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일반

일상으로의 초대

정명희
정명희

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이 든 오월이다. 소중한 이들을 만나 그동안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그리운 계절이 지나간다. 사느라 바빠 찾아뵙지 못한 은사님을 찾았다. 빤히 보시더니 “살아있네” 라고 하신다. 평생 끊지 못한 담배를 손에 들고서 그동안 작업해 모은 귀한 취미의 결과물을 골라주신다. 남해 어느 한적한 바닷가 풍경이다. 걱정과 근심이 모두 날아가는 듯 위안을 주는 아크릴화. 어느 자리에 귀하게 모셔둘까? 마음 설렌다.

학창 시절 호랑이셨던 선생님은 허리가 이젠 조금 더 꼿꼿해진 듯하다. 어디에든 한번 관심이 가면 집중 또 집중하며 몰두해 꼭 성과 내고야 마는 성품이신 선생님, 오랫동안 학생들을 가르치다 물러나시면 너무 심심하지 않을까 싶었다. 한데 선생님은 구순을 바라보는 연세에 환자도 지극정성으로 돌보고 운동도 매일 하신단다. 우리 인생에는 삼각형을 기억하라신다. 그 틀을 잘 유지해야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다고.

도형 삼각형의 맨 아래는 직업이다. 매일 몸담은 직장이나 밥벌이 노동이 직업에서 한 축이요. 삼각형의 다른 한 면은 취미라고 하신다. 무엇에든 심취해 즐거움과 재미를 느낄 수 있고 그로 인해 창작의 기쁨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무한한 에너지를 얻는다고. 스트레스받기 쉬운 요즘 같은 상황에서 오롯이 집중해 쓰고 읽고 그림 그리며 창작할 수만 있다면 그것은 얼마나 큰 위안이랴. 책을 내거나, 시집을 묶거나, 그림을 그려 작품전시회를 한다면 그 얼마나 보람이겠는가. 고이 길러 태어나게 한 자식 같은 창작품을 좋은 이들과 함께 느끼고 즐기며 공감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더 인생이 즐겁지 않겠는가.

인생의 삼각형의 마지막 한 변은 꾸준히 하는 운동이라고 이르신다. 걷기, 하루 만 보정도 걸을 수 있다면 척추 근육도 강해지고 허리도 아프지 않을 것이고 꼬부라지지도 않을 것이라며 운동을 추천하신다. 나이 들면서 좋은 운동 중에서는 수영이 아니겠는가. 물개처럼 몸의 힘을 빼고 유유히 떠다니다 보면 어느새 마음의 근심은 흐르는 물처럼 가버리지 않으랴. 100세를 넘기고도 강건한 자세를 유지하는 김형석 교수님의 건강지킴이도 바로 수영이었지 않은가. 젊게 생각하고 늘 호기심을 갖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 그것이 어쩌면 인생을 건강하게, 걱정을 적게 하면서 활력으로 살아가는 힘이 아닐까 싶다.

아름다운 계절에 집안에만 있다가 보니 걱정은 바로 ‘살·살·살’이란다. 코로나19 시절, 아동은 평균 6㎏이나 불었다고 한다. 집에서 운동한다고 해도 한계에 부딪힌다. 그러니 들로 나가 거리를 두고 조용히 자연과 교감하는 것도 좋으리라.

모처럼 나들이를 하고 싶었다. 비는 부슬부슬 내리지만, 집에 있기 아까운 오월이라 울산 태화강변으로 드라이브를 하러 갔다. 입구부터 알록달록한 꽃들이 강변을 장식한다. 몇 바퀴를 돌아봐도 질리지 않을 아름다운 꽃들이 방긋방긋 웃고 있다. 강변을 걷다가 꽃 양귀비가 가득한 정원을 만났다. 나른하게 피어난 하얀 안개꽃 사이로 붉디붉은 꽃 양귀비가 고개를 빼 들고 있어 발길을 멈췄다. 중국의 미인 양귀비가 시아버지인 당 현종의 맘을 위로했듯이 예쁜 이 꽃이 코로나로 지친 우리에게 적잖은 위안을 준다. 어린 여자아이 하나가 붉은 양귀비꽃 앞에서 해맑게 웃고 있다. 경국지색이라는 양귀비보다 그 웃음이 더 아름답게 다가온다.

코로나로 집에만 있다가 보니 살이 찌고 비만으로 우울해지는 사람들이 많다. 당나라의 양귀비, 그 당시 미인의 표준이 풍만하고 육감적인 몸매 작은 발이었다고 하니 어쩌면 통통함으로 더 돋보였던 것 아닐까. 그 당시의 양귀비처럼 코로나 시대의 우리도 자신의 모습에 나름으로 자신감을 가져보면 좋지 않을까 싶다. 코로나 살로 미인이 된 듯이.

주렁주렁 꽃목걸이를 하고 서 있는 듯한 디기탈리스, 보라색 탐스러운 수국이 정원을 장식하고 향기로운 보랏빛 라벤더꽃이 고동색 나무의 껍질로 덮인 정원에 가득하다. 그 너머 붉은 사과처럼 매달린 덩굴장미가 하얀 벽을 오르고 있다. 하얀 울타리가 쳐진 작은 공간에 앉아서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정다운 원목 테이블과 찻잔이 놓여 있다.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은 그리운 장면이다. 우리는 언제 저 평범한 일상으로 초대받을 수 있을까. 생각에 잠겨 귀가하는 길, 빠져야 하는 인터체인지를 놓쳐버렸다. 멍 때린 것에 후회가 밀려오는 순간, 눈을 들어보니 하얀 목 마가렛이 천지에 널려서 반가운 인사를 바람에 실어 전한다.

어쩌면 우리 인생은 잘못 빠진 교차로처럼 우연히 만난 기회에 꽃과 구름도 한 번 더 볼 수 있으니 돌아가는 인생도 아름다울 수 있지 않으랴, 아리따운 신부의 얼굴 같은 오월이 깊어간다. 평온한 마음으로 ‘일상으로의 초대’를 지치지 말고 손꼽아 기다리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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