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희

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

파란 하늘의 구름이 가을을 연상하게 한다. 하얗게 몽글몽글 양털처럼 모여 온 하늘을 장식하고 있다. 양 떼들이 모여 푸른 풀밭을 누비는 듯한 구름을 올려다보니 문득 가을걷이라도 나서야 할 것 같다. 잰걸음으로 다가드는 뜨거움이 절정으로 향해 달린다. 한눈 파는 사이 싹이 난 감자를 버리기 아까워 땅에 묻어뒀다. 그것이 자라나 밭 전체를 덮었다, 무성하게 잎을 내고 하얀 꽃을 주렁주렁 달더니 땅속에서 열매를 맺어가고 있다. 감자가 한창인 텃밭으로 향한다.

목덜미에 닿는 햇볕이 따갑게 느껴진다. 하지다. 24절기 중에 태양의 남중고도가 가장 높은 절기로 본격적인 여름을 알린다. 그것을 아는지 못자리 논에서는 개구리 울음소리가 가득하다.

일 년 중에 낮이 가장 길고 밤이 가장 짧은 날이라는 하지. 낮의 길이가 가장 길고 밤이 가장 짧다고 알려졌지만 북반구 얘기다. 남반구에서는 하지에 낮의 길이가 가장 짧고 태양의 남중고도가 가장 낮지 않은가. 북반구에 사는 우리에게는 하짓날 정오 때 태양 높이가 가장 높고 일사 시간과 일사량이 가장 많은 날이다. 하지 이후부터는 기온이 본격적으로 올라 매우 더울 것이리라. 하지 때 식탁에 오르는 감자를 하지 감자라 한다. 강원도 지역에서는 감자가 유명하므로 특히 하지 때 파삭파삭한 햇감자를 쪄서 먹거나 갈아서 감자전을 부쳐 먹는다. 텃밭에 무성하게 자란 줄기를 뽑아보니 감자가 주렁주렁 열렸다. 땀 흘린 노동의 대가가 이런 것인가. 흐뭇한 마음으로 캐서 소쿠리에 담으니 지나던 이웃이 한마디씩 건넨다. 얼른 삶아 감자파티라도 열라고.

빛이 비치지 않는 어두운 땅속에서 부피를 키운 감자가 뜨거운 물속에서 구수하게 익어간다. 투명한 뚜껑으로 보이는 부슬부슬한 겉모습도 입을 유혹한다. 하지에 맛보는 하지 감자, 초보의 땀이 깃들어 있기에 존재마저 고맙고 맛을 더한다.

6월 말로 의료원 생활을 마무리한다. 1988년에 발을 들여놨으니 어느덧 33년이 순식간에 흘렀다. 그동안의 일들을 담담하게 때로는 뭉클하게 되새긴다. 새로운 길로 다시 발을 내디디며 다짐한다. 하루하루를 특별하게 예쁘게 마무리하기로. 파란 하늘 아래 선명한 능선을 드러내는 산의 모습처럼, 행복해지기 위해 갖춰야 할 것들이 분명하니까. 순간순간 행복하게 살아가고자 한다.

맑은 하늘 아래 바람이 일렁이는 마당 평상에 앉아 지인이 보내 준 영상을 봤다. 슬기로운 oo 생활이라는 프로였다. 의사로 살아왔지만, 사람들이 그렇게도 재미있다는 그것을 본 적이 없어 흥미로웠다. 선명한 화면구성에 이야기도 재미있다. 변덕스러운 요즘 날씨만큼 코로나19로 지쳐가는 사람들의 마음도 참 다양하지 않겠는가. 서로에 대한 표현법과 표정도 무척이나 다채롭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라고 하는 말도 있지 않은가. 남에게 유별스레 굴지 않고 조용히 자기 일에 충실한 사람을 진중하다고 표현하는 대신, 그를 음흉하다고 말하는 이가 있어 잠시 당황했다. 하지만 각도를 달리해서 생각해보면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는 데에는 같은 우리말이지만, 한 사람의 행동에 대해 또 180도 다르게도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슬기로운 생활시리즈가 유행인가 보다. 슬기로운 의사 생활도 시즌 2가 시작됐다. 양수가 터진 19주 산모가 병원 응급실을 찾는다. 응급실 당직 전공의가 산부인과 전문의 교수를 찾았다. 그러다가 그 산모에게 “너무 일찍 양수가 터져 아이의 폐에 문제가 생길 수 있으며 산모도 감염 위험성이 있으니 임신중절 수술해야 한다”고 팩트를 전달한다. 앞으로 일어날 수도 있는 문제에 관해서도 이야기한다. 산모는 절망에 빠져 울음을 터뜨린다. 정말 어렵게 가진 아이라고 제발 아이를 지키게 해달라고 애원한다. 산모는 블로그에서 본 다른 교수를 찾아간다. 그는 태아의 생존율은 낮지만 최소 주 수를 채우며 할 수 있는 조처를 자세히 설명해준다. 가능성은 아주 낮고 과정은 어렵고 산모도 감염 위험성이 있지만, 거기에 함께 대비하며 같이 치료해 나가보자고. 의아해하는 전공의에게 그가 가르친다. 현재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할 뿐이고, 가능성이 낮기는 해도 제로가 아니기 때문에 도전해보는 것이고, 산모와 태아에게 가장 좋은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제일 나은 선택이라고.

시간에 쫓겨 친절하게 설명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서로에게 마음을 여는 일이지 않겠는가. 산모의 절실한 마음에 공감하기에 주치의 교수는 그런 처방을 했을 것이다. 저마다의 삶에 쫓겨 팩트만 얘기한다. 간단명료하게 객관적으로 설명한다. 하지만 세상일은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경우가 많지 않던가.

조금은 느리게 조금은 멀리 한 발짝 떨어져서 다시 바라본다면 조금 새롭게 느끼게 돼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슬기로운 생활이 절실히 필요한 요즘이니까.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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