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러날 때를 알아야 한다

발행일 2021-05-31 15:14:19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신승남

중부본부 부국장

‘누가 늘공에게 권력을 주었나?’

구미시가 지난해 개방형 직위공모를 통해 뽑은 양기철 기획경제국장이 임용 전 자신의 소셜네트워크(SNS)에 게시했던 글이다.

‘늘공’은 국가공개채용시험 등을 거쳐 채용된 공무원을 말한다. 여기에 대응하는 말이 ‘어공’이다. ‘어쩌다 공무원’이라는 말로 선출직 공무원이나 그들을 통해 특별채용된 공무원을 말한다.

‘어공’인 양 국장은 ‘늘공은 시험봐서 된 자리이지. 국민이 선택해서 된 자리가 아니다. 따라서 3권을 통틀어 국민주권이 우리나라에도 적용되는 것이 맞다면 당연히 늘공들의 지휘는 어공이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민에 의해 선택된 자가 시험봐서 된 자들을 책임지고 일을 시켜야한다’며 ‘늘공은 제 잘나서, 시험성적이 좋아서 공무원이 됐을 뿐이지 국민들에게 빚진 것이 없고 국민에게 책임질 필요도 없다’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늘공은 국민에게 책임지지 않는다. 늘공의 능력은 촛불민심에 대해서 이반적이다’며 ‘국가폭력에 희생됐던 민주화 경력자들을 진정으로 복권시키고 어공으로 모든 정무직을 채워야 하며 나라와 민족을 걱정하는 어공이 정무를 이끌어야 우리에게 미래가 있다’고 주장했다.

철저히 공무원들을 무시하는 주장이다.

‘나는 대한민국 공무원으로서 헌법과 법령을 준수하고, 국가를 수호하며,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할 것을 엄숙히 선서합니다’라는 공무원 선서는 무엇이란 말인가.

이렇듯 ‘늘공’들을 무시했던 그가 ‘늘공’들의 싸늘한 평가를 받고 있다. 임용권자인 장세용 시장마저 그의 능력을 의심하고 나섰다.

양 국장의 채용은 시작부터 논란이 됐다.

구미시는 지난해 투자유치 등 경제업무를 총괄할 기획경제국장을 개방형으로 뽑기로 하고 모집공고를 냈다.

1차 공모에서 적격자가 없어 6월29일 2차 공고를 냈지만 이마저도 시행규칙을 지키지 않아 연기됐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8월 재공고를 통해 양기철 국장을 뽑았다.

그가 캐나다 국적이라는 것도 문제였다. 한 시의원은 본회의장에서 “캐나다 국적을 가진 국장이 이익이 상충했을 때 어느 국가를 위해서 일을 하겠느냐”고 지적했다.

이같은 의혹에도 언론은 좀 더 지켜보자는 입장이었다. 그리고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기대는 얼마가지 않았다.

업무를 파악하지 못해 시의회에서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 못했다. 한 시의원은 “구미시가 국장 견습소냐”고 질타하기도 했다.

지휘를 받아야 하는 ‘늘공’들은 그와 대화가 되지 않는다고 하소연 한다. 자신의 주장만 내세울 뿐 도대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대를 모았던 투자유치 실적도 부진하다. 자신이 직접 투자유치를 한 사례도 거의 없지만 LG상생형 일자리사업도 지지부진하다. 기업들과의 관계도 소원하다. 무엇하나 제대로 되는 것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올만 하다.

이미 예견된 일일지도 모른다.

그는 자신의 SNS에서 ‘베트남에 공장을 짓는 삼성이라는 자본에게 무슨 희망이 있느냐’고도 하고 삼성관련 언론의 보도 행태를 비난하며 ‘지금 우리나라 언론이 기레기들의 범죄조직이기 때문이다’고 싸잡아 비난했다.

그의 이런 왜곡되고 편향적인 시각으로는 ‘늘공’을 지휘할 수도 기업들을 설득하거나 유치할 수도 없다. 애초에 그럴만한 능력이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임용 이후 SNS에 게시했던 자신의 글 대부분을 삭제했다.

그를 임용한 장 시장도 난처한 상황이다. 위축된 지역 경제를 살려보겠다며 승진에 목을 매는 공무원들의 자리를 빼앗아 개방형직위를 마련했는데 실적은 고사하고 직원들과 불협화음만 내기 때문이다.

양 국장이 임용권자의 짐이 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고서 주역(周易)에 이런 구절이 있다.

‘덕미이위존(德微而位尊), 지소이모대(智小而謀大), 무화자선의(無禍者鮮矣).’

‘인격은 없는데 지위는 높고, 지혜는 작은데 꿈이 너무 크면 화를 입지 않는 자 드물다’라는 뜻이다

자신을 냉정히 돌아보고 내 역량을 넘어서는 자리라면 스스로 사양해야 하며 늦게 알았다면 스스로 물러날 줄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화를 입는 데 그치지 않고 임명권자는 물론, 조직 그리고 시민들까지 피해를 입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선비들이 늘 가슴 속에 새기며 삶의 철학으로 삼았던 손자병법의 한 구절을 소개하며 글을 맺는다.

‘지각진퇴(知覺進退) 진퇴유절(進退有節).’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를 알고 절도 있게 나아가고 물러나야 한다는 뜻이다. 정치인이나 고위직들의 퇴임사로 자주 쓰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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