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이/ 당신을 향해/ 언제 열렸는지/ 시립기만 합니다//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논둑길을 마구 달려보지만/ 내달아도 내달아도/ 속 떨림은 멈추지 않습니다// 하루 종일 시도 때도 없이/ 곳곳에서 떠올라/ 비켜주지 않는 당신 얼굴 때문에/ 어쩔 줄 모르겠어요// 무얼 잡은 손이 마구 떨리고/ 시방 당신 생각으로/ 먼 산이 다가오며 어지럽습니다// 밤이면 밤마다/ 당신을 향해 열린/ 마음을 닫아보려고/ 찬바람 속으로 나가지만/ 빗장 걸지 못하고/ 시린 바람만 가득 안고/ 돌아옵니다

「그대, 거침없는 사랑」 (푸른숲 , 1993)

사랑이 무엇일까. 오랜 세월에 걸쳐 수많은 사람들이 사랑이 무엇인지를 규명하려고 애썼지만 사람마다 각기 다른 그림을 그려놓는데 그쳤다.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면 ‘어떤 사람의 매력에 끌려 열렬히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으로 사랑을 설명하고 있다. 틀렸다고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맞는다고 할 수도 없다. 이런 한 줄 짜리 문장을 제대로 된 사랑의 정의라고 믿는 사람은 아마 없을 듯하다.

사랑의 양태가 워낙 다양한 까닭에 그 연역적 정의를 포기하고 현상적 표징이나 경험적 사례로 이해하려는 시도가 오히려 일상적인 상황이 됐다. 사랑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없지만 무엇이 사랑인지 아는 사람은 적지 않다. 갖가지 재료를 모아 사랑의 진수를 뽑아내는 일은 제대로 방향을 잡은 셈이다. 시에서 사랑을 불러내고 소설에서 그 모습을 그려내는 방식은 문학의 속성에도 맞고 사랑의 특질에도 부합하는 유효한 접근방법이다.

사랑의 사전적 정의에서 ‘그리워하는 마음’ 또는 ‘좋아하는 마음’이라는 표현이 두드러진다. 사랑을 시기적으로 ‘맺어지기 이전’과 ‘맺어진 이후’로 나눈 결과일 것이다. 맺어지기 이전의 사랑은 그리워하는 마음일 터고, 맺어진 이후의 사랑은 좋아하는 마음일 터다. 맺어진 이후의 사랑은 안정적인 사랑의 모습이겠지만 맺어지기 이전의 사랑은 오히려 격정적이다. ‘빗장’은 맺어지기 이전의 주체할 수 없는 절절한 사랑을 서정적으로 읊은 시다.

사랑의 열병은 사랑만이 유일한 특효약이다. 고백할 수 없어 답답하고 짝사랑으로 끝날까 봐 두렵다. 스스로 뚫려버려 무방비한 처지가 불쌍하고 어쩌면 서럽다. 떨쳐내 보려고 달려도 보고 별의별 짓을 다해보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다. 밤이면 밤마다 뒤척이다가 잠을 설치기 일쑤다. 몸과 마음을 도저히 제어할 수 없다. 열린 마음의 문을 닫고 싶다. 문을 닫고 빗장을 걸러 나가봤지만 그것도 허사다. 문을 닫기는커녕 사랑을 기다리는 마음만 간절할 뿐이다.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다고 한다. 사랑은 서로 믿고 모든 걸 견뎌낸다고 한다. 이는 서로가 마음을 나누고 사랑이 성사된 다음에 나타나는 성징이다. 생각만 해도 가슴 설레고 잠 못 이루는 마음은 서로 마음을 트기 이전의 증상이다. 마치 우리에 갇힌 맹수처럼 민감하고 거칠다.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없어 초조·불안하고 다른 사람에게 가 버릴까 봐 안절부절못한다.

사랑의 포로가 돼 떨리고 어지러워 어쩔 줄 모르지만 탈출할 마음은 아예 없다. 사랑은 아무 때나 아무에게나 찾아오지 않는다. 깨지거나 떠나갈지라도 찾아와 준 것 만으로 황송하다. 스스로 갇혀있는 상황이 서럽고 가슴 시리지만 사랑을 얻는다면 그 무엇인들 받아들이지 않으리. 섬진강 강바람이 분다.

오철환(문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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