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일보 삼국유사 기획)삼국유사 기행<117>연회가 문수보살을 만나다

발행일 2021-06-07 09:14:21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연회가 왕의 부름 피해 달아나다 문수보살 만나 돌아 와



문수사는 신라시대 영축산과 함께 청량산으로 불렸던 문수산 8부 능선에 옛날 이름을 그대로 가지고 법등을 이어가고 있다. 신라 원성왕이 그 명성을 듣고 국사로 임명했던 연회 스님이 주석했던 절이다.


삼국유사를 읽다보면 도를 깨우치기 위해 모진 수련을 감내하는 모습들을 많이 만난다. 깊은 공부 끝에 큰 깨달음을 얻은 도사들이 홀로 지혜의 샘 속에서 노니는가 하면 어떤 도사들은 자신의 깨우침을 공유하기 위해 책을 쓰거나 설법을 하고, 제자를 기르기도 한다.

낭지 스님은 중국과 영축산을 오가며 공부하고, 지통 등의 제자를 통해 불법을 널리 전하도록 애썼다.

원효대사 또한 스승을 찾아 천하를 주유하며 공부하고 대중들에게 깨우침을 전파하려 300여 권의 책을 저술하는 등으로 불교 대중화를 위한 노력은 지금까지 그대로 전하고 있다.

자장과 의상대사는 나라를 구하기 위해 황룡사구층목탑을 세우게 하고, 사천왕사를 지어 당나라 50만 대군을 물리치게 하는 일을 수행했던 유명 스님이다.

삼국유사는 또 광덕과 엄장, 계집종 욱면 등은 스스로 깨우침을 얻기 위해 처절한 수행의 길을 걸어 혼자 부처가 되는 전설을 기록하고 있다.

영축산의 연회 국사 또한 자신만의 구도의 길을 걸으려 나라의 부름을 외면하고 도망가려다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얻고서야 백성들을 위한 나라일을 맡은 구도승으로 돌아왔다.

어떤 것이 절대적인 선인지 다시 돌아보게 하는 삼국유사의 이야기는 다양하게 전개된다.

문수사는 첩첩산중에 위치하고 있지만 워낙 높은 지대에 있어 대웅전에서 바라보는 전망은 가슴까지 시원하게 한다. 대웅전 담벼락을 오르고 있는 담쟁이와 멀리 바라다보이는 울산 전경.


◆삼국유사: 연회 도명 문수점

연회가 명예를 피해 달아나다가 문수점에서 도를 얻다.

고승 연회가 일찍이 영축산에 숨어 살면서 늘 법화경을 읽고 보현보살의 관행법을 닦았다.

정원의 연못에는 항상 연꽃 몇 송이가 있어 사시사철 시들지 않았다. 원성왕이 상서롭고 신이한 소문을 듣고 그를 불러 국사로 삼으려 했다. 스님이 그 소식을 듣자 즉시 암자를 버리고 달아났다.

서쪽 고개 바위 사이를 넘고 있는데 노인이 마침 밭을 갈다가 스님에게 어딜 가느냐고 묻자 스님이 “나라에서 잘못 알고 벼슬로써 나를 매어두려고 하여 피해 가는 길입니다”고 대답했다.

노인이 듣고 “여기서 팔 일이지 무엇하러 고생스럽게 멀리 가서 팔려 합니까? 스님이야말로 이름 팔기를 싫어하지 않는구려”라고 말했다.

연희는 그가 자기를 조롱하는 줄로만 여기고 그 말을 듣지 않았다. 마침내 몇 리쯤 더 가다가 개울가에서 한 노파를 만났다.

그 노파가 “스님은 어디로 가시오”라고 또 묻자 연희가 “한 노인이 나를 몹시 업신여기기에 화를 내고 와버렸습니다”고 이야기했다.

노파가 “그분은 문수보살인데 그의 말씀을 어찌 듣지 않았소”라고 했다.

문수사 대웅전과 극락전 사이에 시대를 알 수 없는 삼층석탑.


연희가 듣고는 놀랍고 송구스러워 급하게 노인에게로 되돌아가서 머리를 수그리고 후회하면서 “성인의 말씀을 어찌 감히 듣지 않겠습니까? 이제 다시 되돌아왔습니다. 도대체 개울가의 그 노파는 누구입니까”라고 물으니 노인이 “변재천녀이네”고 말 하고는 그만 사라졌다.

이에 연희가 암자로 돌아오자 조금 후 왕의 사자가 조서를 받들고 와서 그를 불렀다.

연희는 이미 마땅히 받아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곧 임금의 뜻에 응하여 대궐로 가니 왕은 연희를 국사로 봉했다.(승전에는 헌안왕이 봉하여 2대에 걸쳐서 왕사로 삼고 호를 ‘조’라 했는데 함통4년 863년에 죽었다 하니 원성왕의 연대와는 서로 다르다. 어느 것이 옳은지 알 수 없다.)

이로 인해 연희스님이 노인에게 감응 받은 곳을 ‘문수점’이라 이름하고 노파를 만나본 곳은 ‘아니점’으로 이름 지었다.

다음과 같이 찬미한다.

‘저잣거리에선 어진 이가 오래 숨기어렵고/ 주머니 속의 송곳은 이미 삐져나와 감추기 어렵네/ 연희 스스로 뜰 아래 푸른 연꽃 됨이 잘못이지/ 이는 운산이 깊지 않아 그런 것은 아니라오.’

문수사가 있는 문수산은 전체가 바위로 가득하다. 산길을 오르다보면 곳곳이 아득한 벼랑으로 아슬아슬하지만 경치는 선경이다. 대웅전 뒤편의 암벽에 조성된 오래된 마애석불.


◆문수점

삼국유사에서 기록하고 있는 문수점은 울산 울주군 청량면 율리에 소재하고 있는 고개를 두고 이르는 말로 해석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울산 울주군 청량면에 소재하고 있는 문수산은 고려 때 영축산 또는 청량산으로 불렸다. 문수산에는 문수사라는 사찰이 있었는데 이 절은 조선 정조 23년 1799년에 편찬된 범우고에도 수록돼 있다.

신라시대로부터 시작해 고려와 조선시대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유서깊은 사찰로 유명하다. 최근에는 1894년 대웅전을 중창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현재 문수사에는 대웅전과 범종각, 산신각, 일주문 등의 건축물과 다양한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다.

문수사로 가려면 시가지에서 문수산으로 오르는 임도를 따라 승용차로도 30분 정도 힘들게 경사길을 올라야 한다. 지칠때 쯤 팔부능선 완만해지는 경사길에 문수사 입구를 알리는 표지석이 있다.


아쉬운건 신라시대 유물이 남아있지 않다는 점이다. 단지 영축사지 서쪽의 문수산 고개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과 문수라는 명칭이 남아 있다는 것으로 연회가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왕의 명을 받기로 했다는 문수점을 지금의 문수사로 추정하게 한다.

문수사는 울산 문수산 팔부능선 암벽으로 둘러쌓인 험한 지형에 바위 등을 이용해 건축물을 지어 방문객들이 저절로 감탄사를 연발할 선경을 선물한다.

문수산이 신라시대부터 부처님이 거주하는 영산으로 전해지고 있지만 지금은 곳곳이 도로공사 등으로 헐리고 있어 안타깝게 한다.

문수산 등산로 암벽을 따라 조성된 대웅전으로 들어서는 입구에 청량산문수사 현판을 달고 일주문이 덩그렇게 높이 서있다.


◆새로 쓰는 삼국유사: 연회 스님의 결심

연회 스님은 신라 원성왕 당시 문수사에 주석하던 육신통에 이른 이름 높은 승려로 알려지고 있었다.

연회 스님은 이미 어떤 중생이 어떠한 고민을 가지고 문수사로 찾아오리라는 것도 훤히 꿰뚫어보고 있었다. 연회는 그가 마음이 동하지 않는 사람은 미리 자리를 피해버리고 만나주지 않았다.

그리고 연회가 만나 고민을 들어주는 백성은 어떤 방법으로든 해결의 실마리를 얻어서 돌아간다. 그 어려움은 반드시 해결되었기 때문에 험악한 곳에 위치한 절이었지만 부처님보다는 연회 스님을 만나려는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연회는 불법을 공부하면서 국왕을 비롯한 권력층과 가까이 지내는 것으로 자신의 영달을 꾀하는 처사를 가장 싫어하며 경멸했다.

삼국유사의 피은편 연회 이야기를 비롯해 여러 영축산 동쪽에 있는 연지로 소개하고 있는 태화강.


연회는 특히 원성왕이 선덕왕과 손을 잡고 어린 혜공왕을 시해하고 왕권을 탈취한 역사를 안타깝게 여기며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또 원성왕이 함께 일을 도모했던 선덕왕을 왕위에서 끌어내리고 스스로 왕위에 오른 행보를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이라 치부하며 권력과 가까이하려 하지 않았다.

연회 스님은 중생들을 위해 설법을 하면서도 한꺼번에 많은 사람을 상대로 강의하는 일은 흔하지 않았다.

그의 성격상 조용하게 몇 명에게만 집중적으로 부처님의 말씀을 귀에 쏙쏙 들어갈 수 있게 넣어주는 식의 강의를 진행했다.

연회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마음을 갖춘 사람들에게 제대로 전달하는 것이 바른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집중해서 설법해야 강의의 내용이 제대로 전달되고, 듣는 사람들도 선별해서 고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연회 스님의 이러한 뜻으로 인해 권력층에 있는 부자들, 명예욕에 들뜬 사람들은 거의 연회를 만날 수 없었다.

원성왕은 연회 스님의 특별한 재능에 대해 익히 듣고 있었다. 그래서 연회의 명성을 빌어 어지러워진 백성들의 마음을 다스리고자 연회를 국사로 초빙하려 했다. 특히 불교계와 지도층에 있는 백성들의 마음을 얻으려 했다.

영축산과 문수산의 모습. 이곳은 청량산으로 불리는 신라시대 불교와 인연이 깊은 곳으로 소개되고 있지만 곳곳이 개발사업으로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원성왕의 의중을 이미 알아차린 연회는 왕의 심부름을 오는 사자가 도착하기 전에 자리를 피하기로 마음 먹었다. 연회가 서둘러 바랑을 메고 길을 나서는데 절에서 십리도 못가서 벼랑에서 “스님은 어디로 가는 길이오”라는 소리가 나면서 물음이 붉은 글씨로 드러났다.

연회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조용히 참선에 들었다. “나는 무엇 때문에 공부를 했던가. 그리고 무엇을 구하고 무엇을 얻으려 길을 나서고 있는가. 지금 내가 해야할 일은 무엇인가”라며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졌다.

이어 “부처님이 나에게 계를 줘 세상의 이치를 깨닫게 하신 것은 중생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제도하라는 뜻이었다. 그 길을 나에게 열어주셨는데 나만의 편안함을 위해 내가 험한 길을 피하고 있구나”라는 소리가 들으며 번쩍 눈을 떴다.

연회는 다시 암자로 돌아와 왕의 사자를 만나 궁궐로 향했다. 원성왕은 연회의 풍모에서 이미 선인의 기운을 느끼고 국사로 책봉하며 “대사께서 나라의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시기 바라오”라고 부탁했다.

*새로 쓰는 삼국유사는 문화콘텐츠 개발을 위해 픽션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역사적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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