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미술관’ 후보지가 사실상 서울로 결정됐다. 공모 절차나 하다못해 공청회라도 거치길 기대했던 서른 곳이 넘는 지자체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다. 지방은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위기상황에 처해 있다. 출산율이 바닥을 치고 있는 데다 유출 인구마저 늘어나고 있다. 이 절체절명의 위기도 감당하기 버거운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역병까지 돌아 지방은 멘붕이다. 대학은 문 닫을 판이고 초중고는 학급정원을 줄이는 미봉책으로 잉여 교원을 돌리고 있다. 말로만 듣던 지방소멸을 실감한다.

대구는 위기의 중심에 서 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치열한 미술관 유치경쟁에 뛰어들었다. 삼성 창업 유적지와 이건희 회장 생가가 남아있는 지라 이건희 미술관은 대구에 건립돼야한다는 당위성에서 비난을 무릅쓰고 건립비 전액을 대구시에서 부담하겠다는 건곤일척의 승부수를 던졌건만 상황 파악도 못한 채 헛발질만 한 꼴이 됐다. 대구 출신 총리와 여당 출신 부시장에 대한 실낱같은 기대도 순진한 꿈에 불과했다.

아흔아홉 마리의 소를 가진 사람이 백 마리를 채우기 위해 달랑 한 마리 가진 사람의 소를 빼앗는다는 이야기가 문득 떠오른다. 있는 자가 더하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부문에서 사람과 물자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서울이다. 이건희 미술관 하나 정도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일 텐데, 굳이 그것마저 차고앉겠다는 것은 탐욕이다. 걸리는 대로 모조리 집어삼키는 불가사리와 무엇이 다른가.

공모 절차나 공청회를 거쳐도 서울을 넘기 힘겹다. 지방에 어드밴티지를 주고 해도 될 동 말 동이다. ‘국가기증 이건희 소장품 활용위원회’에서 그렇게 옹색하게 결정하지 않아도 뜻대로 될 일을 도둑놈 장물 처리하듯 얼렁뚱땅 방망이를 두드리는 행태를 보면 뭔가 켕기는 구석이 있다. 그래서 ‘답정너’라는 말이 나온다. 답은 정해놓고 너는 대답만 하면 된다는 것 아닌가. 통합된 별도 공간을 만들라는 높은 분 말씀대로 그렇게 결론이 난 것처럼, 그 건립 위치도 사전에 답을 서울로 정해놓고 위원회에 독박을 씌웠다고 의심하는 것이다.

후보지 결정의 기본원칙으로 제시한 ‘국민 문화향유 기회 확대와 국내외 박물관 협력 확장성’은 황당한 고무줄 잣대에 다름 아니다. 전국 어디라도 불과 몇 시간이내에 갈 수 있는 일일생활권 국가에서, 비대면화상회의가 대세가 된 고도정보화 사회에서, 그런 기준은 전혀 어울리지 않을 뿐더러 차별성도 없다. ‘연관 분야와의 활발한 교류와 협력, 상승효과를 기대할만한 충분한 입지 조건’은 의도적으로 서울에 짜 맞춘 조건일 뿐이다.

서울 입지를 결정해놓고 “지역문화 활성화를 위한 지원을 강화하고, 권역별 분포와 수요를 고려한 국립문화시설 확충 및 지역별 특화된 문화시설에 대한 지원 방안도 검토한다”는 말은 비난을 잠시 모면하기 위한 수사에 지나지 않는다. 상식적으로 수긍할 만한 곳으로 결정됐다면 그런 구차한 변명은 불필요하다. 그렇게나 지역균형에 신경 썼다면 본관을 지방에 두고 서울에 분점을 건립하는 방법을 선택했을 터다. 관람자 수에 비례해 지역별 순회전시기간을 정한다면 문화향유 기회 확대와 교류 협력, 상승효과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2028년 완공할 계획이라면 시간은 넉넉하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공모 절차와 공청회를 거쳐 국민의 합의를 도출하자. 위원 수도 늘리고 지방 출신이 과반을 넘어야 공정하다. 이론적 입지조건보다 상위의 가치가 있다면 이를 존중하고 기준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맞는다. 지나가던 사람이 오다가다 미술관에 들어와 고급문화를 향유할 거란 생각은 잘못된 신화다. 진짜 문화를 향유할 사람은 마음먹고 별도로 시간을 내어 오랜 시간 머문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 반드시 적지인 것은 아니다.

서울의 지속적 번성은 지방의 활성화 위에서 가능하다. 지방이 소멸하면 서울도 추락한다. 서울만 잘 살겠다고 우긴다면 지방 사람을 서울로 이주시키고 지방은 자연공원으로 남겨두는 방법도 있다. 그렇지 않고 지방을 서울공화국 식민지 취급한다면 지방 독립운동은 자연스러운 절차다. 있는 지방도 감당하지 못하면서 통일하겠다는 건가. 막다른 골목에 몰리면 쥐가 고양이를 무는 법이다.

오철환 객원논설위원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저작권자 © 대구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