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일반

스토리로 만나는 경북의 문화재…문경 김선식 사기장

8대째, 문경시 하리에서 ‘관음요’ 도자기 명문가의 명맥을 잇고 있는 미산 김선식 사기장은 한국문화예술분야의 신지식인으로 청화백자의 명인이자 도자기공예의 최고 장인이다. 김진홍 기자 solmin@idaegu.com


미산 김선식 사기장을 만났다. 그는 8대째, 관음요 도공 가문의 명맥을 잇고 있는 신지식인이다. 표정이 밝고 얼굴이 맑았다. 흙을 만지고 장작불을 지피는 도공이라기보다는 난을 치고 차를 우리는 선비 같았다. 어디서 본 듯도 한 그런 모습이었다. 그의 밝음과 맑음의 내막이 궁금했다. 가족들의 피부가 희고 고우냐는 뜬금없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태연하게 답했다. 타고난 것이 아니라면, 밝고 맑은 모습은 그의 생업으로 말미암을 것이었다. 도자기 굽는 일을 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냐 물었다.

“30년 전 일입니다. 가난에 떠밀려 멀리 열아홉 살 때 집을 떠나 수원에서 직장생활을 하게 되었지요. 모처럼 휴가를 얻어 집에 와보니, 아버지께서 밤늦도록 흙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힘겨워 하시는 아버지의 굽은 뒷모습이 애처로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도공에게는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때였습니다. 집에 있으면 굶어 죽는다. 밥벌이 하려면 집을 떠나야 한다는 부모님의 성화를 마다하고 그 길로 사표를 내고 물레를 돌리기 시작했지요. 대를 이어 가업을 지키겠다는 자존심이나, 도예작업에 대한 사명감 같은 것은 생각할 겨를조차 없는 궁핍한 처지였지요. 오직 부모님을 도와 가난을 이겨내야 한다는 일념뿐이었으니까요.”

도예가로 일가를 이룬 미산 김선식 사기장의 오늘은 그를 도공의 길로 들어서게 한 ‘가난과 효성’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을 터. 그가 문화예술분야의 신지식인이 되고(2005년), 청화백자항아리 부문의 명인이 되고(2013년), 도자기공예 최고 장인이 되고(2014년), 2019년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32-마호 문경사기장(청화백자)의 보유자로 인정 되는 등 도예가로서의 빛나는 성취의 동력은 아무래도 면면히 핏속을 흐르는 선대의 도공 자질에 크게 힘입었을 것이었다.

관음요 전시장.


◆‘가난과 효성’으로 일군 성과

문경 관음리에 가마 자리를 잡고 본격적으로 도자기를 구운 것은 170년 전 3대 김영수 도공부터이지만, 그의 조상들은 250년 전부터 도자기를 구워왔다. 8대째 도공 가업 계승은 미산 집안이 국내 유일하다. 사회적으로 천대 받던 도공 일을 대를 이어 계승한다는 게 어찌 생각처럼 쉬운 일이었겠는가.

“할아버지께선 도예가로 꽤 알려지신 분이라 국내는 물론 일본 등지에서도 도예비법을 배우러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천대받는 직업이었던 도공의 길을 아들에게 걷게 하고 싶지 않아 하셨답니다. 가난의 굴레를 벗어날 길 막막한 도공 일을 자식 대에는 벗어날 수 있도록 없는 돈을 긁어모아 아버지를 서울로 유학을 보내셨다고 합니다. 출세하려면 공부해야 한다는 한 맺힘 때문이셨겠지요. 대학을 마친 아버지는 교육계에 종사하시다가 결국은 관음리로 내려와 가업을 이으셨습니다. 숙명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일이지요.”

‘법고창신’은 김선식 사기장의 작업에 있어 기본 철학이다.


미산의 아버지 김복만 도공은 수많은 명품 도자기를 만들어 세인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화쟁이란 별칭을 얻기도 한 그의 도자기 그림은 많은 이를 감동시켰다. 특히 닭의 피 색깔이 감도는 경명주사 진사 작품은 국내는 물론 일본에서도 명품으로 인정받은 바 있다. 미산의 갤러리에는 다양한 자기들이 저마다의 눈부신 자태를 자랑하고 있었다. 흙에서 어떻게 저렇듯 아름다운 자기가 태어날 수 있을까.

“좋은 흙으로, 미세한 손발의 감각으로 성형을 하고…. 1300도의 열을 이겨내야 태어날 수 있습니다. 완벽하지 않으면 세상에 나올 수 없지요. 여기 진열된 도자기들은 모두 힘든 과정을 거쳐 세상에 나온 귀하고 장한 생명들입니다. 자식처럼 사랑스럽지요.”

도자기의 근본은 흙이라 했다. 그는 전통 수비방식으로 절묘한 점토를 만든다. 색깔을 내는 흙, 불에 강한 흙, 깨지지 않는 흙, 발색이 되지 않는 흙 등 네 가지 흙을 따로 따로 넣고, 고루 섞는 방식이다. 4~5시간 흙속의 공기를 빼는 질밟기가 끝나면 발물레를 통해 도자기 성형을 한다. 그가 굳이 발물레 성형을 고집하는 것은 기계가 손발의 자연스러움을 대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십년 넘게 갈무리 해온 적송에 불을 붙이고 16시간 눈 뗄 수 없는 불앞을 지키는 인내의 과정을 거친다. 빛과 색감과 자태가 완벽한 자기를 만들기 위해 그는 도공, 화공, 화부 1인 3역을 한다.

“법고창신이 제 작업의 기본 철학입니다. 전통방식을 존중하면서도 색과 형태에 변화를 주어 나만의 새로운 도자기를 만들려고 합니다.”

다수의 작품들이 디자인특허에 등록돼 있다.


그는 전통방식인 망댕이가마를 고집하면서도 경명진사와 죽엽도자기를 만들어 도자기 분야 특허를 취득했다. 경명진사는 부적 쓸 때 쓰는 안료인 경명주사를 활용해 독특한 붉은색을 내는 것으로 이 도자기로 대한민국 문화예술부문 신지식인에 선정되었다. 죽엽도자기는 도자기 요철 부분에 황토를 덧발라 대나무 잎 모양을 낸 것으로 특허권을 얻기도 했고, 도자기 애호가들로부터 전혀 새로운 감각의 도예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갤러리 지하에 2018년 개관한 박물관이 있었다.

그가 사비로 세운 ‘한국다완박물관’은 우리나라 최초의 찻사발 전문 박물관이다. 문경시 문경읍 온천5길 2-1, 462㎡의 부지에 2개의 전시실로 꾸며져 있다. 고대의 다완에서부터 수억 원을 호가하는 대가들의 작품과 우리나라 대표적 젊은 작가들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2천500여 점을 수집, 그 중 일부인 70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제 1전시실에 선친인 김복만 선생의 작품을 비롯 문경에서 활동하다 작고한 도예가들의 작품과 전국 각지의 다완 전문가들의 작품이, 제2전시실에는 후세대 젊은 도예가들의 다완과 다기세트 등이 진열되어 있어 한국 다기문화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한국다완박물관’은 김 사기장이 사비로 세운 국내 최초의 찻사발 전문 박물관이다


“다완박물관은 저의 오랜 소망이자 선친의 꿈이기도 했습니다. 찻사발 보존과 연구의 버팀목이 되기 위해 다양한 전시, 이벤트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찻사발과 연계할 수 있는 타문화 단체와의 협업을 통해 한국 찻사발의 새로운 가능성을 소개하는, 글로벌 도자문화 연구의 거점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박물관이 역사의 보존을 위한 것이라면, 보존된 역사는 미래의 꿈을 견인할 수 있을 때 참된 가치가 있을 것이다. 박물관을 나서며 미산은 도공 집안의 맥을 잇기 위해 공부하고 있는 아들 민찬군의 자랑을 잊지 않았다. 민찬 군은 7대 조부, 8대 부친의 곁에서 어릴 때부터 보고 배운 도자기술이 자신의 갈 길임을 확신하고 관음요의 미래를 준비 하고 있었다. 도예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전통문화대학에 입학할 예정이었다. 문경 관음요 9대 민찬군이 주역이 될 도자기 문화(산업)의 발전적 미래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청화백자의 심미성과 찻사발의 활용성을 가미한 선조들의 기법을 계승, 발전시키는 게 중요하겠지요. 현대적인 감각의 디자인으로 우리문화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노력과 함께 일상생활에 접목이 용이하도록 실용성을 살리는 노력이 병행될 때, K팝처럼 ‘K도자기’의 명성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전통을 담아 새로움을 탐닉하다.


◆전통 수비방식으로 절묘한 점토로 빚어

미산은 자신이 만든 다기에 차를 권하며 찻사발이 간직한 숨은 의미를 조용조용 들려주었다. “찻사발은 흔히 소우주로 비유되기도 합니다. 사발의 굽과 입술로 연결되는 유연한 곡선의 오름새를 울선이라 하지요. 울선은 용이 하늘로 오르는 것 같다하여 용승선(龍昇線)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용승선을 무한대로 이으면 우주공간까지 포용하는 소우주가 된다고 상상하기 때문이지요. 찻사발의 깊고 둥근 내부는 하늘과 땅의 정기로 피어올린 찻잎의 덕성과, 차를 달일 때 자신과 상대를 염려하는 정성을 담아내는 성스러운 공간입니다. 차를 함께 마시는 것은 하늘과 대지를 공유하는 인간의 깊은 마음을 나누어 마시는 숭고한 의식인 셈이지요.”

차를 우려 담은 막사발을 본다. 누군가 좋은 다기를 그렇게 말했듯, 잔재주와 아첨과 수다스러움이 없다. 조촐하고 소박하고 호젓해서 편안하고 넉넉하다. 잃어버린 옛 고향 뒷동산 봄 햇살의 따사로움과 한 점 흰 구름 같은 그리움이 조용히 글썽인다. 사람도 자연도 오래 함께 하면 닮는다 하지 않는가. 사기장 김선식의 밝은 마음은 막사발을 닮았고 맑은 인상은 청화백자를 닮았으리라.

강현국 시인

도자기들이 자식처럼 사랑스럽다는 김선식 사기장.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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