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미술관’ 건립 입지로 수도권이 유력해졌다. 접근성과 과열된 지자체의 유치전이 빌미가 됐다. 대구와 경남 의령 등 10여 개 지자체가 유치전을 벌이던 터였다. 지방의 유치 노력에 찬물을 끼얹었다. 지역균형발전에 역행함은 물론 지역민의 문화 향유 바람을 저버리는 폭거가 아닐 수 없다. 중앙이기주의의 발현이다. 서울은 안 된다. 정치, 경제, 문화 모든 것이 서울에 집중된 서울 공화국에 또 하나를 더하는 악수가 될 뿐이다. 정부는 지방의 염원을 끝내 외면할 것인가.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24일 이건희 미술관은 접근성을 고려해 수도권에 짓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미술관 신설 계획은 다음달 발표할 예정이다.

앞서 지난 21일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많은 사람이 작품을 감상하고 향유하기를 바란 기증자의 정신과 국민의 접근성 등 두 가지 원칙을 중심에 놓고 결정하겠다”며 ‘이건희 미술관’ 입지와 관련한 입장을 밝혔다. 미술관 입지로 수도권을 염두에 둔 발언이었다.

그는 또 과열된 지자체의 유치 경쟁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내놓았다. 미술관을 지방에 둘 경우, 구겐하임 미술관 유치를 통해 예술 도시로 부상한 스페인의 ‘빌바오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유치 경쟁 과열로 엄청난 국고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문체부가 내세운 접근성을 따지면 앞으로 모든 중요한 문화 시설은 서울에 둬야 한다. 접근성이 떨어지는 지방에는 아무것도 둘 수 없다. 문화와 명소가 사람을 끌어들인다는 평범한 사실을 망각한 주장이다. 접근성은 불편은 있을지언정 장애는 아니라는 사실은 여러 사례에서 입증됐다. 접근성을 따지자면 대구도 항공과 KTX 등 사통팔달이다.

그간 유치 경쟁이 달아올랐다. 한 지자체는 삼성 이건희 회장이 자주 찾던 곳이라는 생뚱맞은 연고론을 내세웠다. 또 경북의 응원 속에 대구가 유치위원회까지 가동하고 있는 판국에 경주시가 가세, 눈총을 받기도 했다. 학연·지연·혈연을 앞세운 점입가경의 유치전 모습은 바람직하지는 않다. 하지만 이는 변변한 문화시설 마저 없는 지방의 눈물겨운 몸부림임을 알아야 한다.

각종 문화 시설과 미술관은 수도권에 편중돼 있다. 국가 균형 발전과 지역민들의 문화 갈증 해소라는 큰 틀에서 봐야 한다. 또한 GRDP(지역내총생산) 만년 꼴찌 대구의 노력 등을 헛되이 해서는 안 된다. 이건희 미술관은 반드시 지방에 건립해야 한다. 지방끼리 경쟁시켜 미술관 입지를 결정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문화 다양성의 보호와 확산’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홍석봉 기자 dghong@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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