생 탓은 아니다. 그런데도 대학의 위기에는 항상 학생들이 피해자로 둔갑하는 것은 뒷맛이 개운치 않다.

얼마전 출간한 찰스 호머 해스킨스의 신간 ‘대학이란 무엇인가? 대학의 탄생’이라는 책의 내용 중 일부분이다.

‘볼로냐의 학생들은 교수가 지켜야 할 행동강령을 공포했는데, 그들 각자가 낸 수업료에 상응하는 교육을 받으려는 조치였다. 1317년 초기 규정에는 교수는 단 하루도 허가 없이 결석해서는 안된다. 〈중략〉 만일 교수의 정규 강의에 수강생이 다섯 명 미만이면, 그는 폐강에 준하는 벌금을 물어야 한다. 얼마나 형편없는 강의면 학생이 다섯도 되지 않는단 말인가…’

대학의 위기가 단지 학령인구 감소 탓 이라고 에둘러대는 일부 양심 없는 교수들이 새겨들을 문구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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