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운석

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

‘맡김차림’이라는 생소한 말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유행이다. 맡김차림은 젊은 직장인들의 신조어로, 일식에서 주로 많이 사용하는 ‘오마카세’를 우리말로 바꾼 용어다. 오마카세는 ‘맡긴다’는 뜻의 일본어로 손님이 요리사에게 식재료, 메뉴 선정, 나오는 순서까지 모두 맡기고 요리사는 당일 최고의 식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내는 것을 말한다.

출발은 고급호텔과 일식집이었다. 주방장이 그날의 재료에 따라 정해진 메뉴 없이 코스형태로 내는 ‘주방장 특선 요리코스’에서 시작됐다. ‘스시 오마카세’가 원조인 셈이다.

요즘은 셰프가 임의로 음식을 만들어 내는 가게를 아우르는 말로 변했다. 범위도 스시에서 고급 한우, 커피, 차, 맥주 등으로 넓어졌다. 특히 일본어에 거부감을 가진 20·30대 젊은층이 오마카세 주소비층으로 떠오르면서 SNS를 중심으로 일본어 대신 ‘맡김차림’이라는 우리말을 쓰는 경우가 많아졌다.

오마카세가 유행한 것은 몇 년 전의 일이다. 초기에는 특급호텔 일식당에 가서야 즐길 수 있을 정도로 접근성도 떨어졌고 가격도 대부분 20만 원을 넘겨 일반인들로선 엄두를 못냈다. 요즘은 다른 분야로 오마카세 문화가 번져나가고 가격마저 착해져 유행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외식업계에선 오마카세가 가장 중요한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

중심에 선 건 한우업계다. 우리나라 외식 시장에서 한우가 차지하는 비중은 꽤 크다. 한국인은 여윳돈이 생기면 한우를 사먹는다. 코로나19로 작년에 지급된 재난지원금 소비형태를 봐도 그렇다. 거리두기가 장기화되면서 그동안 억눌러왔던 소비심리를 한우를 사 먹는 것으로 위로 받으려 한다. 게다가 구이 위주의 소비에서 가정식과 코스요리 등으로 다양화되면서 ‘한우 맡김차림(오마카세)’이 급성장하게 된 배경이 됐다. 고급 외식 시장이 열린 것이다.

커피와 디저트 분야로 영역이 확장된 것도 오래전이다. 몇 종류의 핸드드립 커피를 순서대로 맛볼 수 있도록 하기도 하고 코스요리처럼 3~4 종류의 디저트를 내놓기도 한다.

수제맥주가 인기를 끌면서 얼마 전부터 대구에서도 보이는 ‘맥주 오마카세’도 인기다. 맥주는 와인과 달리 스타일별로 맛과 향이 뚜렷하면서 다양하고 재료와 라벨디자인, 제조방법과 얽힌 이야기가 많다. 오마카세가 색다른 음주문화로 여겨지는 이유다. 4~6종류의 맥주 선정과 그 맥주와 어울리는 안주 역시 주인이 정한다. 오늘 이 맥주를 고른 이유, 맥주를 맛있게 즐길 수 있는 방법 등도 상세하게 설명을 곁들인다. 재미있는 맥주이야기와 음식관련 상식도 넓힐 수 있어 특히 젊은 층으로부터 인기다.

최근에는 일반 식당과 술집으로까지 오마카세 문화가 전파되면서 신조어까지 생기고 있다. 바로 ‘이모카세’다. 식당 주인을 말하는 이모와 오마카세의 합성어로 이 역시 식사나 안주를 주인에게 완전히 맡기는 형식이다.

코로나19 여파로 백화점 문화센터도 오마카세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정원을 대폭 줄여 4인 1조 혹은 2인 1조 등의 소수정예로 요리클래스를 운영하는가 하면 한 번에 두 종류의 체험을 하는 ‘하이브리드’ 강좌를 오픈하기도 했다.

소비자는 왜 이런 오마카세에 열광하는 걸까. SNS 영향이 크다. 단순히 초밥을 먹었다거나 한우구이를, 비싼 커피를 마셨다는 것은 SNS상에선 시시해보일 뿐이다. 몇십만 원을 훌쩍 넘길지라도 고가의 오마카세 정도는 돼야 SNS에서도 자랑삼아 지인들과 공유할 정도가 되는 것이다. 전문가의 상세한 설명을 듣는 특별함은 마치 대접받는 듯한 느낌을 줘 젊은 층을 끌어 들이는 원인이 되고 있다. 가격은 비싸지만 매번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좋은 제철 식재료를 즐길 수 있다는 점도 소비자들이 느끼는 매력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장기화로 실의에 빠져있는 외식업계에선 이런 오마카세가 새로운 활력소가 될 수도 있겠다. 일식, 한우, 중식, 커피음료를 넘어 외식업 전반으로 외연을 넓혀나가는 이유는 그만큼 소비자들이 매력을 느낀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잠시 한숨 쉬는 걸 멈추고 숨고르기를 하고 난 다음 다양하게 오마카세를 응용할 방법을 찾아보자. 오마카세를 한국어로 ‘맡김차림’으로 할지, ‘주방장 특선’으로 할지는 그 다음 일이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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