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터골 생활/ 남진원

발행일 2021-06-24 09:43:05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매미가 소란 떨어 더 짙은 녹색의 숲/때 아닌 소나기가 무위를 씻어냈다/앞 냇가 맑은 물소리 경전보다 더 희다//길섶에 도라지꽃 고향의 품안 같다/털 고운 강아지는 졸음에 들었는가/사방이 평화로우니 여기가 곧, 화엄장//해 뜨고 해가 지니 날마다 고마운 날/어둠 속 반짝이는 별을 보고 있노라면/영화는 한낱 남루라, 누구라도 알겠다

「시조21」(2021, 여름호)

남진원 시인은 강원 정선 출생으로 1980년 월간문학 신인상 시조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무소유의 냄새’ 외 다수가 있다. 그는 1976년 삼척군 탄광촌이 있는 학교에서 근무할 때 쓴 시조 ‘늦겨울 아침’으로 월간 ‘샘터’ 시조상 1석으로 뽑혔다. 그 때 가작 2석은 필자가 쓴 ‘새벽 산길’이었다. ‘늦겨울 아침’은 햇살이 눈을 밟고 달려오는 이 아침 지붕엔 토록 토록 겨울이 헐리는데 볕 묻은 흙담 밑에선 봄은 자리 트는가, 라는 아주 감각적인 단시조였다. 참으로 오래 전 이야기다. 시인은 문학과 함께한 반백년 동안 고통 속의 삶이었지만 호기로웠다고 고백하면서 신앙보다 강한 문학을 통해 참다운 행복과 영원한 삶을 노래할 수 있게 된 점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큰 결실이라고 ‘시조21’ 2021년 여름호 ‘소시집의 얼굴’ 시작노트에서 적고 있다. 깊이 공감이 가는 말이다. 하늘은 달을 띄워 보냈지만 눈 감고 어둡다고만 하다가 이제 달을 보는 즐거움을 느끼게 됐다면서 조용히 흙을 벗하며 세월과 함께 하겠다고 한다. 동심에 뿌리내린 무균질의 사유라고 평가 받는 그대로의 시풍이 작품 곳곳에서 얼비친다.

그런 삶의 모습이 ‘방터골 생활’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매미가 소란 떨어 더 짙은 녹색의 숲에 내린 때 아닌 소나기가 무위를 씻어내어 앞 냇가 맑은 물소리 경전보다 더 흰 것을 느낀다. 길섶에 도라지꽃은 고향의 품안 같고, 털 고운 강아지는 졸음에 들었으니, 사방이 평화로워져서 여기가 곧, 화엄장이라고 한다. 그리고 해 뜨고 해가 지니 날마다 고마운 날이어서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별을 보고 있노라면 영화는 한낱 남루라는 사실을 누구라도 알겠다고 말한다. 무위를 씻고 물소리에서 흰 경전을 읽으면서 고마운 날이 연이어지니 실로 화엄장에 든 느낌일 것이다. 아울러 영화로운 일들이 모두 남루가 될 수밖에 없다는 진술이 담백하게 읽힌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고즈넉함이 행간에 가득하다.

그는 ‘개구리 우는 밤’에서 시골 살이 더 바빠라 파종하니 어둑하네, 라면서 문을 다 열어놓고 자신이 허공처럼 앉았음을 느낀다. 개구리 소리를 들으면서 더는 그 무슨 부귀를 구할 일이 없음을 진솔하게 토로한다. 또한 ‘노을’에서 마당이 환해 문 열고 나가 보니 노을이 은은해서 눈을 뗄 수 없게 되자 인품도 이리 닮으라는 뜻으로 자연이 그림으로 그렸을까 하고 반문한다. 그뿐이 아니다. ‘어떤 재미’에서 우주가 뜻 그대로 거대한 허공 그물인데 분별은 본디 없어 출렁임 없는 데도 늘 오늘, 미혹에 걸려 출렁이는 재미까지 느끼는 경지에 이르고 있다. 사람인지라 어찌 미혹에서 쉬이 벗어날 수가 있을까? 그래서 시의 화자는 미혹에 걸려 자신이 잠시 출렁일 때 묘한 재미를 느껴서 요 재미, 라는 표현을 쓴 것으로 보인다.

강릉 방터골이라는 시골에서 그는 자연과 더불어 살고 있다. 몹시도 평화로워 보인다. 자신이 사랑하는 시와 늘 함께 하기에 그 기쁨은 배가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때로 미혹의 출렁임 속에서 남모를 재미를 맛보며 숲과 물소리, 별과 달 함께 지내니 날마다 고마운 날이어서 무장 행복한 삶이 아닐 수 없겠다.

이정환(시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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