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없는 법치국가

발행일 2021-07-22 14:19:17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김시욱 에녹 원장
세상은 어처구니없는 일들로 가득하다.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다. 불확실성이 오히려 확실성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연일 최고치를 갈아치우는 코로나19 확진 숫자는 차라리 예견된 불확실성인지도 모른다. 개인의 권리와 이익에 대한 침해임에도 사회적 거리두기 명령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국민들의 희생 또한 언제까지 가능할 것인지 예측하기 어렵다. 최근 수도권의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발표 후, 자영업자들의 자동차 시위는 국민들의 수인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K-방역이라며 국민 전체를 환각 상태로 몰고 가던 사회적 분위기도 현실자각과 더불어 허상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좀비(zombie)화 된 소수 지지층을 제외하고는 현 정부의 ‘사후약방문’에 지쳐 가고 있다.

‘어처구니 없다’는 말과 동일한 의미인 ‘어이없다’의 ‘어이’가 맷돌의 손잡이를 의미한다고 알려진 적이 있었다. 천만 명 이상의 관객을 넘긴 영화 ‘베테랑’의 주연 배우가 영화 속 대사를 통해 마치 그것이 진실이듯 단정적 언어로 말한다. ‘너무 뜻밖이어서 기가 막힌 일’이 영화 속에서 뿐만 아니라 현실 속에서 까지 사실로 받아들여진 점이다. 관객은 영화에 몰두하면서 감정이입을 통해 캐릭터에게 자기 동일화를 형성한다. 동시에 허구적 사실임을 인지하면서도 현실과의 혼돈 속에서 진실처럼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근거 없는 속설이 어느새 정설로 자리잡아가는 과정이다. 소설 속 인물과의 자기 동일화 과정에 나타나는 ‘활성화되는 뇌의 부위에 대한 연구’ 결과는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주요 저자인 티모시 브룸(Timothy Broom)은 “가상의 캐릭터를 생각할 때, 뇌는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할 때의 과정과 비슷하게 보인다”라고 말하고 있다. 분명 맷돌의 손잡이에 대한 국어사전적 단어인 ‘맷손’이 존재함에도 ‘어처구니’와 ‘어이’라는 단어에 매몰되고 있다.

‘선동’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특정 문제에 대한 자신의 주장이나 이데올로기적 설득이 동반된다는 점에서 ‘선전’과 유사해 보이지만 선동의 최종 목적적 의도는 완전히 다르다. 민감한 사회, 경제, 정치적 문제에 대해 글이나 언행을 통해 대중의 ‘정서적 반응’에 호소한다. 대중이 가진 불만과 불평 그리고 분노를 조직화와 소속이라는 상징으로 ‘동일화’시키고 분노의 해결책은 오직 행동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으로 유도해 간다. 대중의 감정적 동요를 치밀하게 분석하고 통일된 행동으로 표출되게끔 이끌어 가는 것이다. 흔히, 선동가에게 예언자적, 순교자적 상징으로 자신을 포장하는 연출이 필요한 이유이다. 아돌프 히틀러와 레닌으로 대표되는 선동의 정치가 성공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행동을 통한 당위’는 그 어떤 합법적 수단보다 우위에 존재하는 것이며 그러기 위해 대중 선동의 파급력이 가장 큰 전국적 ‘정치신문의 필요성’을 역설했던 것이다. 이후 공산주의 국가 대부분이 선전, 선동부를 설치한 것은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박범계 법무부장관이 한명숙 전 국무총리 모해위증 의혹과 관련한 합동감찰 결과를 발표했다. ‘한명숙 정치자금 수수’ 수사팀의 증인들에 대한 위증교사 감찰은 지난해 4월 재소자 최모씨의 편지를 통해 시작됐다. 하지만 최씨는 또다시 편지를 보내 “수사팀의 모해위증은 없었다”고 기존 주장을 번복했다. 최씨의 이 같은 진술 번복은 지난 3월 대검 부장회의에서 한명숙 수사팀에 대한 ‘무혐의’ 결정을 내리는 데 결정적 이유가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상상할 수 없는 추악한 검찰의 비위와 만행이 저질러졌다”는 최씨의 첫 편지 내용만 일부 공개했으며, 모해위증에 대한 실체적 내용을 합동감찰 결과에 단 한 줄도 담지 않았다는 점이다. 실체적 진실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문제를 제기한 절차적 정의 역시 왜곡했다는 비판이 검찰 안팎에서 거세게 일고 있는 이유이다. 법을 전공하고 법집행을 관장하는 수장으로서 수치스러워 해야 할 일이다.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2년을 복역한 한명숙 전 총리를 ‘검찰 수사의 억울한 희생자이며 순교자’로 만들려던 의도는 부끄러운 선동으로 끝난 셈이다. 더욱 재미난 사실은 한명숙 전 총리는 “불의한 정권과 검찰 그리고 언론의 무자비한 공격에 쓰러져 2년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고 주장하며 순국열사와 같은 피맺힌 절규를 연출하고 있다. 또한 조국 사태에 대해서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 등 검찰주의자들의 발호를 아프게 목도했다. 어떻게 검찰 지휘권을 가진 상관을, 온 가족을 볼모로 이토록 무자비하게 도륙할 수 있는가?”라고 했다. 죄가 있어도 조직과 상관 그리고 높은 사람의 불법은 눈감아 주란 말처럼 들린다. 스스로 내 편이면 용서되는 ‘편 가르기’ 프레임에 갇혀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법보다 우위에 존재하는 환각적 ‘선동 정치’가 대선에서도 난무할까 두렵다.

김시욱 에녹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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