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운석

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

“당신의 방 안에 코끼리가 어슬렁거리고 있다고 상상해 보자. 당신은 코끼리를 방 밖으로 내보내기 위해 온갖 방법을 쓸 것이다.…. 결국 내쫓는 것을 포기하고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코끼리가 방안에서 움직이다 건드려서 부순 물건을 정리하거나 그 큰 덩치가 남긴 배변을 재깍재깍 치우는 일 정도이다. 그렇게 좀 귀찮아진 주변정리를 하면서, 마치 코끼리는 존재하지 않은 듯 외면하며 살아가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

‘내 권리는 희생하고 싶지 않습니다’(김지윤 지음)라는 책 프롤로그에 실린 내용의 일부분이다. MBC ‘100분 토론’ 전 진행자인 김지윤 박사는 이 책에서 우리가 알게 모르게 일상의 대부분을 지배하고 있는 불균형을 제대로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정작 눈길을 끈 건 프롤로그에 있는 ‘방 안의 코끼리’였다.

‘방 안의 코끼리(elephant in the room)’는 현 상황이 잘못된 것임을 알면서도 마치 코끼리를 전혀 보지 못한 듯 아무도 문제점을 거론하지 않는 것을 비유하는 표현이다. 워낙 중대하고 명백한 문제여서 그 말을 먼저 꺼낼 경우 초래될 위험이 두려워 그 누구도 먼저 말하지 않고 있는 상황을 말한다. 이 표현은 1959년 뉴욕타임스 기사에 처음 쓰였다. 공립학교의 재정 문제를 거론하며 ‘애써 피하고 싶지만,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문제’라는 의미로 썼다.

저자가 책의 프롤로그에서 이야기한 ‘방’은 우리 사회이다. ‘코끼리’는 감당하지 못할 만큼 커져버려서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르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이다. 애써 외면하고 있는 문제들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다들 코끼리를 방에서 내보내기 위해 애를 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코끼리가 보이지 않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편하게 살만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냥 코끼리에 일정 공간을 내어주기만 하면 나는 한쪽에서 별 어려움 없이 살 수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코끼리로부터 멀어질수록 안전하다는 것을 알고 나면 기를 쓰고 코끼리의 행동반경에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쓸 뿐이다.

지금 우리들의 방 안에는 어떤 코끼리가 자리 잡고 있을까? 부동산 문제일까? 역차별일까? 좌우로 극심하게 갈린 진영문제일까? 금수저·흙수저로 갈리는 부의 세습일까? 끊이지 않는 사고에도 변하지 않는 노동현장일까? 아니면 좁은 방안에 온갖 크고 작은 코끼리들로 가득 차 있을까?

결국 코끼리의 행동반경 안에 있는 사람들은 ‘비주류들’이다.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느끼는 기득권자들인 주류들은 비주류들이 코끼리의 행동반경을 벗어나려 애쓰는 걸 외면한다. 보이지 않는 선을 그어두고는 안전지대인 우리 구역으로는 절대 들어오지 말라는 투다.

비주류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건 코끼리 가까이 있는 게 불안하고 위험해서이다. 연일 터져 나오고 있는 산업재해만 봐도 그렇다. 지하철역 스크린도어 작업 현장에서, 항구 컨테이너 작업장에서, 화력발전소에서, 택배현장에서…. 이들이 쓰러져 갈 때 혹시 나는 딱하다는 동정심만 느끼고는 잊어버리지 않았던가? 사태 해결을 위한 공감대를 형성해본 적은 있었던가?

저자 김지윤 박사의 한마디가 귓가를 맴돈다. “누군가를 제물로 삼아 툭 던져 놓고 동정의 눈물을 흘리며 ‘그래도 내가 아니라, 내 자식이 아니라 다행이다’라고 할 것이 아니라, 한 번쯤 그 누구도 희생당하지 않도록 방법을 생각하는 사회를 꿈꾸며 자판을 두드렸다.”

방 안의 코끼리는 방치해두면 ‘검은 코끼리’로 변한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의 신조어인 검은 코끼리는 ‘검은 백조’와 ‘방 안의 코끼리’를 합성한 것이다. (검은 백조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 벌어져 충격을 주는 것을 말한다).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사건이란 것을 누구나 알고 있지만, 모른 척하며 해결하지 않는 문제를 검은 코끼리로 표현했다.

나는 어떨까 돌아보자. 나는 떨어져 있으니 괜찮겠지 라며 ‘방안의 검은 코끼리’를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가. 혹시 끊임없이 경쟁하며 검은 코끼리로부터 멀어질 궁리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젠 이웃의 아픔에 함께 고민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그런 사람이 필요할 때다. 다 같이 검은 코끼리를 방 안에서 내보낼 묘수를 고민할 때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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