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에 인생을 건 한 남자의 고군분투기, 공작 넌 나의 영원한 케미||공작의 화려한 군무를

▲ 윤종필 대표(왼쪽)가 홍상철 강소농민간전문위원과 공작의 특성과 사육관리 방안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
▲ 윤종필 대표(왼쪽)가 홍상철 강소농민간전문위원과 공작의 특성과 사육관리 방안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
‘고려 때 재상이 살았던 집 가리키니 황폐하다. 비바람에 흙담마저 기울었네. 모란과 공작은 다 스러지고 노랑나비 쌍쌍이 장다리꽃 위를 나른다.’

조선 후기 실학자 유득공이 단군의 왕검성에서부터 고려의 개성까지 21개 왕도의 모습을 노래한 ‘이십일도 회고시’에 나오는 개성의 모습이다.

화려함의 극치라고 할 수 있는 모란과 공작은 아무나 누릴 수 있는 호사가 아니었다.

모란의 탐스러움과 공작의 화려함은 상류층만이 누리는 특권이었을 것이다.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바뀌면서 모란과 공작이 있던 자리를 노랑나비와 무·배추의 꽃이 대신하고 있으니 유득공은 인생의 허무함을 느꼈을 것 같다.

공작은 동양의 정신세계에도 주인공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음양오행 사상을 바탕으로 한 사신도에는 동청룡·서백호·남주작·북현무가 자리 잡고 있다.

남쪽을 지키는 수호신인 주작(朱雀)은 곧 봉황(鳳凰)이다.

상상 속의 주작이나 봉황이 현실의 세계로 내려앉으면 공작(孔雀)이 된다.

어쩌면 공작이 상상의 세계로 날아올라 주작이 됐을 수도 있다.

주작의 작(雀)과 공작의 작(雀)이 같은 글자이고 꼬리의 모양도 흡사하다.

이런 이유로 사신도의 주작이 공작에서 유래했다고 추정한다.

최근 반려동물 사육인구 1천만 명 시대에 접어들었고, 종류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러나 공작을 키우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다.

성주에서 화려한 공작을 대량으로 사육하는 강소농이 있다. 일명 ‘새박사’로 통하는 대봉농장의 윤종필(49) 대표를 만나 공작에 얽힌 이야기를 들어봤다.

▲ 우리 안에 모여 있는 공작 무리. 파이드공작과 청공작, 백공작이 함께 모여있다.
▲ 우리 안에 모여 있는 공작 무리. 파이드공작과 청공작, 백공작이 함께 모여있다.
◆새는 나의 운명

대봉C&C를 경영하는 윤 대표가 새를 만난 것은 우연이었지만 운명처럼 느껴진다.

새를 좋아한 것도 아니었다.

키워 보겠다는 생각을 해보지도 않았다.

20년 전 아파트 쓰레기장에 버려진 빈 새장이 눈에 들어왔다.

‘괜찮은 물건인데 누가 버렸을까’라는 생각으로 주워 사무실 한편에 뒀다.

며칠 뒤 대구의 반월당을 지나다가 조류 판매점이 눈에 띄었다. 무심코 들어갔다가 십자매 한 쌍을 구입 한 것이 새와의 첫 만남이었다.

십자매는 왕성한 번식력으로 식구를 늘려나갔다.

작은 몸으로 알을 낳고 스스로 부화를 하는 모습이 신기했다.

새에 대한 관심은 잉꼬와 백문조로 이어졌다.

사무실 한편에서 기르던 새들은 숫자가 불어나면서 아파트로 옮겼다.

발코니에서 기르던 새들은 문간을 거쳐 거실까지 점령했다.

집안은 온통 새소리로 가득차고 새장을 청소하기에 바빴다.

장소를 옮기기로 했으나 마땅한 곳이 없었다.

결국 고향의 아버지에게 기댔다.

아버지는 사육하던 한우를 한 곳으로 모으고 작은 우사 한 동을 내어줬다.

남들은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았지만 아버지는 달랐다.

아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지원했다. 이제는 공작이 우사 3동을 모두 차지했다.

파이드공작과 스폴딩공작, 청공작, 백공작 등 공작만 200수에, 앵무새를 비롯한 소형 관상조류가 50종에 500여 수에 이른다.

한때 3천여 쌍까지 늘어났으나 이제는 소형종은 줄이고 공작 중심으로 조정하고 있다.

투자한 금액도 만만치 않다.

“아파트 한 채 값은 들어갔다”면서도 휴일이면 더 예쁜 새, 더 희귀한 새를 찾아서 전국을 뒤지고 다니는 윤 대표는 ‘새덕후, 새마니아’이다

▲ 윤종필 대표(오른쪽)가 성주군농업기술센터 백주야 농촌지도사와 함께 공작 사육과 향후 분양방안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 손에 있는 것이 새끼공작이다.
▲ 윤종필 대표(오른쪽)가 성주군농업기술센터 백주야 농촌지도사와 함께 공작 사육과 향후 분양방안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 손에 있는 것이 새끼공작이다.
◆품종개량과 아기공작 폐사율 제로

공작은 월조, 남객, 화리 등의 별칭으로도 불린다.

인도와 스리랑카 등지에서 서식하고 있으나 현재는 전 세계에서 관상조류로 사육되고 있다.

중국 황실에서는 식용으로도 사용돼 황제의 음식으로 통한다.

윤 대표와 공작의 첫 만남은 2004년이었다.

청공작 4마리를 구해서 기른 것이 시작이었다.

2009년에 전남 화순에서 흰 꼬리가 3개인 파이드공작 2마리를 구입해 청공작과 교배를 통해 품종개량을 시작했다.

공작은 흰색이 유전학적으로 열성이지만 관상용으로는 흰색 꼬리가 많을수록 우수한 공작으로 인정을 받는다.

흰 꼬리 3개로 시작한 품종개량은 현재 20개로 늘어났다.

그러나 근친교배로 인한 번식력 저하와 치사율 증가를 막아야 하기 때문에 외부에서 새로운 공작을 도입해 품종개량을 추진한다.

우수종을 계속 선발해 형질을 고정시킨다.

수명이 대략 25년 정도인 공작은 부화 후 3년이 되면 5~7개의 알을 낳고 5년이 지나면 10~20개를 낳을 정도로 최고조에 이르지만 이후에는 차츰 감소한다.

부화기를 이용한 인공부화와 닭을 이용한 대리부화로 사육은 닭과 비슷하지만 초기 폐사율이 높다.

처음 증식을 시작 했을 때 부화 1년차의 겨울을 넘기면서 50% 이상이 폐사했고, 2~3년차에 들어서면서 대부분 폐사하는 어려움도 겪었다.

초기 폐사를 막지 못하면 공작 사육은 불가능해 보였다.

교재도 없고, 배울 곳도 없었다.

병아리 사육 교재를 바탕으로 독학을 했다. 보온과 습도, 환기는 물론이고 사료와 급수까지 적용할 만한 내용들은 모두 적용해 독자적인 기술을 터득했다.

현재는 폐사율이 제로에 이른다.

▲ 방금 알을 깨고 나온 새끼공작.
▲ 방금 알을 깨고 나온 새끼공작.
◆ AI 멈춰!!

공작을 사육하는 일은 아름다운 깃털처럼 꽃길을 걷는 것은 아니다.

매년 발생하는 AI(조류인플루엔자)와 같은 전염병 앞에서는 무방비로 노출되기 때문이다.

2014년 전북지역에서 처음 발병한 AI가 전국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일 때 오리와 닭을 사육하는 농가들은 초긴장 상태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윤 대표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단 감염되면 발생 농장 3㎞ 이내의 모든 조류는 모두 예방적 살처분을 한다. 지금은 1㎞ 이내에 동일 축종만으로 한정하는 선택적 살처분으로 완화됐지만 공작도 AI의 공포를 벗어 날 수는 없었다.

닭이나 오리는 살처분 후에 재입식이 가능하지만 공작은 입식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더 긴장해야 했다. 만약에 인근지역에서 발생하면 그 동안 공들여 기른 수십 마리의 공작을 땅에 묻어야 할 판이었다.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고 아침저녁으로 소독을 했지만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공작 피난작전을 감행했다.

예전에 역병이 돌면 안전한 곳으로 피병을 가듯이 일부 공작을 옮기기로 한 것이다.

분산을 통해 멸종만은 막겠다는 궁여지책이었다.

우수한 공작 4마리를 선발해 충북지역의 농가에 맡겼다.

다행히 AI의 광풍은 피해갔다.

전염병 등으로 인한 멸종사태를 막고자 공작을 다시 옮기지 않고 4년간 정기적으로 충북을 드나들면서 관리를 했었다.

어느 정도 사육기술이 축적됐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피난을 보냈던 공작은 역시 돌려받지 않고 농가에 맡겼다.

판단 착오였다.

농가에 관리를 맡긴 후 2년 만에 모두 폐사했다.

대량 사육이 알려지면서 전국에서 분양요청을 해오지만 분양을 하지 않는다. 분양을 해도 사육에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공작 사육기술이 보편화될 때까지 보류하고 있다.

▲ 꼬리 날개를 활짝 벌린 공작 수컷. 번식기를 맞아 암컷을 향한 구애활동이다.
▲ 꼬리 날개를 활짝 벌린 공작 수컷. 번식기를 맞아 암컷을 향한 구애활동이다.
◆국내 유일 공작테마파크

윤 대표의 꿈은 크다.

공작을 주제로 한 공작테마파크를 만드는 것이다.

공작은 화려한 날갯짓을 하고 마음껏 지저귈 수 있고, 관람객들은 공작의 아름다운 모습을 감상하고 휴식을 취하면서 힐링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 것이다.

공작만이 머무는 공간은 아니다. 앵무새와 잉꼬새를 비롯한 소형 관상조류도 함께 지낸다.

테마파크 안에는 연못을 배치하고, 그 연못 안에 작은 정원을 만드는 것이다.

정원에는 공작을 비롯한 관상 조류를 배치하고 주변에는 비단잉어를 넣어서 기른다.

또 계절별 콘셉트에 맞는 꽃을 심을 계획이다.

이 연못 속의 정원을 사람과 공작, 비단잉어, 꽃이 겹겹으로 어우러진 특별한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공작의 화려한 모습을 영상으로 제작하는 영상 콘텐츠도 구상 중이다.

수십 마리의 공작들이 날개를 활짝 펴고 추는 군무를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매혹적인 예술로 승화시킨다는 계획이다.

윤 대표는 “수십 마리의 공작이 펼치는 군무를 미디어 파사드를 통해 야간에 건물 외벽에 비춰 화려한 도시경관을 꾸미고, 건물 로비에서도 연출해 사람과 공작이 함께 어울리는 특별한 공간이 만들겠다”며 “이런 계획들을 위한 준비 작업들을 차근차근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 윤종필 대표가 파이드공작의 특성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공작은 흰꼬리가 많을수록 고급종으로 평가받는다.
▲ 윤종필 대표가 파이드공작의 특성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공작은 흰꼬리가 많을수록 고급종으로 평가받는다.
글·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민간전문위원)



이동률 leedr@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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