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해질녁이면 어머니는 커다란 양푼이에 콩가루와 밀가루를 적당히 섞어 반죽을 하고 선 양쪽팔로 홍두깨를 밀고 당기기를 반복했다. 홍두깨 미는 소리가 삭삭 리듬을 타는 듯 일정하게 들리면서 신기하게도 덩어리였던 반죽이 어느새 얇은 원형으로 변한다. 국수를 다 썰어 갈 때 쯤 어머니는 마술 같은 구경거리를 신기한 듯 쳐다보는 우리 남매에게 손바닥만 한 국수 꼬랑뎅이 몇 조각을 건네 주신다. 국수 꼬랑뎅이를 부엌에 가지고 가서 구우면 공기주머니처럼 부풀어 오른다. 요즘 흔한 간식거리인 ‘공갈빵’처럼 속이 텅 빈 ‘국수꼬랑뎅이구이’는 그렇게 고소할 수가 없었다.

국수이야기가 나오면 빠질 수 없는 것이 ‘안동국시’이다. 한 때 국수와 국시 차이에 관한 유머가 시중에 유행이 된 적이 있었다. ‘국수는 밀가루로 만들고, 국시는 밀가리로 만든다. 밀가루는 봉투에 담고, 밀가리는 봉다리에 담는다’는 등의 말장난이다. 여기서 국시는 국수의 경상도식 사투리이고 봉다리는 봉투를 말한다.

그런데 서울 유명 칼국수집은 대부분 ‘안동국시’를 상호로 내걸거나 메뉴판에 ‘안동국시’라고 표시한다. 그러나 정작 안동에는 ‘안동국시’간판이나 메뉴가 드물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즐겨찾았던 소호정, 김종필 전 총리가 즐겨 찾았던 혜화칼국수, 세브란스병원직원들과 서부지방법원직원들이 즐겨 찾는 마포 안동국시 등 서울 시내 유명 안동국시 집인 이 음식점들은 사골육수에 국수를 말아서 내오는 것이 특징이다.

청량리역 인근 경동시장에서 안동국시를 파는 ‘안동집’이라는 곳이 있다. 하루 평균 1천 그릇을 판다는 이 집은 점심시간이면 복도에 줄을 서서 먹어야 될 정도로 인기 있는 유명 맛집으로 통한다.

또 병산서원 가는 길목 한적한 시골 마을에 ‘병산손국수집’이 있다. 여기 음식점도 점심시간에 예약하지 않으면 줄을 서야 할 정도로 인기가 많은 음식점이다.

안동국시 맛집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이 두 집은 공통점이 있다. 콩가루가 들어간 국수면을 사용하고 배추전을 내 놓는다. 또 곱빼기가 없는 대신 추가를 원하면 얼마든지 그냥 덤으로 주는 넉넉한 인심이 있다.

안동집 사장은 화려한 옷을 입고 항상 밝게 인사해 손님들을 즐겁게 하며, 병산손국수는 젊은 주인장의 정겨운 인사와 구수한 안동사투리에 식혜는 덤이다. 이 음식점들은 사골육수가 아닌 멸치육수를기본으로 얼갈이 배추를 넣은 것이 특징이다. 사골육수와는 사뭇 다른 투박하면서 깔끔한 맛이 난다. 쫀득쫀득한 수육과 달달한 배추전은 착한 가격에도 그 맛이 일품이다.

우리나라의 국수 역사는 고려시대 몽골과 중국의 영향으로 전파됐고, 송나라 사신의 고려 풍속 기록에 의하면 국수가 귀해서 혼례식이 있어야 먹을 수 있다고 기록돼 있다. 국수는 긴 면발로 인해 장수를 기원하는 상서로운 음식으로 여겼고 밀이 귀했기 때문에 큰 잔치나 제사 때가 아니면 쉽게 맛볼 수 없는 음식이었다.

그나마 밀 재배를 한 지역이 안동지역이다. 안동 장씨가 쓴 ‘음식디미방’에서 밀가루를 오죽 귀했으면 ‘진(眞)가루’라고 표기했으며, ‘주자가례’(朱子家禮)등에서 ‘제사상에 국수를 올린다’는 것을 배운 안동지역 유생들이 밀 국수를 제사상에 올리던 문화에서 제례 음식으로 발전시킨 것이 안동국시이다.

안동지역은 콩재배 면적이 16㎢로 여의도 면적의 5배에 해당한다. 토질과 배수가 뛰어나 옛날부터 우수한 품질의 콩이 전국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는 곳이 바로 안동이다. 그래서 안동국시에는 콩가루가 들어간다.

이제 곧 장마철이다. 비 오는 날은 밀가루 음식 특히 국수를 찾는 사람들이 많다. 비가 오면 일조량이 줄어들면서 기분이 우울해져 본능적으로 자신이 필요한 영양소를 찾게 된다는 게 그 이유다. 밀가루의 단백질 주 성분인 ‘아미노산’과 ‘비타민B’ 두 성분이 주의력과 기억력을 향상시키고 생기를 불어 주며 행복 물질이라 불려지는 뇌 신경전달물질중 하나인 ‘세로토닌’을 구성하는 성분과 일치한다고 한다.

한의학에서도 밀가루는 ‘몸에서 열이 나고 답답한 사람이 먹으면 그 증상을 없애고 갈증을 해소하는 역할을 한다’며 우울하거나 스트레스가 쌓였을 때에는 밀가루 음식을 먹도록 권한다.

1년 반 넘게 지루하게 이어지는 코로나19로 심신이 허약하고 피로한 나날이 계속되는 이맘때 가족들과 오붓하게 주말 저녁 안동국시 한 그릇 하시더!

손동섭 농협손해보험 경북지역총국장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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