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농 현장을 가다 (88) 숲과 숲사이

발행일 2021-06-02 10:00:00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어서와, 산나물이 바로 건강이야

계곡을 따라 걷는 친환경 둘레길은 쉼이 있는 힐링 공간

소백산 깊은 산중에서 재배하는 명이나물의 참맛

임영근 대표가 수확한 명이나물을 들고 있다. 뒤쪽에 보이는 나무가 가을 축제에 활용하기 위해 심어놓은 마가목이다.
‘고치재 외길 따라 고치령을 넘으니 졸졸 흐르는 봄의 소리 정겹고 빈 하늘에 걸린 앙상한 가지사이 봉긋봉긋 돋아 오르는 연둣빛 새순들이 앙증맞구나. 여로의 안녕과 치유를 위해 두 팔 걷어붙인 아집의 농심이 가다가 멈추어 버린 그곳 소백과 태백의 준령에 둘러싸인 숲과 숲사이 자연농원이 있더라.(숲과 숲사이 중. 박기준 시인)’

시인 친구가 농사꾼 친구를 위한 시를 지었다.

농사꾼의 마음과 농장의 모습을 담았단다.

소백산 중턱 청정지역에서 산나물을 재배하는 고집스러운 친구에게 보내는 헌시다.

농장으로 가는 길은 수많은 산모퉁이를 돌고 돌아야 한다.

좁은 산길은 소백산의 속살을 그대로 보여준다.

굽이굽이 이어지는 꼬부랑길에서 아찔한 스릴을 느낀다면, 양편에는 늘어선 아름드리 소나무에서는 든든함을 느낀다.

사람의 손때가 묻지 않은 천연 원시림의 진한 녹색에 눈이 시리다.

중간 중간에 나타나는 ‘여우 출현주의’ 표지판은 호기심을 자극한다.

혹시나 여우를 만날 수 있을까하는 기대감도 생긴다.

소백산은 멸종위기 1급인 붉은여우가 서식하는 곳이다. 이런 소백산의 푸른 가슴에 안겨 산나물을 재배하는 농사꾼이 있다. ‘숲과 숲사이’ 농장의 임영근(64) 대표다. 임 대표는 영주시 단산면에서 3만3천㎡의 산지에서 명이나물과 눈개승마, 머위, 곰취를 재배한다.

임영근 대표가 명이나물 재배지를 살펴보고 있다.
◆변화와 혁신

산나물 재배는 임 대표에게는 세 번째의 직업인 셈이다.

그러나 한 번도 농업의 범주를 떠난 적은 없었다.

첫 직업은 과일 유통업이었다.

그의 고향인 영주는 인삼과 사과의 고장이다. 자연스럽게 사과와 인연을 맺었다.

20년간 사과를 수집해 전국에 유통시켰다.

사과를 보는 안목도 남달랐고, 사업수완도 뛰어났다. 자연스레 돈도 많이 벌었다.

성공가도를 달리던 임 대표는 2003년 돌연 유통업을 청산하고 사과재배로 전환했다.

주변에서는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며 “왜 잘되는 사업을 접고 고생길로 들어서느냐”며 말렸다.

그는 “자신의 사과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하고 소백산 중턱에 과수원을 만들고 사과나무를 심었다.

사과재배를 시작한 지 14년 만에 일부만 남기고 명이를 심기 시작했다.

사과나무가 14년생이면 청년이다.

생산량도 품질도 최상의 시기다. 주변에서 또 수군거렸다.

멀쩡한 과수원을 망쳤다는 것이다.

임 대표는 “사과농사는 노동 강도가 높고 인건비나 농자재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경쟁력이 떨어진다”며 “좀 더 쉽고 오래 할 수 있는 작목으로 산나물을 선택했고,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고 말하며 당시를 떠올렸다.

지난해부터 소득이 발생하면서 주변에서는 생각이 남다르고 변화의 흐름을 읽을 줄 안다는 평가를 한단다.

농촌의 고령화와 노동력 부족 현장을 정확히 짚은 것이다.

수확한 명이나물.
◆산나물은 바로 친환경

구황식물이었던 산나물은 이제 웰빙 식품으로 자리를 굳혔다.

몸과 마음의 건강을 통해 행복을 추구하는 사회 트렌드와 맞아 떨어진 것이다.

산나물은 대표적인 친환경 식품이다. 산에서 자라던 야생식물인 만큼 병해충의 발생이 적다.

초봄에 새순을 채취하기 때문에 병해충이 발생할 시간도 없다.

명이와 눈개승마는 4월이면 수확을 마친다.

병해충이 월동에서 깨어나기도 전에 수확을 끝내는 것이다.

다년생이라 초기 생장력이 빨라 잡초와의 경쟁력에서도 이기기 때문에 제초작업을 하지 않는다.

당연히 제초제를 뿌릴 필요도 없다.

여름철에는 잡초와 함께 자란다.

소백산 중턱에 있는 외떨어진 곳이라 이웃 농장에서 농약이 날아오지도 않는 청정지역이다.

해발 600m 고지대로 일교차가 심하고 계절의 변화가 뚜렷해 산나물 고유의 향이 진하다.

숲속의 반그늘에서 자라기 때문에 식감도 부드럽다. 화학비료도 뿌리지 않는다.

가을에 한 차례 완숙된 퇴비를 뿌려서 땅심을 돋운다.

산나물 고유의 특성과 자연환경이 만나서 친환경 식품이 만들어 지는 것이다.

한창 자라고 있는 명이나물.
◆한 곳에서 세 작물 동시에…상생재배

논밭에서 일 년에 한 번 한 가지 작물을 재배하면 1모작, 두 가지 작물을 교대로 심으면 2모작이라고 한다.

여름에 벼를 심고, 가을에 보리나 마늘을 심어 겨울을 넘겨서 수확하는 것이 대표적인 2모작이다.

반면에 같은 작물을 연속해서 심는 것을 ‘기작’이라고 부른다.

동남아에서 일 년에 벼를 세 번 심는데 이를 3기작이라고 한다.

임 대표의 토지 이용방식이 색다르다.

하나의 토지에 세 가지 작물을 동시에 재배한다. 2모작이나 3기작과도 다른 방식이다.

다년생 작물인 명이 밭에 약용식물인 마가목을 심고, 일년생인 왕고들빼기를 재배한다.

주작목인 명이는 반음지 식물로 약간의 그늘이 있는 곳에서 잘 자란다.

마가목은 여름에 그늘을 만들고 가을에는 약재인 열매를 생산한다.

빨간 열매는 관광자원으로도 활용된다.

왕고들빼기는 가을에 씨를 뿌리고 겨울을 넘긴 후 6월에 수확한다.

3~4월에 수확하는 명이를 재배해 발생하는 소득이 단절되는 시기에 새로운 소득을 내는 것이다.

수확하지 않고 남긴 왕고들빼기에서 떨어진 씨는 자연적으로 발아해 매년 파종을 하지 않아도 된다.

왕고들빼기 그늘도 여름철 명이의 성장을 돕는다.

세 가지 작물이 경쟁이 아니라 상생한다.

토지 이용률이 높아지고 봄에서부터 가을까지 연중 소득이 발생한다. 당연히 소득도 3배가 된다.

포장한 명이나물.
◆명이 밀키트

산나물은 직거래와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 판매한다. 농산물 공판장에는 출하하지 않는다. 공판장을 거치지 않고 전량 판매를 할 수 있는 이유는 임 대표의 특별한 판매방식 때문이다.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품질이다.

원시림이 울창한 소백산 중턱에서 친환경적으로 재배한 것이기 때문에 품질이 좋다는 평가를 받는다.

고품질의 소백산 산나물이라는 입소문을 타면서 단골고객이 계속 늘어났다.

주작목인 명이를 밀키트 형태로 판매하는 것도 주효했다.

밀키트는 손질한 식재료와 양념, 레시피를 세트로 만든 식품이다.

손질한 명이와 장아찌용 소스, 레시피, 용기를 한 세트로 구성해 판매한다.

소비자들은 용기에 명이를 담고 소스를 부어 일주일간 냉장고에 보관하면 맛있는 명이 장아찌가 된다.

레시피도 간단해 누구나 만들 수 있다.

임 대표는 “명이 장아찌를 만들 줄 모르는 주부들이 의외로 많은 것을 알게 됐다”며 “가정에서 직접 만들어 먹는 재미를 느끼게 해서 명이의 수요를 확대하는 방법의 하나로 밀키트를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밀키트를 시작한 이후에 판매량이 크게 늘어났다.

입소문을 타면서 고객이 계속 늘어나고 재구매율도 높아지고 있다.

내년부터는 생산량 증가에 대비해 대형 소셜 커머스 업체와 제휴해 판매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판매망의 다양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연구기관에 의뢰해 명이의 효능을 분석하는 연구도 진행할 예정이다.

소나무 숲에 둘러싸인 머위나물 밭.
◆건강먹거리 관광농원 준비 착착

임 대표의 최종적인 목표는 건강먹거리 관광농원을 조성하는 것이다.

소백산의 울창한 숲과 맑을 물이 흐르는 계곡, 친환경 산나물을 활용해 누구나 휴식을 하면서 건강한 먹거리를 맛볼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사계절에 맞춤형 축제도 준비 중이다.

봄에는 명이축제, 여름은 다래축제, 가을에는 마가목축제를 연다.

겨울에 열리는 눈축제는 소백산이 주는 큰 선물이다.

준비작업도 한창이다.

지난해 900m의 다래터널을 만들었다.

곧 200주의 다래가 터널을 덮고 열매를 맺는다.

다래가 주렁주렁 달린 터널 밑을 걷고 달콤한 다래도 맛볼 수 있다. 명이 밭에 마가목 1천500주를 심은 것도 가을 축제를 위한 준비였다.

계곡 주변에 만드는 둘레길은 명품 산책로가 될 것이다.

인공 구조물을 설치하지 않는 친환경 둘레길을 만들 생각이다.

계곡 중간 중간에 있는 폭포 옆에는 아담한 정자를 설치해 쉼터로 활용한다는 것이 박 대표의 계획이다.

이런 계획들이 마무리되면 누구나 찾아와서 쉬면서 즐길 수 있는 힐링공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글·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민간전문위원)

이동률 leedr@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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