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철환

객원논설위원

최근 전력생산단가가 우리보다 사오십 원 가량 싼 러시아와 중국으로부터 전력을 수입하는 방안이 공개됐다. 멀쩡한 원전을 포기하고 전력단가가 높을 뿐 아니라 수급마저 불안정한 신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해프닝이다. 울며 겨자 먹기로 무리하게 구상한 감마저 든다. 오죽하면 적성국 북한을 거치거나 송전선을 해저로 깔아 사회주의 국가에서 수입할 생각을 했을까. 정말 한심하다.

미래의 전력수급이 불안정하거나 부족하다고 예측된다면 그 원인을 찾아내서 그에 맞는 처방을 내리는 것이 상식이다.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그 원인과 처방을 쉽게 추론해볼 수 있다. 그 원인은 탈원전과 급속한 신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이다. 처방은 의외로 간단명료하다. 신재생에너지의 거품을 걷어내고 우리 환경에 맞는 싸고 안전한 차세대 원전을 연구·개발해 적극 활용하는 것이다.

생각을 바꾸면 답은 눈앞에 있다. 나라와 국민을 위한 일인데 그게 그렇게도 어려운가. 에너지는 이데올로기가 아니고 과학이다. 에너지 문제는 과학으로 풀어야 한다. 에너지 수급은 경제문제이기도 하지만 국가안보가 걸린 생존문제다. 에너지정책을 잘못 결정하면 나라가 망할 수도 있다. 아직 늦지 않았다. 원자력 기반이 붕괴되기 전에 조속히 결단해야 한다. 탈원전 정책의 과오를 인정하고 원전전문가 양성과 그 산업생태계 복원에 배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전력은 산업의 쌀이다. 우리나라가 급속한 산업화에 성공해 최단 시일에 선진국 대열에 합류한 것도 풍부하고 값싼 쌀을 산업현장에 안정적으로 공급한 덕분이다. 개발초기부터 원전의 진면목을 알아보고 기술개발과 원전건설에 공 들인 결과다. 지금 제4차 산업혁명이 한창이고 무공해 전기차가 확산일로에 있다. 전력수요가 폭발할 수 있다. 앞으로의 국가경쟁력 역시 풍부하고 값싼 전력의 안정적 공급에 달려있다는 뜻이다.

그런 중차대한 전력을 이념이 다른 이웃나라에서 수입하겠다는 발상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러시아는 천연가스를 틀어막고 단가를 제멋대로 인상한 전과가 있다. 중국 역시 사드 배치와 같은 군사·외교적 사안과 관련해 천박하고 감정적인 보복조치를 취한 전력이 있다. 이런 상황을 보고 또 직접 겪고서도 늑대 아가리에 목줄을 들이미는 마음을 이해할 수 없다. 더군다나 럭비공 같은 북한을 경유하는 송전선을 계획하고 있는 점은 경악할 이적행위다.

지구촌이 서로 도우면서 평화롭게 살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다툼 없는 평화로운 세상은 한낱 이상향일 뿐이다. 지구 인구는 부양능력을 넘어섰고 지구온난화로 식량생산이 줄어들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식량무기화가 현실이 되기 전에 식량자급이 화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산업의 쌀, 전력도 다르지 않다. 어떤 방법을 동원하더라도 전력자급을 확보해야 안전하다.

이웃나라는 잠재적 적이다. 역사적으로 우리 국토에 쳐들어와 전쟁을 일으킨 나라는 거의 대부분 이웃나라였다. 가까이 살수록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영토 야욕을 갖는 법이다. 그런 점에서 러시아, 중국, 일본 등 이웃나라는 가장 가능성이 큰 잠재적 적이다. 평화 시에도 군대를 보유하고 군사력을 키우는 이유는 잠재적 적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전력수급은 우리의 목줄이다. 잠재적 적국에 목줄을 맡겨두는 일은 어리석기 그지없다.

우리가 뒤로 간 4년 동안 원전은 숨 가쁘게 진화했다. 작고 효율적이며 사용 후 핵폐기물을 연소·처리하는 MSR(용융염 원자로), 화산지대나 쓰나미에 안성맞춤인 TMSR(부유식 토륨 용융염 원자로), 제4세대 원자로라는 IMSR(통합 용융염 원자로), SSR(안정된 소금 원자로) 등 업그레이드된 차세대 원자로가 경쟁하고 있다. 안전하고 싼 전력은 기본이고 탄소제로와 미세먼지 제로의 친환경, 사용 후 핵폐기물의 리사이클링, 그린수소 등 그 이점이 한둘이 아니다. 최고최선의 에너지원을 마다하고 엉뚱한 길을 가는 탈원전 정책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즉각 탈원전을 파기하고 차세대 원전 개발에 심혈을 쏟아야 한다. 지정학적 위치에 기인하는 국가안보위기를 원전기술로 돌파할 개연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 원전을 포기할 수 없는 말 못할 숨은 이유다. 원전이 문제가 아니라 탈원전이 문제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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