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속도 5030 정책이 세 달의 계도기간을 거쳐 지난 17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고속도로·자동차전용도로를 제외한 도시부 일반도로는 최고 시속 50㎞, 소통상 필요할 경우 예외적으로 시속 60㎞로 조정가능하다. 그리고 보호구역·주택가 이면도로는 최고 시속 30㎞다. 특정 실험지역의 시범운영 결과와 세 달의 계도기간 통계를 들어 긍정적인 것으로 홍보하고 있다. 그렇지만 의미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도 있다. 그 관찰기간이 짧고 변동 폭 또한 미미하다는 점, 실험대상에서 나타나는 심리적 속성으로 인한 착시일 수 있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관찰 기간이 단기간이기 때문에 실험 대상 지역의 교통 계도 활동이나 단속 환경을 조정함으로써 사고 발생 건수나 통행속도가 일시적으로 개선될 수 있는 개연성이 크다. 교통사고를 줄여야 성과를 높이는 행정청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운행속도를 줄이는 정책이 부처이기주의나 행정편의주의에 부합된다는 사실을 재빨리 인식할 터다. 실험 결과가 긍정적으로 나와 안전속도를 하향 조정하는 일에 전향적으로 대응할 유인을 갖고 있는 셈이다. 느슨한 통제가 후한 점수를 이끌어내는 역할을 수행한다. 단기간이라는 조건에 미미한 변동 폭이 결합하면 통계의 신뢰성마저 미심쩍어지는 것이다.

실험 대상 지역의 관련자들이 의식적인 대응을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실험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긍정적으로 반응한다는 점이 실험대상의 심리적 속성이다. 이러한 인간심리는 의도하는 성과로 인도한다. 원래의 실험 의도나 목적을 형해화시킬 수 있다. 여기에 호손실험을 끌어온다손 견강부회라 치부할 수만은 없을 듯하다. 호손실험은 하버드대학의 심리학자 메이요와 경영학자 뢰슬리스버거에 의해 수행된 실험이다. 조명과 노동생산성의 상관관계 규명이라는 원래 실험 의도와 달리 실험 목적을 실험대상이 알게 됨으로써 발생하는 심리효과를 밝혀낸 것이다. 특정지역에 한정된 단기간의 실험이 목적과 관련정보가 노출된 상황에선 결과가 왜곡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안전한 보행환경 조성이라는 선한 정책 목적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다. 허나 그러한 목적 달성에 타율적 강제적 방법이 최선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보행자 안전은 여러 가지가 방법으로 추구될 수 있다. 자율적 방법이 최선이다. 제일 기본적이고 중요한 것은 생명과 안전에 대한 국민의 올바른 가치관 정립이다. 자기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자 한다면 남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줘야 한다는 사실이 기본이다. 이러한 생각이 확고하다면 음주운전은 사라질 것이고 상식을 벗어난 난폭운전이나 도로환경과 동떨어진 과속은 설 자리를 잃게 될 터다.

끈질긴 교육과 결과에 대한 책임추궁이 전제 돼야 자율적 통제가 탄력을 받는다. 건전한 시민사회 정립을 위한 기본 소양은 평생에 걸쳐 지속적으로 함양돼야 할 주제다. 그 성과가 느리고 미미하다고 조급해 할 필요는 없다. 비록 더디더라도 근본적이고 효율적인 처방이라면 꾸준하고 일관되게 밀고가야 효과가 나타난다. 아울러 생명을 훼손하고 안전을 해할 경우엔 반드시 그에 상응한 응징으로 엄중히 다스려져야 한다. 확실한 인과응보가 철칙처럼 따른다는 인식이 각인돼야 자율적 통제의 내적 규율이 제대로 기능한다.

“속도를 줄이면 사람이 보인다”는 감성적인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공감이 간다. 허나 차안에 타고 있는 사람도 함께 봐야 한다. 보행자와 운전자는 고정된 지위가 아니다. 양자의 위치가 수시로 바뀌는 현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따라서 어느 일방에 치우치는 정책은 맞지 않다.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하다. 안전속도의 경우도 양쪽 모두 만족하는 균형점에서 결정돼져야 한다. 안전속도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주위에 범람하는 상황은 균형 잡힌 만족점이 아니란 의미다.

생명과 안전에 경제문제를 들먹이는 것은 천박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교통정체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나 저속운행에 따른 기름 낭비와 대기환경 오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럴 리 없겠지만 혹시라도 보험사 등 이해관계자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았는지 점검해볼 필요도 있다. 안전속도5030을 편법운전으로 피해간다면 부작용만 불거질 건 뻔하다. 범법자와 거짓말쟁이, 눈감고 아웅 하는 사람만 양산하는 정책이라면 지금이라도 폐기해야 한다.

오철환 객원논설위원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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