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볼일 많은 곳, 아시아 최초 밤하늘보호공원 지정||청록파 조지훈 시인의 고향, 일월산

▲ 경북 영양국제밤하늘보호공원의 모습.
▲ 경북 영양국제밤하늘보호공원의 모습.
경북 영양은 흔히 온라인상에서 봉화, 청송과 함께 ‘BYC’로 묶이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오지로 꼽힌다. 군 면적의 대부분이 산지이며, 농경지의 73%가 밭이다. 인구도 울릉군을 제외하면 경북에서 가장 적다.

하지만 가기 힘든 곳을 애써 찾아가는 것이 바로 ‘오지 여행’의 참맛이다.

유명 프랜차이즈 카페나 빵집을 찾기 쉽지 않지만, 하늘의 별은 우리나라 그 어느 곳보다도 쉽게 볼 수 있는 곳이다. 오죽하면 영양군의 홍보 카피 문구로 ‘별 볼 일 없는 세상, 별 볼일 많은 영양’이 쓰일 정도다. 2015년 국제밤하늘협회(IDA)가 선정한 아시아 최초 국제밤하늘보호공원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여중군자’로 불리는 장계향 선생이 두들마을에서 최초의 하늘 조리서를 지은 두들마을, 청록파 시인 조지훈이 태어난 주실마을, 시인 오일도의 감천마을도 인문학의 고장인 영양의 특성을 대표하는 장소이며, 항일운동과 독립운동의 의사와 열사도 여럿 배출된 자랑스러운 곳이다.

한때는 신호등을 찾기 어려운 곳이라고 불리던 영양이지만, 위드 코로나 시대를 맞아 가장 적합한 관광지로 떠오르며 반전의 기회를 맞았다. 올 여름 휴가는 붐비지 않고 한적한 곳에서 완벽한 비대면 여행을 즐길 수 있는 영양으로 떠나 보자.

▲ 소설가 이문열의 고향으로도 알려진 영양 두들마을.
▲ 소설가 이문열의 고향으로도 알려진 영양 두들마을.
◆전통문화의 향기가 넘치는 마음속의 고향, 두들마을

두들마을은 조선 시대 광제원이 있던 곳으로, ‘언덕(두들)에 위치한 원이 있던 마을’이라고 해 원두들 원리라고도 부른다. 1640년(인종 18년) 석계 이시명 선생이 병자호란의 국치를 부끄럽게 여겨 벼슬을 버리고 들어와 학문연구와 후학 양성에 전념했고, 이후 그의 후손들이 자리 잡아 재령이씨 집성촌이 됐다. 소설가 이문열의 고향이기도 하다.

마을 옆 둔덕에는 석계 선생의 서당인 석천서당과 석계고택이 있다. 두들마을은 조선 유일의 여중군자로 불리는 장계향 선생이 지은 최초의 한글 조리서 ‘음식디미방’을 지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음식디미방체험관에서는 전통주부터 상차림까지 다양한 체험이 가능하고, 정부인 장씨 유적비와 예절관, 음식디미방 교육관, 전시관, 광산문학연구소, 북카페 등이 운영되고 있다.

▲ 검마산 일대에 자연 조성된 죽파리 자작나무숲 산책길.
▲ 검마산 일대에 자연 조성된 죽파리 자작나무숲 산책길.
◆초록의 힐링 여행, 영양 죽파리 자작나무 숲

별의 고장 영양에 최근 뜨고 있는 명품 숲이 있다. 영양과 울진의 경계를 이루는 검마산에 조성된 죽파리 자작나무숲이다.

1993년 죽파리 일대에 인공조림한 30.6㏊ 규모의 자작나무숲이 어느새 어엿한 청년 숲으로 자라났다. 공식 개장하지 않았지만 약 2㎞ 산책로가 자연 조성돼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접근이 수월하지 않은 덕분에 오히려 오지 자연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자연 풍경에 취해 걷다 보면 어느 지점부터 휴대폰 전파마저 끊긴다. 길이 잘 닦여있지 않아 험하기 그지없지만 그곳에 이르는 과정이 또 여행의 매력이다.

푸른 나무와 계곡물 소리는 더위를 말끔히 씻어줄 것이다. 자작나무가 만드는 특유의 빛깔이 지나온 길과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산책로는 경사가 급하지 않아 어렵잖게 오르내릴 수 있다.

▲ 청록파 조지훈 시인의 고향으로 알려진 영양 주실마을.
▲ 청록파 조지훈 시인의 고향으로 알려진 영양 주실마을.
◆빛을 찾아가는 길, 조지훈과 주실마을

일월면 주실마을은 조성된 지 400여 년이 넘은 마을로 한양조씨 동족 마을이다.

옥천종택(경북도 민속자료 제42호) 등 숱한 문화자원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원래 이곳은 주씨가 살았으나 1630년 조선 중기 조광조의 친족 후손인 한양인 조전 선생이 사화를 피해 정착하면서 주실마을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게 됐다.

이 마을에는 청록파 시인이자 지조론의 학자였던 조지훈 선생의 생가인 호은종택(경북도기념물 제78호)이 마을 한복판에 널찍이 자리 잡고 있다. 주실마을의 입구에는 외부에서 보면 마을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울창한 일명 ‘주실쑤’라는 숲이 있는데 장승을 뜻하는 사투리를 섞어 ‘수구막이 숲’이라고도 불렀다. 지금은 ‘시인의 숲’이라고 불린다.

▲ 영양국제밤하늘보호공원.
▲ 영양국제밤하늘보호공원.
◆별 보러 가자, 영양 맹동산풍력발전단지

석보면 맹동산(808m)과 무창리 일대에는 86개의 풍력발전기가 가동되고 있다. 인적이 드문 곳으로, 아는 사람만 가는 나 홀로 캠핑족의 아지트이자 숨은 차박 명소이다.

푸른 하늘 아래 펼쳐진 목초지와 맹동산 능선을 따라 그림처럼 자리 잡은 하얀 발전기가 이국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장엄한 일출과 아름다운 일몰, 사계절 변화하는 자연을 볼 수 있는 곳으로 드라이브코스와 인스타 성지로도 명성을 떨치고 있다.

수비 수하마을은 영양 안에서도 오지 중의 오지다. 밤하늘과 은하수 별 무리를 볼 수 있어 국제밤하늘보호협회(IDA)가 아시아 최초로 국제 밤하늘보호공원으로 지정했다.

이곳 주변에 있는 영양수비별빛캠핑장은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과 우주가 고스란히 장관으로 펼쳐진다. 가족들과 함께 과학책이나 천체망원경으로 경험했던 밤하늘의 풍경을 직접 경험해 보자.

▲ 일월산자생화공원 전경.
▲ 일월산자생화공원 전경.
◆아픈 역사를 딛고 일어선 꽃밭, 일월산자생화공원

경북 내륙에서 해와 달이 솟는 것을 가장 먼저 볼 수 있다는 일월산(1천219m) 입구에는 일월산에서 자생하는 64종의 야생화를 만날 수 있는 ‘일월산자생화공원’이 있다.

이곳은 과거 1930년대부터 8·15광복에 이르기까지 일제 치하에서 광물 수탈을 위해 일월산에서 채굴한 광물들을 제련하던 선광장이었다. 폐광석 찌꺼기를 방치한 탓에 토양이 심하게 오염돼 풀 한 포기 자랄 수 없었고, 인근 계곡은 물고기 한 마리 살 수 없는 채로 30년간 방치됐다. 2001년 오염원을 완전히 밀봉해 메운 후 그 위를 깨끗한 흙으로 덮고 각종 야생화와 조경수를 심어 전국 최대규모의 야생화공원을 조성했다.

1만8천여㎡에 달하는 공원에서 멸종위기에 처한 할미꽃, 하늘말나리 등 희귀 야생화는 물론 64종의 야생화와 1만 그루가 넘는 향토수종의 조경수를 감상할 수 있다. 청록파 시인 조지훈의 시비석과 전망데크, 정자 등 각종 편의시설도 갖춰져 있다. 공원 뒤편 배경화면처럼 위치한 옛 선광장 시설은 마치 고대의 유적 같은 웅장한 느낌마저 든다.

▲ 단풍 명소로도 유명한 외씨버선길.
▲ 단풍 명소로도 유명한 외씨버선길.
◆조붓하고 맵시 있는 외씨버선길

국내 600여 개의 걷는 길 중에서 이만큼이나 이름이 예쁜 길이 있을까. 바로 조치훈의 시 ‘승무’에서 이름을 딴 외씨버선길이다.

외씨버선이란 오이씨처럼 볼이 조붓하고 갸름해 맵시가 있는 버선이다. 길의 모양이 마치 외씨버선과도 같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이름만큼이나 길의 풍경도 아름답다.

외씨버선길은 영양군과 봉화군, 청송군을 지나 강원도 영월까지 잇는 총 13개의 구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총 길이는 240㎞에 달한다. 영양 구간은 69.8㎞이며, 그중 가장 인기가 있는 제7길 ‘치유의 길’의 시작점이 바로 일월산자생화공원이다. 일월산자생화공원에서 시작해 반변천 계곡 길과 대티골 아름다운 숲길을 거쳐 우련전에서 끝난다.

붉은 금강송과 신갈나무, 굴참나무 등 키 큰 아름드리나무들이 즐비한 길을 걸으면 촉촉한 흙내음과 나무 향이 솔솔 올라온다. 완연한 오르막길이어서 느긋하게 산책하듯 걸을 수 있다.

▲ 칼날 같이 우뚝 솟아 있는 선바위와 남이포.
▲ 칼날 같이 우뚝 솟아 있는 선바위와 남이포.
◆낙동정맥을 따라 흐르는 물과 환상의 절경, 선바위관광지

일월산 동서쪽에서 흐르는 두 개의 물줄기가 입암면 연당리 무이산 남쪽 자락에서 만난다. 남이포라 불리는 곳인데, 남이포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맞은 편에는 칼날처럼 하늘을 찌르는 바위가 우뚝 서 있다. 이를 선바위라 한다.

선바위는 겸재 정선의 그림 ‘쌍계입암’의 배경이기도 하다. 선바위관광지에 서면 거대한 뱃머리 같은 남이포의 절벽과 칼날 같은 선바위가 한눈에 들어온다. 선바위관광지는 분재야생화테마파크와 석문교 음악분수, 영양고추홍보전시관, 민물고기 전시관 등이 있는 종합형 관광지다.

▲ 선바위 인근에 있는 서석지 전경.
▲ 선바위 인근에 있는 서석지 전경.
선바위 인근에 있는 영양서석지는 담양의 소쇄원, 완도의 세연정과 함께 조선 시대 3대 민가정원으로 꼽힌다. 선바위와 남이포를 석문이라 이름 짓고 자신의 호로 삼은 조선 선조와 광해군 때의 선비 정영방 선생이 16년간 조성한 공원이다.

400년 된 은행나무가 기대선 입구를 들어서면 경정과 주일재가 사각 연못을 끼고 자리한다. 마당 전체가 연못이다. 정영방이 연못을 조성할 때 땅속에서 나온 기괴한 형상의 돌은 ‘서석’이라 해 그대로 정원석으로 삼았다고 한다. 물 위로 드러난 서석은 60여 개, 잠긴 서석은 30여 개다. 이 서석에는 다들 이름이 붙어 있어 정영방 선생의 서석에 대한 사랑을 가늠할 수 있다.





이승엽 기자 sylee@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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