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보이지 않는 날이 있었습니다./ 산길을 잘못 들어 잠시 방향을 잊고/ 어둠이 내리던 벼랑길에 등지고 누워서/ 하얀 서리가 내리는/ 캄캄한 밤을 맞으며/ 추워서 한기가 들어/ 온몸을 움직일 수 없는 밤이 있었습니다.// 주머니를 뒤져서 밤 몇 톨, 땅콩 몇 개를 나누어 씹으며/ 천천히 씹으며 천천히 어디로 갈까를 생각해보았습니다./ 그 길 끝에는 장미나 백합 같은 것은 없어도 좋습니다./ 개나리 진달래가 없어도 좋습니다./ 바위 사이로 채송화 한두 송이 보여도 좋습니다.// 그것도 보이지 않으면/ 마음속으로/ 그 길 끝 어딘가에, 오월의 상수리나무숲/ 그 마른 잎 속 숨어서 어디쯤 피었던/ 구슬봉이/ 한 포기쯤 피어 있어도 좋습니다.// 꽃이 피어날 수 있다는 것은/ 아무리 작고 눈에 띄지 않아도/ 아직은/ 소중한 꿈을 가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끔은 길이 없어도 가야 할 때가 있다」 (푸른사상, 2020)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옳은 판단만 하며 살 순 없다. 그 당시엔 바른 길 같아서 그 길을 갔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나고 나면 미련이 남는다. 뒤돌아보고 후회하는 것이 불완전한 인간의 마음이다. 지나온 길로 다시 돌아갈 순 없다. 돌아간다고 해서 뾰족한 수가 있는 건 아니다. 다른 길을 선택했다고 해서 지금 보다 더 나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을 뿐더러 먼 훗날 또 후회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이는 관리할 수 없는 외생변수로 불확실한 미래를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우리네 인간의 숙명이다.

한때, 길이 없는 길이 옳은 길이라 믿고 호젓한 길이 바른 길이라고 생각했다. 길은 산길로 접어들기도 했다. 편하고 화려하진 않았지만 자유롭고 평화로운 풍미가 있었다. 새들이 나뭇가지에서 말을 걸어왔고 풀벌레가 풀 섶에서 반겨줬다. 거름 지고 장에 가듯이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을 따라가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라 여겼다. 주지육림은 없었지만 머루랑 다래랑 먹고 다리 뻗고 파란 하늘을 봤다. 밤하늘을 수놓은 별을 보며 시혼을 키워갔다.

겨울이 오고 밤이 찾아왔다. 춥고 어두웠다. 눈보라에 갇혀 ‘온 몸을 움직일 수 없는 밤’도 있었다. 남아있던 먹을거리가 변변치 못해 길을 갈아 탈 생각도 해봤다. 사람이 많이 가는 길에 대한 유혹이 끊이지 않았다. 안락한 집에서 멋진 옷을 입고 기름진 음식을 배불리 먹는 꿈을 꾸기도 했다. 어쩌다 동행이 된 사람에 대한 연민이 갈 길을 망설이게 했고 운명적인 동행자에 대한 사랑이 마음을 약하게 만들었다.

이 길 끝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 장미나 백합 같은 화려한 꽃은 바라지도 않는다. 개나리나 진달래도 과분하다. 채송화 한두 송이만 바위 틈 사이에 피어있어도 만족할 터다. 어쩌면 그것도 과욕이다. 작고 미미한 꽃이면 어떠랴. 구슬봉이 같은 야생화 한 포기가 낙엽 속에 피어있어도 감사할 일이다. 아무리 미미하고 수수해도 꽃은 결실이고 씨를 잉태하고 있다는 점에서 소중한 성취이다.

화려함을 지향했다면 사람이 많이 가는 길을 갔을 터다. 소박하지만 가치 있는 삶을 소망해 풀이 무성한 길로 들어섰다. 부귀영화를 기대하지 않았다. 길이 끊어져도 포기하지 않았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바른 길을 걸어간다는 자부심으로 부지런히 살았다. 눈에 띄지 않고 화사하지 않지만 속이 꽉 찬 구슬봉이가 아직도 사랑스럽다. 영혼이 맑고 마음이 개운하다.

오철환(문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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