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경공무직(환경미화원)인 이의한씨는 21년 동안 궂은 날씨에도 아랑곳없이 칠곡 동명의 청정한 환경을 위해 노력하는 칠곡의 일꾼이다. 이의한씨가 이른 아침 도로에 흩어진 각종 쓰레기를 담은 포대를 작업 차량에 싣고 있다.
▲ 환경공무직(환경미화원)인 이의한씨는 21년 동안 궂은 날씨에도 아랑곳없이 칠곡 동명의 청정한 환경을 위해 노력하는 칠곡의 일꾼이다. 이의한씨가 이른 아침 도로에 흩어진 각종 쓰레기를 담은 포대를 작업 차량에 싣고 있다.


곤히 잠들어 있는 가족을 생각하며 새벽 기도하는 마음으로 가장 먼저 새벽을 여는 환경공무직(환경미화원)이 다시금 우리의 삶을 뒤 돌아보게 한다.



“다소 힘들고 인기도 별로 없는 환경미화원이라는 직업을 가졌지만 아들과 딸은 물론 손자·손녀에게도 자랑스럽고 떳떳한 아버지와 할아버지라고 자신할 수 있습니다.”



칠곡군 동명면에서 공무직 환경미화원으로 21년째 근무하는 이의한(57)씨는 이른 아침마다 하루를 여는 부지런함으로 자동적으로 잠에서 깨어 새로운 하루를 준비한다.

여명의 순간 무거운 가장의 어깨에 흘린 땀방울로 보람을 줍는 환경미화원의 하루가 시작된 것이다.

그는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사태가 진정될 무렵인 2000년까지는 용접기사로 일 했다고 한다.



하지만 IMF 사태 후유증으로 더욱 악화된 건설경기를 견디다 못한 건설업체들이 줄줄이 도산한 탓에 그도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게 됐다.



희망의 끈을 놓고 실의에 빠져 있을 때 지인의 권유로 동명면에서 환경미화원 일을 시작하게 됐다.



환경미화원의 일은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려운 시기에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각오로 궂은 일로 인식하던 주위의 시선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성실하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 했다.



함께 근무하던 선배가 2002년에 퇴직한 후 이씨는 19년 동안 혼자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항상 오전 5시에 출근해 청소로 하루일과를 시작한다.



청소구간은 대구와 동명면 경계선인 봉암리를 시작으로 학명리(다부재)까지의 10.5㎞와 금암리에서 기성 1·2리~남원리 및 한티재에 이르는 9.1㎞ 구간이다.



그는 이 구간을 돌며 밤새 도로에서 로드킬 사고로 숨진 동물 사체는 물론 도로변에 버려진 쓰레기나 교통 방해물을 제거, 쓰러진 나무 치우기 등의 업무를 담당한다.



하루에 로드킬 사체를 처리하는 경우가 적게는 2~3건에서 많게는 6건에 달한다고 한다.













▲ 오전 일과를 마친 이의한씨가 마대포대와 집게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 오전 일과를 마친 이의한씨가 마대포대와 집게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동물의 사체를 처리하는 일은 어느 누구에게나 힘들고 역겨운 일이다.

그는 “남들이 싫어하는 일을 하고 있기에 더욱 많은 보람과 만족감이 생긴다”고 웃음 지었다.

“21년 동안 환경미화원을 하면서 한 번도 후회한 적도 없고 천직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하는 이씨의 업무는 동명면의 청소로 그치지 않는다.



도로변 청소를 하다가 습득한 휴대전화기 등 귀중품은 모조리 파출소에 보관한다.

주인이 나타나 ‘고맙습니다’라는 한 마디의 감사 인사를 전할 때 환경미화원이라는 직업에 대해 자부심을 느낀단다.

또 차량 사고를 가장 먼저 발견해 신고한 경우도 50건이 넘는다고 한다.

그래서 동명면 주민들은 그를 ‘동명의 파수꾼’으로 부르기도 한다.

특히 자신보다 어려운 처지에 놓인 이웃을 위해 주머니를 여는 따뜻한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도로 청소를 하는 과정에 모은 박스를 팔아 모은 돈을 희귀병을 앓는 지역의 50대 기초 수급자에게 전달하고 있다.

이의한씨는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환경미화원에 대한 자부심과 사명감을 갖고 건강이 허락하는 날 까지 깨끗한 동명을 위해 늘 한결같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임철 기자 im72@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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