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화도 포구에서 귀향하는 뱃길은/잔잔한 날보다는 바람 부는 날이 많다/햇살도 바람에 밀려 구름 속에 숨어든다//디딜 곳 한 점 없는 벼랑 끝에 몸을 맡긴/개동백 겨드랑이 꽃망울은 맺혔는데/쥐었다 놓친 꿈들이 파도 되어 휘날린다//힘주어 버텨왔던 땡볕 같은 여름 한때/스산한 바람 곁에 번지다만 넝쿨처럼/끝 모를 수평선 위를 날고 있는 한 마리 새

「작약이 핀다」(2019, 고요아침)

김승봉 시인은 2004년 현대시조로 등단했고, 시조집으로 ‘작약이 핀다’, ‘낯선 곳에서 길을 묻다’가 있다.

제목 ‘불혹’은 사람 나이 마흔 살을 달리 이르는 말로 미혹 되지 아니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무슨 일을 당해도 망설이지 않는 나이로서 슬기로운 사람은 도리를 잘 알기 때문에 어떤 일에도 홀리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요즘은 그렇지도 않다. 평균 수명이 길어지면서 마흔은 예전에 비하면 청춘이라고 할 만하기 때문이다. 첫머리에 등장하는 통영 연화도는 바다에 핀 연꽃섬이다. 억불정책으로 연화도로 피신해 수행하던 연화도사의 유언에 따라 바다에 시신을 수장하자 도사의 몸이 한 송이 연으로 변해 승화했다 하여 연화도라 불리게 됐다고 전해온다. 섬전체가 수국이 만개할 때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시의 화자는 연화도 포구에서 귀향하는 뱃길은 잔잔한 날보다는 바람 부는 날이 많다, 라면서 햇살도 바람에 밀려 구름 속에 숨어드는 것을 살핀다. 그리고 디딜 곳 한 점 없는 벼랑 끝에 몸을 맡긴 개동백 겨드랑이 꽃망울은 맺혔는데 쥐었다 놓친 꿈들이 파도 돼 휘날리는 것을 본다. 살다보면 실로 쥐었다가 놓쳐버린 꿈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꿈은 꿈일 뿐이라고 말하기에는 품은 꿈들에 대한 애착이 클 것이다. 이뤄진 꿈보다 이루지 못한 꿈이 훨씬 많은 삶을 우리는 그래도 어기차게 영위하고 있다. 그 순간 화자는 힘줘 버텨왔던 땡볕 같은 여름 한때 스산한 바람 곁에 번지다만 넝쿨처럼 끝 모를 수평선 위를 날고 있는 한 마리 새를 예의주시한다. ‘불혹’의 셋째 수 종장에서 보듯 끝 모를 수평선 위를 날고 있는 한 마리 새는 화자의 초상이기도 하다. 그 어디에도 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의 표상이다. 치열한 삶의 현장이기도 한 여름 바다에서 귀향하는 한 척의 배는 거센 바람을 맞으면서 돌아온다. 불혹에 이르러 뜨겁게 내리쬐는 땡볕을 온몸으로 받으며 항해하는 한 사나이의 그을린 얼굴이 저절로 그려진다. 열정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바다사나이다. 대양을 품은 장부의 모습이다. 평생을 바다와 더불어 신산의 파고를 넘나들었으니 무엇을 하지 못하랴. 무엇이 두려우랴. ‘불혹’은 그런 의지를 담백하게 형상화하면서 진정한 삶의 길이 무엇인지 깨우쳐준다.

그는 또 ‘작약이 핀다’에서 밤새도록 뻐꾹새가 울어 쌓던 늦은 봄날, 멀미의 그루터기 마른 흙에 금을 긋고 빠알간 속살을 품은 대궁 하나가 고개를 내미는 것을 본다. 한낮 햇살에 따사롭게 청보리가 익어가고 튼실한 뿌리의 생은 푸른 꿈으로 물들고 있는데 영그는 봉오리마다 찾아드는 산들바람으로 말미암아 어제 모란 지고, 오늘 작약이 피는 것을 반긴다. 사실 모란도 그러하지만 작약은 이름조차도 설레게 하는 꽃이다. 몇 번이고 작약, 작약하고 부르면 한 아리따운 이가 눈앞에 곧 다가설 것만 같기 때문이다. 주고받은 언약도 없이 계절은 분주한데 뜨거운 오월의 햇살 아래 시의 화자는 영문도 모르는 신열을 앓으며 몹시도 고단한 뜰에 서서 막 피어난 작약 꽃을 바라보며 긴 생각에 잠긴다.

단시조 ‘윤달’을 통해 쓰고 남은 시간들을 자투리로 모아두고 하늘도 쉬어 가고 땅도 쉬어가는 깊은 산 바람을 따라 길 떠난 사람아, 라고 노래한 것처럼 혹여 멀리 떠나간 그 사람을 못내 그리워하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

이정환(시조 시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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