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2월 서울중앙지검에서 평검사로 근무할 때 심재륜 고검장 항명 파동이 있었다. 강직한 수사로 후배들에게 신망을 받던 심 고검장이 대전 변호사 법조비리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이 나오자 청와대의 눈치를 보던 당시 검찰총장은 심 고검장을 내치려 했다. 심 고검장은 즉각 항명했고, 나 또한 그를 돕고자 연판장을 만들어 동료들의 서명을 받았다. 당시 항명에 검사들이 함께한 이유는 검찰총장에게 쌓인 불신이 폭발해서다.

지난 19일 심재철 서울남부지검장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제기한 징계 취소소송에 증인으로 나와 “총장이 정말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 공무원으로서 (도리를) 했는가 봤을 때 총장 자격이 없다고 판단했다”고 진술했다. 이 소식에 갑작스레 20년도 지난 항명 사태의 기억이 소환됐다. 1999년 검찰총장을 향한 퇴진 촉구와 심 검사장이 윤 전 총장을 비난한 것은 뿌리부터 다르다. 항명 사태 당시 검찰총장은 정권의 눈치를 살피느라 정권에 대한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반면 윤 전 총장은 정권을 겨냥한 수사 탓에 미운털이 박혔다.

만약 윤 전 총장이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않았다면 당연히 총장 자격이 없다. 하지만 현재 윤 전 총장이 구체적으로 어떤 정치적 중립을 훼손했는지 알 수가 없다. 행정법원도 지난해 12월 윤 전 총장 징계의 집행정지 결정을 하면서 정치적 중립위반 혐의에 대해서 소명자료가 부족하다고 인정하지 않았다. 그나마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기자회견에서 밝힌 것 등을 통해 유추해보면 윤 전 총장이 재직할 때 대선 불출마를 적극적으로 밝히지 않았다는 정도로 보인다.

정치적 중립의 요체는 공정성이다. 윤 전 총장 재직 시 공정성이 심하게 의심받았던 적이 있었는지 기억이 없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구별하지 않고 동일한 기준과 잣대를 적용, 객관적 사실과 법리에 근거해 판단하는 것이 검사에게 요구되는 정치적 중립의 핵심이다.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윤 전 총장이 정치적 중립을 위반했다고 하는 것은 검사로서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며, 그것이야말로 검사의 중립의무를 위반하는 정치적인 행위이다.

1999년 항명 사태 때 나는 사표를 써 놓고 연판장을 주도했다. 하지만 심 검사장은 현 정권의 후광을 업고 윤 전 총장에 대한 공격에 앞장선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간곡히 부탁한다. 검사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고 정치권력에 편승해 누워서 자기 얼굴에 침을 뱉지는 말았으면 한다.

2010년 서울중앙지검 형사부장 시절 심 검사장과 같은 부에 근무했다. 10여 년이 훌쩍 흘렀지만 그의 깍듯하고 강직했던 태도는 지금도 인상적으로 남아 있다. 그때의 그 심재철이 오늘따라 유난히 그립다.

정상환 변호사(전 대구지검 특수부장)



김종엽 기자 kimjy@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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