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개를 없애는 몇 가지 방법/ 이홍사

발행일 2021-05-12 14:30:37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 개는 인간에게 과연 무엇인가 ~

…개는 화장실 바닥에 똥오줌을 누었다. 행여 문을 닫아놓으면 깔개에 누었다. 홍랑이 그나마 큰소리로 항의할 수 있는 건 개똥이다. 새벽에 화장실 바닥에 개똥이 흩어져 있는 날도 있었다. 역정이 나서 고함을 지르면 아내나 딸이 일어나 나왔다./ 5년 전쯤, 결혼한 딸이 마트에 갔다가 개를 안고 왔다. 하얀 말티즈 암놈. 주인을 찾아주려 했지만 실패했다. 그러는 새 개는 식구가 됐다. 아들과 딸이 개가 보고 싶어 일찍 귀가했다. 아내는 복덩이가 들어왔다고 좋아했다. 홍랑은 그 반대였다. 개가 온 후 제대로 되는 일이 없었다. 아내는 개를 안고 잤다. 각방을 쓰게 되고 금슬도 나빠졌다. 홍랑은 개로 인해 꼴찌 순위로 추락했다./ 비 오는 날 개 비린내가 지독했다. 암컷이라 생리도 했다. 책이나 다이어리에 피를 묻혀놓기도 했다. 홍랑은 개를 싫어했다. 눈치 빠른 개도 홍랑을 싫어했다. 아내와 담판을 한 적도 있었다. 양자택일하라고 하니 아내는 서슴없이 개를 선택했다. 딸과의 갈등도 심했다. 개가 죽길 기대했지만 가련한 마음도 들었다./ 홍랑의 집은 마당 딸린 상가주택이다. 2층은 사무실, 3층은 살림집, 4층은 서재와 작업실이다. 개는 사무실로 내려와 영역 표시 차 오줌을 찔끔거렸다. 사장실에 똥오줌을 싸놓기도 했다. 하자보수 작업으로 밤을 새우고 들어온 날, 사장실로 들어서니 책상 앞이 똥오줌으로 엉망진창이었다. 쌓였던 감정이 폭발했다. 소리를 지르고 골프채를 휘둘렀다. 깔판유리가 깨지고 화분이 박살났다. 개를 없앨 거라고 선언하고 집으로 올라가 소주를 들이켰다./ 개를 없애는 세 가지 방법, 유기, 안락사, 분양. 아무리 생각해도 분양과 안락사는 힘들 것 같았다. 개 처분이 생각보다 복잡했다. 군에 있을 때 개 한 마리를 구하려고 애썼던 일이 떠올랐다. 개가 꼭 필요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강변 체육공원, 역사 대합실, 롯데마트. 자세한 유기장소를 결정하지 못했지만 결심은 굳혔다./ 마당으로 내려갔다. 아내는 천연염색 일로 바빴고 개는 그 주위를 맴돌았다. 개를 잡으려다 아내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혀 작전상 후퇴를 했다. 친구 타이어 가게에서 커피를 마시고 돌아와 다시 기회를 엿봤다. 아내는 마당에서 염색작업에 몰두하고 있었고 개는 3층에 있었다. 개를 몰래 잡아 차에 태우고 무작정 달렸다. 아내 전화가 득달같이 왔다. 사정 반 협박 반, 데려오라 했지만 거절했다. 전화가 계속 왔지만 받지 않았다. 시집간 큰딸 전화가 왔다. 개를 데려가겠단다. 절대 데려오지 않겠다는 약조를 하고 큰딸에게 개를 넘겼다. 집으로 오니 아내가 본 척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평화가 왔다.…

개는 애완에서 반려가 됐다. 허나 갈등은 존재한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조건 하에서 개를 반려로 삼아야 할 터다. 개로 인한 갈등을 코믹하게 그려내고 있다. 개를 싫어하는 홍랑의 잘못인지 아니면 개를 식구로 편입한 가족들의 불찰인지 모를 일이다. 개 키울 권리도 중요하지만 개인의 행복권도 존중돼야 한다.

지구가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면 개의 생존공간도 존재한다. 개를 독립된 생명체로 존중한다면 개답게 살도록 내버려두는 것도 의미 있다. 개를 일방적으로 인간의 반려로 선택하는 것이 개의 천부적 자유를 침해할 수도 있다. 이상적 선택이 불가하다면 현실적 접점을 찾는 방법이 차선이다.

오철환(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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