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에 대한 충성과 자기 부정

발행일 2021-07-08 14:23:36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알몬드와 버바에 따르면, 정치 문화란 사회구성원들이 공유하고 있는 정치적 규범이나 관습, 신념체계, 사고방식 등을 의미한다. 정치과정에 질서와 의미를 부여하며 정치의 심리적, 주관적인 여러 요인들의 집합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따라서 개별적으로 흩어진 각각의 의견이 아니라 일정한 구조 내지 체계를 가진 공통의 것으로 보고 생각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한 국가 시민들의 정치에 대한 정치적 성향이며 정치참여에 대한 인식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어떤 특수한 정치적사건에 관한 개별적 태도나 신조를 지칭하는 정치의식과 구별된다. 정치 문화는 정치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지속적으로 변화한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은 민주화의 역사가 짧은 국가들은 훨씬 더 빠른 속도와 범위로 정치 변화를 경험한다.

우리는 흔히 일본 정치를 계파 정치 혹은 보스 정치라며 비난한다. 일본의 보스 정치의 기원을 메이지 유신 이전 약 50~60년간의 사무라이들의 정치화로 보기도 한다. 도쿠가와 막부가 무너지며 수립된 새로운 정치 질서의 메이지 유신은 ‘군사적’ 투쟁이 아닌 ‘정치적’ 투쟁을 요구하게 된다. 300여 년간 지속돼 온 ‘앙시앵 레짐(구체제)’의 붕괴에도 불구하고 대규모의 전투나 폭력사태가 발생하지 않은 점은 그 구체적 방증이다. 칼 대신 유학을 비롯한 병학과 의학 등으로 무장한 사무라이들의 정치 투쟁이 일본 역사에 등장한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일본의 ‘조직 문화’에서 엿볼 수 있다. 보스를 중심으로 한 조직은 전체주의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조직 내 구성원들은 보스의 의사에 따라 행동하며 그 절차를 중시한다. 개인은 조직을 위한 희생을 당연시하며 윗사람에 대한 절대적 충성을 당연시한다. 패망이 가까워진 시기에도 일본의 조직문화의 특성은 고스란히 드러난다. ‘가미카제’ 특공대의 ‘제로센’ 전투기를 이용한 자살 공격은 천황과 자신이 속한 조직에 대한 충성과 희생이었다. 서로간의 견제 속에서 조직을 위한 희생을 우선시하는 문화는 ‘이지메(왕따)’라는 특이한 모습을 노출시키기도 한다. 조직의 구성원으로서의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을 민폐라 여기기에 그러한 무능력자에 대한 조직 내 ‘이지메’가 형성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것은 일본의 ‘번’제도에서 기인하는 조직으로부터 ‘버려진다’는 두려움과 조직 속에서 융화된 ‘편안함’의 극단적 대립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정치 현실은 어떠한가?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우리 정치문화는 절차적 민주화와 시민의 정치 참여를 활성화 시켜왔다. 권위주의와 군사 정권에 대한 저항과 승리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국민들의 정치 문화로 변화했다. 통계에 따르면 노태우 정부시절, 시위의 빈도 못지않게 청년층의 시위 참가비율이 가장 높았다는 점은 우리 정치 문화의 발전적 양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단순히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연결된 문제를 이슈로 내세운 것이 아니라 국가나 계층적 차원의 문제를 중시했다. 정치, 사회영역의 모든 문제에 있어서 정부의 책임을 요구한 것이 젊은 층을 비롯한 상당수 국민들의 태도였다. 정치문화의 중요 구성요소인 정치참여의 다양한 형태가 나타났으며 환경 및 사회 문제에 대한 이익단체 및 비정부 기구의 활동은 인권과 소수자 보호 등의 실질적 민주화를 지향했다.

하지만 김영삼의 ‘상도동계’와 김대중의 ‘동교동계’가 우리 정치에서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문민정부(김영삼)의 출발과 국민정부(김대중)와 참여정부(노무현)로의 진행은 민주주주의 발전을 상징하는 큰 변화를 겪었지만 여전히 ‘누구의 가신그룹’이라는 패거리 정치와 보스 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더불어 우리 정치문화의 고질적인 특징인 지역주의의 고착화와 확대 재생산은 정치 갈등을 심화시키는 원인이 됐다. 지역주의라는 고정변수에 의해 선거결과가 결정되었으며, 이념적 갈등과 세대별 갈등이라는 요인을 이용한 정치인들의 선동은 우리 정치를 왜곡하고 퇴보시켜 왔다. 이후, ‘빠’와 ‘팬덤 정치’로 바뀌면서 정치인만이 아니라 시민 참여라는 행태를 통한 ‘이지메’와 ‘린치’가 가해지고 있다.

최근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최재형 감사원장의 야권주자로서의 대선 출마가 가시화 되면서 여권의 비난은 도를 넘고 있다. 조직을 배반한 ‘자기 부정’의 사람이며 정치적 중립성에 크나큰 해를 끼치고 있다는 것을 그 이유로 들고 있다. 더불어, 여권 대권주자들은 ‘적통’을 내세우며 강성 지지자들의 눈에 들고자 몸부림치고 있다. ‘버려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조직’의 전체주의적 성향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다. 법의 해석과 적용을 다루는 전직 장관들이 대권 후보가 될 수 없다면 이를 총괄하는 전직 국무총리도 마땅히 후보가 될 수 없어야 한다. 두려워 해야 할 조직은 국민이 돼야 한다. 갖추어야 할 대통령의 자격은 도덕성과 공정을 실행할 가치관이다.

김시욱 에녹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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