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진

수성구립용학도서관 관장

인공지능(AI)으로 대변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식당에서도 로봇을 만나고 있다. 주문한 음식을 종업원이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로봇이 고객의 테이블로 배달하는 것이다. 올초 로봇이 음식을 배달한다는 말을 듣고 그 식당을 찾았던 필자도 처음에는 구경거리로 생각했지만, 이젠 크게 불편하지 않는 일상이 되고 있다.

이 때문에 인간의 사상과 문화를 연구 대상으로 하는 학문영역인 인문학(人文學)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더욱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공학자들만으로는 로봇과 인간이 공존하는 세상을 온전히 그려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인문학이 제대로 된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정립하는 것처럼, 인공지능이 작동되는 영역이 커지면 커질수록 기계와 인간의 사이를 정하는 규범이 절실해지는 것이다. 그러면 로봇 심리학자, 로봇 사회학자, 로봇 언어학자, 로봇 윤리학자, 로봇 철학자 등 인문학을 로봇에 적용한 직업이 생겨날 것으로 전망된다.

교육학용어사전에 따르면 인문학은 자연을 다루는 자연과학(自然科學)에 대립되는 영역이다. 자연과학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자연현상을 다루는 반면, 인문학은 인간의 가치 탐구와 표현활동을 대상으로 한다. 좁은 의미에서는 흔히 ‘문(文)·사(史)·철(哲)’이라고 이야기하는 문학, 역사, 철학이 인문학이다. 하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광범위한 학문영역이 포함된다. 미국 국회법은 언어, 언어학, 문학, 역사, 법률, 철학, 고고학, 예술사, 비평, 예술의 이론과 실천뿐만 아니라, 인간을 내용으로 하는 학문을 포괄적으로 인문학에 포함시키고 있다. 하지만 그 기준을 설정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의 일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인문학(humanities)이란 용어는 고대 로마의 정치가이자 철학자인 키케로가 교육 프로그램을 작성할 때 원칙으로 삼은 라틴어 ‘휴마니타스(humanitas)’에서 발생됐으며, 그 후에 고대 로마의 저술가인 겔리우스가 이 용어를 일반 교양교육의 의미와 동일시해 사용했다. 인문학을 중시하는 경향은 그리스와 로마를 거쳐 근세에 이르는 동안 고전적 교육의 핵심이 됐으며, 특히 18세기 프랑스와 19세기 영국 및 미국 교양교육의 기본이념이었다.

이처럼 아날로그 시대에 인간이 인간답게 살도록 하는 학문 영역으로 작동하던 인문학은 코로나19 사태로 가속화된 디지털 대전환 시대에 그 효능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향해 폭주하는 디지털 대전환이 진행되면 될수록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아날로그 영역의 기본인 인문학에 더욱 집중해야 하는 것이다. 인공지능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인간만이 수행할 수 있는 영역인 상상, 창의, 융합, 감성, 윤리 등을 더욱 육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반시민들을 위한 인문학이 확산될 공간으로는 자격과 비용 등에서 제약조건이 없는 공공도서관이 제격이라고 판단된다.

이 때문에 ‘인문학의 홍수’란 말이 나올 정도로 인문학을 상품화하는 경향도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인문학의 시장성이 있다고 강사와 자격증을 양산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공공도서관에 강사 자리를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 자신은 경력과 강의내용에서 다른 강사와 다르기 때문에 고액의 강사료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경우조차 있다. 인문학자로서의 본질을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용학도서관에서 경험한 남다른 인문학자들의 행보를 소개하고자 한다. 매주 수요일 저녁 ‘통청아카데미’를 운영하는 이태호 원장은 철학자다. 이 원장은 2019년부터 아무런 금전적 대가 없이 공공도서관을 찾는 평범한 시민들에게 인문학을 확산시키고 있다. 자신이 노자 철학과 화이트헤드 철학을 강연할 뿐만 아니라, 기꺼이 자신의 재능을 이웃과 나누려는 많은 인문학자들로 강사진을 구성했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코로나19의 감염 위험 때문에 도서관 이용자가 2019년보다 전반적으로 줄어들기는 했지만, 참석자가 많은 편이다.

역사학을 전공한 전직 교사인 임영창 선생은 자신이 평생토록 공부한 콘텐츠를 수년째 대가 없이 이웃 주민들에게 나누고 있다. 올해 들어서는 ‘보통사람이 읽는 원문’ 시리즈를 진행하고 있다. 대학과 중용 등 동양고전을 중심으로 한 원문 읽기를 주민들과 함께했으며, 다음달 8일부터 ‘보통사람의 원문 주역 간편 읽기’를 진행할 예정이다. 또한 방언학을 전공한 전직 국어교사인 신승원 선생도 올해부터 ‘새콤달콤한 우리 방언’이란 강좌를 재능나눔으로 진행하고 있다. 다음달 6일 시작되는 후반기 강좌를 앞두고 참가자를 모집 중이다.

2019년 초 재능나눔으로 통청아카데미를 진행하기에 앞서 이태호 원장에게 차를 대접하면서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전하자, “강사료를 보고 강연한다면 인문학자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란 이 원장의 반문에서 진정한 인문학과 인문학자의 가치를 엿볼 수 있었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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