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하루 한나절만이라도 엄마가 오신다면/미루다 못 차린 밥상 눈물 섞인 밥 짓겠네/군 갈치 된장 보글 끓여서 꽃상 한번 차리겠네//내 고향 집, 다 삭은 몸 모락모락 만져주면/주름살 고랑마다 배인 근심 다 씻기겠네/아, 그때/철없이 대든 것/무릎 꿇고 빌겠네//하루 중 반나절이라도 엄마가 오신다면/내 품에 잠들 때까지 재잘재잘 말하겠네/못 다한 사랑의 말도 아낌없이 하겠네

「시조미학」(2021, 여름호)

김진희 시인은 경남 진해 출생으로 1997년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내 마음의 낙관’, ‘슬픔의 안쪽’, ‘바람의 부족’ 등이 있다. 유성호는 김진희 시인의 시조 세계를 두고 자기 자신에 대한 존재론적 탐색과정을 곡진하게 담은 서정의 보고라고 평하면서 시 쓰기 과정에 대한 메타적 인식과 표현이 다양하게 갈무리된 결실로 봤다. 즉 삶의 순간순간 찾아오는 자각과 충일의 과정을 시 쓰기로 비유하면서 결국 시 쓰기가 자신이 완성하고자 했던 존재론적 역동성의 은유 형식임을 고백하고 있다고 살핀 것이다.

‘딱 하루만’에서 화자의 마음은 그지없이 간절하다. 이 작품은 별다른 미학적 수식이 없지만 그 간절함 때문에 눈물을 참으며 여러 번 읽게 만든다. 처음에는 딱 하루만이라고 하다가 하루 중 반나절만이라도 엄마가 와 주시기를 바라고 있다. 사모곡이 하늘 높이 울려 퍼지는 듯하다. 딱 하루 한나절만이라도 엄마가 오신다면 미루다가 못 차린 밥상을 위해 눈물 섞인 밥을 짓겠노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영영 삭이지 못할 크나큰 회한을 엿본다. 군 갈치 된장 보글 끓여서 꽃상 한번 차리겠노라는 시의 화자는 이어서 내 고향 집, 다 삭은 몸 모락모락 만져주면 주름살 고랑마다 배인 근심 다 씻기겠노라고 읊조린다. 그리고 그때 철없이 대든 것을 상기하면서 무릎을 꿇고 빌겠노라고 노래한다. 하루 중 반나절이라도 엄마가 오신다면 자신의 품에 잠들 때까지 재잘재잘 속삭이면서 속 깊은 정을 나누겠네, 라며 못 다한 사랑의 말도 아낌없이 하리라고 다짐한다. 그러나 이 모든 생각과 감회는 희망사항일 뿐이다. 이미 엄마는 다시금 화자 곁으로 돌아올 수 없기 때문이다. 영원한 별리다. 추억 속에서만 아름답게 기억될 뿐이다. 바쁘다는 까닭으로 함께 한 시간을 많이 가지지 못한 것은 두고두고 후회로 남는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간절한 상상은 화자의 그리움을 안으로 다독이는 일이기에 소중하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가도 절절한 사모곡은 언제나 가슴 속 깊이 남아 여울물처럼 맴돌 것이다.

그는 단시조 ‘철새들’에서 저 군무는 바람의 쇼이자 생존의 전략이다, 라고 단정 짓고 허공 속 무희들이 팽팽히 대오를 지어 어디로 날아가는가, 라고 물으며 빈 하늘에 비행 중인 철새들의 군무로부터 바람의 쇼와 생존의 전략을 동시에 읽어내고 있다. 역동적인 이미지 구현이다. 또한 ‘해질 무렵’에서 바비가 휘몰아치던 그 광란 끝에서는 세상의 다친 길들이 거꾸로 처박힌 채로, 생살이 찢긴 채로 신음소리를 내는 것을 듣는다. 바비는 태풍 이름이다. 이제 다 지났다고 불행은 순간이라고 간당간당 열매 맺어 휘어지는 가지들이 안쓰러워서 하늘은 품에 안으며 노을을 덮어주는 것을 시의 화자는 유정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시는 대체 어디로부터 오는가? 때로 들끓는 나의 내면으로부터, 더러는 삼라만상으로부터 불현듯 나타나서 시인으로 하여금 펜을 들게 만든다. 끊임없는 혼자만의 중얼거림과 궁굴림 끝에 한 줄의 시는 잘 직조된 의미다발로 세상 속에 비로소 현현한다. 그 순간을 위해 쓰는 일을 거듭하는 것이다. 그것이 곧 사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정환(시조 시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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