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신 축하 제라늄 꽃 묘비 옆에 심었더니/좋으면서 부끄런갑다 꽃잎 더 붉어진다//아직도 청춘이요 잉/엄니 얼굴 참 곱소//술이 덜 깨 왔다고 잔소리가 한 바가지/밉지는 않으신지 바람결이 부드럽다//바쁜디 안 와도 돼야/네,/자주 올게요

「오늘의 시조」(2020년, 제15호)

고정선 시인은 전남 목포에서 출생해 1986년 아동문예에 동시로, 2017년 좋은시조 신인상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눈물이 꽃잎입니다’와 동시조집 ‘개구리 단톡방’이 있다.

고향을 방문하면 부모님이 잠든 산소를 찾는다. 두 분이 나란하게 누워 있어서 좋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따금 아들이 왔는데 왜 일어나시지도 않습니까, 라고 혼자 중얼거리거나 두 분 요새 다투지는 않으셨는지 하고 여쭤볼 때가 있다. 그러다가 봉분을 두 손으로 쓰다듬거나 비석을 살피면서 옛 추억을 더듬어 본다. 아무런 답을 듣지 못하지만 무언 중 어떤 소리가 나직하니 들려오는 듯해서 마음이 그지없이 평화로워진다.

고정선 시인의 ‘반어법’도 그런 정서를 흥미진진하게 담고 있어서 눈길을 끈다. 생신 축하 제라늄 꽃 묘비 옆에 심었더니 좋으면서 부끄런갑다 꽃잎 더 붉어진다, 라고 진한 그리움을 담은 노래를 읊조린다. 그러면서 어머니를 향해 아직도 청춘이요 잉 하면서 엄니 얼굴 참 곱소, 라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득 담은 이야기를 건넨다. 그러자 어머니는 술이 덜 깨 왔다고 잔소리를 한 바가지 하신다. 그 역시 사랑이 듬뿍 담겨 있는 살아 계실 때의 말씀이어서 화자는 가슴이 뭉클했을 것이다. 하여 밉지는 않으신지 바람결이 부드럽다, 라고 능청을 떤다. 실감실정의 장면이다. 어머니는 바쁜디 안 와도 돼야, 라고 말씀하시지만 아들은 네, 자주 올게요, 라고 답하면서 그리움을 억누른다. 이 대목에서 왈칵 눈물이 나올 만도 하다. 살아 있는 아들과 돌아가신 어머니 사이의 정이 가득한 대화는 무척 찰지다. ‘반어법’의 효용성은 바로 이런 데 있지 않을까? 살아생전에도 어머니는 아들과 이런저런 담소를 자주 나눴을 것이다. 그만큼 살갑게 사랑 받으며 자랐으니, 이렇듯 다정다감하고 구수한 이야기를 엮었으리라 생각된다.

지난 해 대구테마시조집이 대구문인협회에서 발간됐는데 그 책에 ‘유가사를 가다가’라는 단시조가 실려 있다.

산모롱이 도는 길을/숲과 같이 걸으며//흙내음에 물든 몸을/섭돌에 걸쳐 놓고도//돌탑에/욕심을 얹는 나/일주문을 넘지 못했다

유가사는 대구시 달성군 유가면 비슬산에 있는 사찰로 통일신라시대 승려 도성이 창건한 유서 깊은 절이다. 외지의 여행객이 많이 찾는다. 특히 비슬산 정상의 진달래 군락지는 명소로 유명하고, 경상북도의 3대 수도처 중의 하나인 도성암이 있다. 시의 화자는 산모롱이 도는 길을 숲과 같이 걸으며 흙 내음에 물든 몸을 섭돌에 걸쳐 놓고도 돌탑에 욕심을 얹는 자신을 보면서 결국은 일주문을 넘지 못했다, 라고 진솔하게 심경을 토로한다. 유가사를 찾아가다가 얻은 작은 깨달음은 자신의 삶을 살피는 계기가 되고 있다. 여기서 섭돌, 이라는 낯선 시어가 등장하고 있는데, 모양이 모지고 날카롭게 된 돌이라고 한다. 섬돌만 생각하다가 섭돌을 알게 돼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기쁘다.

‘반어법’, ‘유가사를 가다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동심이 읽힌다. 얼마 전 동시조집 ‘개구리 단톡방’을 상재한 연유가 여기서 잘 드러난다. 나이가 들더라도 동심은 우리가 꼭 가꿔 가야 할 마음이다. 자연에 가장 가까운 정서이기 때문이다.

이정환(시조 시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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