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일반

(뚜벅뚜벅 대구·경북 한 바퀴)<19>천 년 고도의 특별한 감성, 경주

지붕 없는 박물관, 발 닿는 곳마다 문화재
문화·역사·자연·힐링 등 다양한 콘텐츠 가득

경주 월정교 전경. 통일신라시대에 지어졌던 교량으로, 조선시대에 유실된 것을 2018년 국내 최대 규모의 목조 교량으로 복원했다.
대한민국 국민 중에서 경주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은 신혼 여행 장소로, 중장년층에게는 수학 여행 코스로, 20~30대 젊은이들에게는 맛집 가득한 데이트 핫플레이스로 저마다 기억 되는 경주는 제주도와 함께 우리나라 최고의 관광지로 손꼽히는 곳이다.

흔히 경주를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고 한다. 그만큼 발길이 닿는 어느 곳이든 문화 유적지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그 자체가 하나의 박물관이라 할 정도로 경주에는 다 헤아리기도 벅찰 만큼 수많은 신라시대 유적과 유물이 있다. 그래서 경주는 갈 때마다 새롭고, 하루 이틀 혹은 며칠간의 여행으로는 도저히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곳이다. 보름달이 뜰 때는 달빛 기행을 하고, 별이 밝은 날엔 별빛 기행을 하며 밤에도 무궁무진한 고도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불국사, 석굴암, 보문관광단지, 엑스포공원 등 누구나 다 알 법한 공간이 아닌, 다소 덜 알려졌지만 충분히 매력 넘치는 보석 같은 힐링 공간을 소개한다.

경주 기림사 경내 모습.
◆세월을 고스란히 그려놓은 사찰, 기림사

경주 시내를 벗어나 감포 방향으로 가다 보면 달을 품고 있다는 함월산 자락에 다다른다.

함월산을 헤집고 들어가면 세월을 고스란히 그려놓은 듯한 사찰, 단아한 산세의 경건함이 깃든 기림사가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 고운 자태를 드러낸다.

양옆에 가지런히 놓인 돌길을 지나 사찰 내 약수로 목을 적시면 속세의 묵은 갈증과 오만가지 잡념이 단숨에 사라질 것이다. 다섯 가지 맛과 이름을 가졌다는 오정수는 이름마다 전하는 이야기와 맛을 보는 재미가 있다.

삼전불전, 대적광전, 진남루 등 각각의 특색 있는 불당에는 세월의 흐름이 새겨져 있다. 오래된 건축물의 아름다움과 단아함이 잘 정돈된 정원과 어우러져 멋스러움을 더한다.

명부전 옆으로 경내를 지나면 ‘신문왕 호국 행차길’, 일명 왕의 길로 불리는 트래킹 코스가 나온다. 이 길은 신문왕이 마차를 타고 아버지 문무왕의 묘를 찾아가는 길이자 나라를 구원할 힘을 얻은 길이다. 또 이보다 앞서 문무왕의 장례 행렬이 지나간 길이기도 하다. 처음엔 신문왕길 혹은 신문왕 호국행차길이라 불리다가 현재는 공식적으로 왕의 길로 불린다.

울창한 활엽수와 더불어 용의 전설을 품은 용연폭포에서 시간을 간직한 자연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져보자.

경주 풍력 발전소의 모습.
◆탁 트인 하늘 속 바람개비, 바람의 언덕

토함산 능선 곳곳에 바람을 타고 돌아가는 하얀 바람개비가 눈에 걸리는 이곳은 이색 드라이브 코스로 유명한 경주 풍력 발전소다. 일명 바람의 언덕이라고도 불린다.

한 걸음씩 다가갈 때마다 두 뼘씩 커지는 하얀 바람개비의 정체는 엄청난 전력을 생산하는 풍력 발전소다. 거대한 몸체에서 나오는 힘찬 바람 소리에 절로 감탄사가 나올 것이다.

탁 트인 하늘 아래 산 능선을 따라 새파란 초목과 어우러진 7개의 바람개비는 동화 속 그림처럼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을 제공한다. 바람의 언덕을 제대로 보고 싶다면 주변 전망대로 올라가 보자. 그 압도적인 풍광에 눈이 번쩍 뜨일 것이다.

화랑의 언덕.
◆동심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화랑의 언덕

건천읍 단석산 줄기에 위치한 화랑의 언덕은 코로나19 시대를 맞아 더욱 주목받는 언택트 힐링 관광지다. JTBC 인기 예능 ‘캠핑클럽’에 등장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탁 트인 푸른 언덕과 반짝반짝 은빛 물결 저수지가 있는 이곳은 방문객들의 몸과 마음을 동심으로 되돌려 놓는 마법을 부린다.

화랑의 언덕 앞 이름 모를 저수지.
입구에서 방문객을 맞이하는 이름 모를 저수지는 풍경도 멋지지만, 저수지 중앙의 작은 섬으로 줄을 당겨 이동하는 나무배가 더욱 정겹다. 곳곳에 놓인 벤치에서 커피 한 잔의 여유와 그동안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아보자.

언덕을 오르다 보면 어느새 눈앞에 펼쳐진 넓은 초원, 멋진 소나무, 푸른 들꽃들의 청량함에 가슴이 뻥 뚫린다. 바람에 날리는 비눗방울을 따라 뛰어다니는 아이와 강아지, 하늘을 이불 삼아 소풍을 즐기는 사람들, 유년 시절 추억의 작은 의자에 엉덩이를 맞춰보는 재미, 하얀 마차와 어린왕자 등 마치 동화 속 주인공이 된 기분을 느껴볼 수 있다.

언덕 한쪽 절벽에 있는 명상의 바위는 소문난 일몰 명소이다. 바위에서 내려다보는 절벽 아래 작은 마을, 마을을 둘러싼 다랑이 논의 모습 등은 평화로움 그 자체이다.

월정교 앞 징검다리. 월정교의 위엄을 고스란히 볼 수 있는 핫스팟이다.
◆명화의 감동을 선사, 월정교 징검다리

최근 젊은이들의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황리단길에서 20분가량 걷다 보면 하천 위로 웅장하고 장엄하게 솟은 누각과 마주한다. 설화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파격적인 사랑 이야기의 무대, 월정교는 커다란 액자처럼 자연스럽게 포토존을 만들어 관광객들에게 포토존을 제공한다. 세련된 흑색의 기와지붕은 인근 교촌마을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색다른 멋을 창조한다.

월정교 밑으로 흐르는 하천에는 반듯반듯 네모 징검다리가 있다. 징검다리에서 바라보는 월정교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처럼 단아하다. 하지만 해가 저물면 단아했던 월정교의 모습은 또 다른 파격적인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월정교의 조명과 어우러진 석양은 이내 붉은 물결로 하천을 무지개처럼 빛낸다. 순간 눈앞에 펼쳐지는 명화의 감동은 가히 절경이다. 명화의 주인이 되고 싶다면 빠르게 셔터를 누르고, 두 눈을 더 크게 만들어 오래오래 가슴에 담아보자.

천도교의 성지 용담정.
◆새로운 꿈을 전달하는 용담정

천도교의 성지 구미산 자락의 용담정은 거북이 꼬리 모양의 형세를 갖추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숲길 가득 들어선 수목에서 뿜어져 나오는 상쾌함에 머리는 절로 개운해지며, 졸졸 흐르는 계곡 물소리는 마음에 편안함을 준다.

하늘의 이야기를 전했다는 성화문을 지나 햇살이 바르게 비치는 용담정 마루에 걸터앉으면 눈 앞에 펼쳐지는 산세와 빛나는 꽃들이 함께 어우러져 또 다른 자태의 아름다운 정원을 감상할 수 있다.

용담정 뒤편 숲길은 동화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고목들 사이로 오랜 시간 동고동락한 이끼와 풀 한 포기마저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언덕 끝에 매달린 듯 아찔한 형세의 사각정의 옆으로 떨어지는 폭포수 물줄기는 곧 다가올 더운 여름 날씨도 날려버릴 것이다.

자연을 품은 작품, 솔거미술관.
◆자연 품은 오감만족, 솔거 미술관

경주 타워와 함께 경주 엑스포공원의 핫플레이스로 꼽히는 솔거미술관은 자연을 품은 하나의 거대한 작품이다.

공원 안쪽으로 들어가 언덕길을 걷다 보면 멋진 조각품들이 하나둘 마중 나온다. 조각품을 뒤로하고 조금 더 걸으면 단아한 모습의 솔거미술관이 맞이한다.

미술관 곳곳에 있는 커다란 유리창들이 자연과 작품을 연결해 관람객들에 특별한 감성을 선물한다. 커다란 창밖으로 사계절마다 바뀌는 자연의 변화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작품이다. 미술관을 찾은 방문객들도 커다란 창 앞에 편안히 앉으면 또 하나의 작품이 되는 마법 같은 장소이다.

솔거미술관 내부 모습. 마치 자연과 하나 된 듯한 창들이 특징이다.
특별관에는 박대성 화백의 기증 작품들이 가득하다. 웅장하고 굳건한 소나무의 모습, 험준하게 뻗어 나간 산맥들의 그림들로 전시장 곳곳이 마치 산속을 걷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소나무 줄기처럼 만들어진 미술관 벽은 자연과 하나가 되고자 하는 미술관의 의도를 돋보이게 한다.

멋진 작품으로 높아진 감성은 잠시 미술관 옆 벤치에서 바람과 햇살이 전해주는 자연의 소리에 맡기자. 오감을 만족시키는 여유로움이 느껴질 것이다.

무장봉 억새길.
◆좋은 사람과 오래 머물고 싶은 곳, 무장봉 억새길

경주 동대봉산 무장봉은 온 산을 뒤덮은 은빛 억새로 유명한 곳이다.

148만㎡의 억새군락지는 시야 가득히 들어오는 시원한 풍경과 문화재가 함께 어우러진 이색적인 등산로다. 무장봉 근처에는 신라 삼국통일의 역사가 서린 무장사지와 무장사지 삼층석탑(보물 제126호)이 있다. 등산과 역사여행이 동시에 가능한 산행길이다. 영화 ‘태극기를 휘날리며’와 드라마 ‘선덕여왕’ 촬영지로도 입소문이 나 가을이면 많은 관광객을 끌어모은다.

무장산 억새군락지는 전국적으로도 널리 알려져 사진마니아들의 명소로 꼽힌다.
전국 여러 곳에서 억새를 볼 수 있지만, 무장산 억새군락지의 웅장함은 다른 곳과 비교 자체를 거부한다. 무장봉 능선을 전부 뒤덮고 있는 은빛 억새는 장엄함을 넘어 황홀한 감정을 선사한다.

좋은 사람과 좀 더 멋진 추억을 만들고 싶다면 빠른 하산을 권하지 않는다. 태양빛의 은빛 억새가 야간 달빛에 반사되면서 금빛 물결로 바뀌는 환상적인 마술쇼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승엽 기자 sylee@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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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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