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어네거리에서 30대 당대표, 신선하고 당당했다

발행일 2021-07-12 14:18:19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30대 중반의 나이에 제1야당인 국민의힘 당권을 거머쥔 이준석 대표. 그가 당 대표 경선 과정에서 보여준 행보는 그동안 정치판에서 경험하지 못한 것이었기에 취임 한 달을 맞았지만 진한 여운을 남긴다. 모든 걸 정치적인 행보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기존 정치와는 결이 달랐다. 국민의힘 당 대표 경선 선거운동이 시작된 지난 5월24일, 그는 백팩 하나 달랑 메고 공보과장 1명만 대동한 채 대구 서문시장을 찾았다.

수많은 보좌진과 추종 세력에 둘러싸여 상인회 사무실을 찾아 상인대표와 차담을 나눈 뒤 시장을 도는 기성 정치인들의 공식을 거부했다. 이후 1주일간 지역 내 대학과 시내중심가, 프로야구 경기가 열리는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를 찾을 때는 전용 차량이 아닌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전용 차량 없이 대중교통으로 전국을 순회하며 똑같은 행보를 보였다. 북유럽 정치 선진국에서나 있을법한 정치인의 행보여서 더욱 신선하게 다가왔다.

선거전의 필수 항목으로 꼽히는 매머드급 캠프 사무실과 지원 차량을 아예 갖추지 않았다. 홍보용 문자메시지도 배제하는 등 ‘3무(無) 선거운동’을 펼쳤다. 중진의 경쟁 후보들이 국회 인근 빌딩에 사무실을 빌려 대규모 캠프를 차린 것과는 완전히 다른 행보다. 저비용 선거 운동을 선보인 것이다. 과정은 결과로 나타났다. 3주 동안 사용한 선거 비용은 3천만 원. 정산 결과를 보면 캠프 관계자(5명) 등 인건비 약 1천500만 원, 공약집 등 소형 인쇄물 약 900만 원, 고속철도(KTX)·지하철 등 교통비 500만 원가량을 사용했다. ‘소액모금 돌풍’으로 화제를 모았던 1억5천만 원의 후원금도 다 쓰지 못한 셈이다. 이도 페이스북을 통해 사흘 만에 모았다.

‘탄핵의 강’도 보란 듯이 당당하게 건넜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찬동파로 유승민 전 의원과 함께 그동안 대구·경북에서 비난받는 보수당의 적폐 프레임에 갇혔던 이준석 대표. 지난달 3일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6·11 전당대회 대구·경북 합동연설회에 참석한 그의 입에 지역 당원들의 눈과 귀가 쏠렸다. 중진 후보들이 “통합신공항을 박정희 공항으로 이름 붙여 추진하겠다(나경원 후보)”, “대구·경북이 힘을 합쳐야 지역 현안을 해결할 수 있다(주호영 후보)” 등 시·도민들이 듣고 싶어 하는 공약을 내걸 때 그는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은 정당했다”면서 그동안 지역에 하고 싶었던 이야기로 승부수를 던졌다.

“유승민이 건너지 못한 탄핵의 강을 이준석이 건넜다”는 평가가 나왔다. 유 전 의원이 박 전 대통령과 사이가 안 좋아진 것은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는 국회 교섭단체 원내대표 연설이었다. 그렇게 멋있는 연설을 해놓고 2016년 20대 총선에서 정말 멋없는 선거를 했다. 당시 무소속으로 출마한 본인의 선거사무실에 박 전 대통령 사진을 걸어놓았다. 새누리당에서는 사진 가져와라, 못주겠다, 웃픈 논란이 펼쳐졌다. 이런 애매모호한 태도 때문에 유 전 의원은 탄핵의 강을 건너지 못했다.

반면 이 대표는 합동연설회를 계기로 탄핵의 강을 정면으로 건너버렸다. 그것도 보수의 심장이자 박 전 대통령의 고향인 대구에서 말이다. 이것으로 이준석이라는 정치인이 가지는 존재감은 유승민을 넘어섰다. 더 이상 그를 유승민계라고 평가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탄핵의 강을 건너지 못하면 국민의힘 입당이 어려울 수도 있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위한 판을 깔았다는 해석도 나온다. 유 전 의원도 ‘배신자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당선 뒤의 행보도 눈길을 끈다. 이른바 ‘0선’이라는 세간의 조롱 때문에 우려도 컸지만 국가 의전 서열 7위인데도 자전거를 이용해 출근을 하거나, 지하철을 타고 행사장을 찾는 탈권위주의, 흥행 대박을 터트린 대변인 선발을 위한 토론 배틀, 윤 전 총장 등 대권주자 및 당내 중진 의원들과의 수싸움 등 꿋꿋하게 능력을 입증하고 있다.

하지만 만만치 않은 과제들도 도사리고 있다. 공약으로 내세운 야권 대통합이라는 결과물을 내놓아야 한다. 당내에서는 기대와 함께 정치경험과 연륜 부족을 우려하는 시선도 엄연하다. 정권교체가 최대 목표인 국민의힘을 어떻게 끌고 나가는 지 지켜보는 눈이 많다. 이 대표의 선출이 정치권 전체의 쇄신 경쟁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기대감도 높다.

김종엽 편집부국장 겸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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