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일반

삼국유사 기행<114>선율환생

죽었던 선율 스님이 환생해 불사를 이어가다

신라시대 당나라 사신을 속이기 위해 사천왕사지 대신 망덕사를 지었다. 망덕사지에 분명하게 남아 있는 서쪽 목탑의 심초석.


선율스님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돌아온 이야기 선율환생편은 삼국유사 감통 10가지 이야기 중 여섯 번째 소개된다.

감통편에서는 선도성모가 박혁거세를 낳은 이야기, 계집종이 부처가 되는 이야기, 친구들이 열심히 기도해 부처가 되는 이야기, 경흥국노가 부처로부터 깨달음을 얻는 이야기, 왕이 부처의 가르침을 깨닫는 이야기, 호랑이와의 인연으로 세상을 이롭게 하는 이야기, 스님이 옷을 벗어 추위에 떠는 여인을 구하는 이야기 등으로 전개된다.

이미 저승으로 잡혀갔던 선율스님이 일으키던 불사를 마치고 오라는 명을 받고 다시 이승으로 돌아오면서 또 다른 세상사를 소개하며 선행을 강조하는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세상의 선행을 은근히 불교와 연을 지어 소개하는 삼국유사의 내막을 들여다보게 하는 편이다.

숙명여대 정병삼 명예교수는 감통에 대해 “한 사람의 행동이 상대방에게 감동을 일으키게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며 “생각이 없고, 함이 없고, 고요하게 움직이지 않다가 느껴 마침내 천하의 연고에 통한다는 주역에서 연유를 찾는다”고 설명했다.

망덕사지 당간지주는 보물 제69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특별한 장식은 없지만 지주 중간에 뚫어 당을 고정했던 양식과 다르게 구멍을 뚫지 않고 맨 꼭대기에 홈을 파 당을 고정했다.


◆삼국유사: 선율이 다시 살아오다

망덕사의 승려 선율은 시주받은 돈으로 600반야경을 이루고자 했다. 일이 다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저승으로 잡혀갔다. 저승의 관리가 “너는 인간세상에서 어떤 일을 했느냐?”라고 물었다.

선율이 “소승은 만년에 태품경을 만들려고 했으나 일을 다 마치지도 못하고 왔습니다”라고 답했다.

관리가 “너의 수명을 적은 장부에 의하면 네 수명은 비록 다 됐지만 좋은 발원을 마치지 못했으니 마땅히 다시 인간세상으로 돌아가 귀중한 불전의 일을 마칠지어다”라 하고는 다시 돌려보냈다.

사천왕사지 서편에서 서로 마주보고 서있었던 망덕사. 당시 본존불을 모셨던 절의 대웅전으로 보이는 금당지에 기초석이 아직 고스란히 남아있다.


돌아오는 도중에 어떤 여자가 울면서 그의 앞에서 절을 하고 “저 역시 남염주의 신라 사람입니다. 부모가 금강사의 논 1묘를 몰래 빼앗은 죄에 연좌돼 저승에 잡혀와 조사를 받아 오랫동안 몹시 괴로움을 받고 있습니다. 이제 법사께서 고향으로 돌아가시거든 저의 부모에게 빨리 그 논을 돌려 드리라고 말해 주십시오”라고 부탁했다.

이어 “제가 인간세상에 있을 때 참기름을 침상 밑에 묻어뒀고, 또 이부자리 속에 곱게 짠 베도 감춰뒀습니다. 부디 법사께서는 저의 기름으로 불등에 불을 켜고 그 베는 팔아 불경 베끼는 비용으로 써 주신다면 황천에서도 또한 은혜를 입어 거의 제 고뇌를 벗을 수 있을 것이옵니다”라고 간청했다.

선율이 “너의 집이 어디냐”고 물으니 “사량부에 있는 구원사의 서남쪽 동네입니다”고 대답했다.

선율이 이 말을 듣고 가다가 죽음에서 깨어났을 때에는 선율이 죽은 지 이미 열흘이나 되어 남산 동쪽 기슭에 장사를 지낸 후였다. 환생한 선율이 무덤 속에서 사흘 동안 소리를 치니 목동이 이 소리를 듣고 달려가 절에 알리자 절의 승려가 가서 무덤을 파고 그를 꺼냈다.

망덕사는 사천왕사라고 속이기 위해 지어진 절이므로 그 양식과 형식도 비슷하다. 그래서 망덕사에는 사천왕사와 같이 동서 목탑이 있었다. 동편 목탑의 심초석을 비롯 기초석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선율이 지난 일을 자세히 말하고는 다시 그 여자의 집을 찾아갔다. 여자가 죽은 지 15년이 지났는데도 기름과 베는 예전 그대로 있었다. 선율이 그 여자의 부탁대로 명복을 빌었더니 여자의 영혼이 와서 보답의 말을 하기를 “법사의 은혜를 입어 저는 이미 고뇌를 벗어났습니다”고 말했다.

당시 사람들이 이 소문을 듣고 놀라워하며 감동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으니 불경 만드는 일을 서로 도와 완성했다.

그 경은 지금 경주의 승려업무를 담당하는 관청의 창고 안에 있다. 해마다 봄, 가을에 그 경을 펴서 돌려 읽어 재앙이 물러가기를 빈다고 한다.

다음과 같이 찬미한다.

‘부럽구려 우리 스님 인연 좋아서/ 떠난 영혼 옛 산천에 돌아오네/ 우리 부모 저의 안부 물으시면/ 날 위해 그 논 한 묘 돌려주라 하소서.’

동서목탑을 지탱했던 기초석들이 기단 곳곳에 삐죽삐죽 모습을 보이고 있다.


◆망덕사

망덕사는 문무왕이 679년 사천왕사를 창건한 내력을 당나라 사신에게 숨기기 위해 679년에 창건했다.

문무왕이 당시 급하게 지었던 사찰을 효소왕 원년인 692년에 다시 지어 완공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금도 사천왕사지 맞은편 경주시 배반동 956번지 일대 2만4300㎡ 부지에 당간지주, 금당터와 동서목탑지, 강당과 중문지, 회랑지 등의 유적이 남아있어 사적지로 지정·관리되고 있다.

망덕사는 삼국유사 곳곳에 등장한다. 감통편에서는 효소왕이 망덕사 낙성식에서 허름한 차림을 하고 나타난 남산의 부처를 홀대하다 뒤늦게 알아차리고 남산을 향해 큰절을 올리고는 불무사와 석가사를 짓게한 이야기가 있다.

망덕사지 목탑지 남쪽으로 건물이 있었던 흔적을 전해주는 다양한 석재들이 곳곳에 남아있다.


또 망덕사에 거주하던 선율 스님이 불사를 이어가던 중 저승으로 잡혀갔다가 다시 환생하는 이야기를 싣고 있어 주목되기도 한다.

망덕사는 1969년부터 1971년 사이 세 차례에 걸쳐 발굴해 현재의 금당터와 강당, 회랑지, 동서 목탑지 등의 유적을 확인했다.

탑이 있던 자리에는 받침돌 아래의 바닥돌과 계단의 바닥돌이 남아 있다. 동탑지에는 심초석과 대부분의 주춧돌이 원래의 위치에 그대로 남아 있다.

중문터와 동서 회랑은 받침 부분의 범위가 확인된 정도지만, 회랑은 일부 자연석 또는 벽돌로 된 받침돌만 확인됐다. 특히 금당과 회랑 사이에는 익랑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해 학계의 관심을 끌었다.

강당터는 훼손이 심하여 받침 부분의 흔적조차 확인할 수 없으나, 주변에서 발견된 유구로 보아 조선시대까지 향불이 이어져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중문 앞 경사진 곳에는 비교적 상태가 양호한 거대한 돌계단이 불국사의 경우와 같이 중문 앞에 계단을 설치하는 양식을 보여준다.

사천왕사를 마주 바라보며 우뚝 서있는 당간지주는 보물 제69호, 망덕사지 일대는 사적 제7호로 지정·관리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망덕사의 구조를 잘 모르고 본당만 있었던 것으로 파악했지만 건물 둘레에 회랑지가 있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회랑이 있었던 곳에 석재가 남아있다.


◆새로 쓰는 삼국유사: 돌아온 선율 스님

죽어 장례를 치른 지 열흘이나 지난 선율 스님의 무덤에서 사람 살려달라는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망덕사 금당을 울렸다.

염불을 외고, 탑돌이를 하던 스님과 신도들이 깜짝 놀라 선율 스님의 무덤으로 달려갔다. 무덤 안에서 여전히 “나를 꺼내주시오”라는 쉰 목소리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마음이 급해진 스님과 마을 사람들이 더러는 손으로, 더러는 나무막대기로 무덤을 파헤쳤다. 관 뚜껑을 열어제치자 아무런 일 없었던 듯이 죽었던 선율이 흙을 툭툭 털며 일어나 잠시 앉아있다가 예사롭게 걸어서 망덕사로 돌아왔다.

환생한 선율 스님은 죽기 전에 하던 경전 만드는 일을 잠을 설쳐가며 계속했다. 틈틈이 아무도 모르게 마을로 나가 사람들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전해주며 잘못을 뉘우치게 했다. 모두 저승에서 만난 사람들에게서 들은 부탁을 실천에 옮기는 것이었다.

선율이 저승에서 돌아오는 길에 이마가 반듯하고 이목구비가 선명한 처녀가 앞을 가로막으며 간절하게 부탁했다.

지금의 망덕사 터는 황량한 벌판 가운데 우뚝 솟아있는 모습이지만 몇몇 노송이 절터를 지키고 있다.


“스님 저도 망덕사 맞은편 남염주에 살던 사람입니다. 죄지은 제 아버지를 대신해 결혼을 앞두고 죽은 몸이 됐습니다”라며 처녀가 처했던 일을 고해 바치며 아비의 잘못을 되돌리고, 자신이 받은 예물을 청년에게 돌려주고 다른 처녀를 맞아 혼인하라는 뜻을 전해달라고 했다.

선율 스님은 남염주의 처녀가 살던 집을 몰래 찾아가 그 아비에게 금강사에서 훔쳐온 금향로를 되돌려주라며 딸의 안부를 전했다.

*새로 쓰는 삼국유사는 문화콘텐츠 개발을 위해 픽션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역사적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저작권자ⓒ 대구·경북 대표지역언론 대구일보 .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강시일기자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