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에 입당한 야권 대권주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술자리를 두고 말이 많다. 국민의힘 전격 입당으로 정치권 인사들과 스킨십을 늘려가며 대권행보에 가속도를 붙이려면 아무래도 술자리가 제격일 수 있겠다. 술자리는 그만큼 허심탄회한 대화로 정치적 고비를 벗어나는 돌파구를 마련하는데도 그만이다.

윤 전 총장이 국민의힘에 입당하기 며칠 전인 지난달 25일 저녁 그는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와 서울 광진구 건대 맛의거리 한 식당에서 ‘치맥(치킨과 맥주) 회동’을 했다. 이날 회동은 윤 전 총장의 입당여부와 시기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는 듯한 상황에서 마련된 것이라서 이목을 집중시켰다.

지난달 27일 부산을 찾은 윤 전 총장은 국민의힘 지역구의원들과 만나 오찬을 하며 소주로 반주를 곁들였다. 1일엔 민주당을 탈당한 금태섭 전 의원과 소주 번개모임을 가지기도 했다.

이를 두고 여권 대선주자인 이재명 캠프에서 “코로나19 위기에 역행하는 음주파티를 중단하라”며 비난하고 나서자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이 지사의 음주운전 전력을 꼬집으며 “더불어민주당은 대놓고 후보들끼리 모여 술 마셔놓고 왜 지적하나”라고 맞대응하기도 했다.

정가에서는 현안이 엉키거나 중요한 정치적 고비를 넘겨야 할 때 술자리로 돌파구를 찾았다. 대표적인 술이 맥주와 막걸리, 소주 등이다. 이들 모두 서민의 술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그 중에서도 맥주회동이 유독 더 잦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와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도 지난 7월7일 치맥회동을 계획했다가 코로나 신규 확진자가 1천명대를 넘어서자 연기하기도 했다. 4·7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한 달 앞둔 지난 3월 초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90분간 맥주회동을 가졌다. 두 후보는 이 자리에서 후보단일화에 대한 공감대를 이뤘다. 2019년 5월엔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등 여야 교섭단체 3당 원내대표가 맥주 회동을 했다. ‘패스트 트랙(fast track)’ 안건으로 여야간 얼어붙은 분위기에서 3당 원내대표가 맥주잔을 들고 국회정상화 해법을 찾아보자는 의도였다.

정치인들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마시는 맥주는 공식적인 식사보다 훨씬 더 정치적인 활동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2017년 7월 청와대에서 주요 기업인 초청 간담회 때 치킨과 함께 맥주잔을 기울이는 호프타임을 가졌다. 수제맥주와 치킨을 앞에 놓고 허심탄회하게 경제를 이야기해보자는 의미였다. 대선 당시에도 경선과정에서 경쟁했던 주자들과 맥주로 감정의 골을 풀었다.

맥주가 특히 더 정치적 수단의 하나임은 동서고금의 역사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맥주집인 영국의 펍(pub)이나 독일의 비어홀(beer hall), 미국의 태번(tavern)은 예외없이 그 지역공동체의 모임 장소였다. 이곳에서 정보교환이 이뤄지며 여론이 형성되고 때론 선동의 장소로 이용되기도 했다.

히틀러가 대중들을 연설로 휘어잡은 곳도 비어홀인 맥주집이었다. 3천명 이상 들어갈 수 있는 호프브로이하우스 등 대형 맥주집을 돌아가며 행사와 집회를 개최했다. 이곳에서 히틀러는 국가사회주의노동당(일명 나치당)을 창당하기도 했다.

오바마 전 미국대통령은 백악관에서도 직접 맥주를 만들어 마시는 홈브루어였을 정도로 맥주를 좋아했다. 맥주를 통해 서민적인 대통령의 모습을 부각시키는가 하면 아이리쉬펍에서 아일랜드 기네스 맥주를 마시며 아이리쉬계 미국인들의 지지를 끌어내기도 했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맥주를 좋아하는 오바마 대통령을 독일로 초대해 독일맥주 바이젠과 소시지로 오찬을 하기도 했다.

코로나로 온 국민이 힘든 시기다. 정치적으로는 서로에 대한 신뢰가 바닥이고 서로 으르렁거리기만 한다. 뜬금없이 맥주이야기를 꺼낸 것은 꽉 막힌 경제, 얽히고 설킨 정치를 맥주라는 윤활제를 매개로 실타래 풀 듯 술술 풀어냈으면 좋겠다는 뜻이다. 정치권 뿐 아니라 다른 사회 각 분야에서도 맥주회동을 자주 가지라는 주문이기도 하다. 술잔을 앞에 두고 서로를 자극하는 말, 찡그린 얼굴을 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맥주 한 잔 들이키며 느끼는 그 시원함만큼 현안들을 술술 풀어내길 바란다.

박운석(한국발효술교육연구원장)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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