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톳길/ 김지하

발행일 2021-06-14 14:28:25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황톳길에 선연한/ 핏자욱 핏자욱 따라/ 나는 간다 애비야/ 네가 죽었고/ 지금은 검고 해만 타는 곳/ 두 손엔 철삿줄/ 뜨거운 해가/ 땀과 눈물과 모밀밭을 태우는/ 총부리 칼날 아래 더위 속으로/ 나는 간다 애비야/ 네가 죽은 곳/ 부줏머리 갯가에 숭어가 뛸 때/ 가마니 속에서 네가 죽은 곳// 밤마다 오포산에 불이 오를 때/ 울타리 탱자도 서슬 푸른 속니파리/ 뻗시디 뻗신 성장처럼 억세인/ 황토에 대낮 빛나던 그날/ 그날의 만세라도 부르랴/ 노래라도 부르랴// 대숲에 대가 성긴 동그만 화당골/ 우물마다 십년마다 피가 솟아도/ 아아 척박한 식민지에 태어나/ 총칼아래 쓰러져간 나의 애비야/ 어이 죽순에 괴는 물방울/ 수정처럼 맑은 오월을 모르리 모르리마는// 작은 꼬막마저 아사하는/ 길고 잔인한 여름/ 하늘도 없는 폭정의 뜨거운 여름이었다/ 끝끝내/ 조국의 모든 세월은 황톳길은/ 우리들의 희망은// 낡은 짝배들 햇볕에 바스라진/ 뻘길을 지나면 다시 모밀밭/ 희디흰 고랑 너머/ 청천 드높은 하늘에 갈리던/ 아아 그날의 만세는 십년을 지나/ 철삿줄 파고드는 살결에 숨결 속에/ 너의 목소리를 느끼며 흐느끼며/ 나는 간다 애비야/ 네가 죽은 곳/ 부줏머리 갯가에 숭어가 뛸 때/ 가마니 속에서 네가 죽은 곳

「황토, 한얼문고, 1970」

남도의 황톳길은 누렇지 않고 차라리 붉은 핏빛이다.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온 피의 역사가 땅을 핏빛으로 물들였는지 모른다.‘‘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 막히는 더위뿐이더라’ 한하운 시인도 시 ‘전라도길- 소록도 가는 길’에서 황톳길을 붉고 숨 막히는 길이라고 노래하고 있다. 황톳길을 따라가다 보면 그 땅 위에서 피 흘리고 스러져간 선인들의 자취가 소록소록 떠오른다. 의병의 죽창, 동학군의 함성, 멀리 백제부흥군의 비명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붉은 땅의 험난한 운명과 한 맺힌 수난사가 가슴을 저민다.

현대사의 질곡 속에서 권력에 맞서 분연히 일어선 선인의 시련과 고난이 아직도 지속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고 가슴 아프다. 애쓴 보람도 없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렸다. 두 손이 묶인 채 삶을 태워버릴 듯 뜨거운 태양 아래 황톳길을 마냥 바라본다. 총칼의 위협을 받으며 핏빛 황톳길에 처연히 서 있다. 숭어가 뛸 때 가마니에 싸여 죽은 선인이 걸었던 길이다. 그게 운명이라면 기꺼이 그 뜻을 이어받을 터다.

탱자나무의 검푸르고 억센 속니파리는 이 땅에서 피 흘리며 쓰러진 의병과 동학군의 시신을 거름으로 받아 성장한 탓인가. 죽창을 만들던 대숲엔 아직도 대가 성글고 선인들 흘린 피가 여전히 솟구치고 있다. 죽순에 괴는 수정처럼 맑은 물방울이 일제의 총칼 아래 쓰러져간 선인의 고귀한 영혼임을 어찌 알지 못하랴.

동족상잔으로 이 땅이 유린될 즈음, 어린 꼬막마저 말라죽은 길고 잔인한 가뭄을 겪었다. 황톳길은 핏빛으로 물들었고 푸른빛 도는 내일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생존의 터전마저 잃고 개펄을 떠났지만 밭을 갈고 하얀 메밀꽃을 바라보면서 한 가닥 파란 희망을 일궈갔다. 한 십년 지나 다시 손발이 묶이고 고난이 찾아왔다. 황톳길은 말 그대로 수난의 여정이다. 더 많은 피를 황톳길에 쏟아 부을지라도 그 길을 뚜벅뚜벅 갈 것이다. 선인들이 그러했듯이. 선인의 피를 생명의 원천으로 삼아 시련의 역사를 극복하고자하는 몸부림이 처절하다.

오철환(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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