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 다수확왕을 꿈꾸는 귀농 8년차 농부의 열정||고추 한 그루에 건고추 2.5㎏, 다수확

▲ 김주완 대표가 수확기에 접어든 고추의 생육상황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아래쪽에서부터 고추가 익으면 위로 올라오면서 차례로 수확한다.
▲ 김주완 대표가 수확기에 접어든 고추의 생육상황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아래쪽에서부터 고추가 익으면 위로 올라오면서 차례로 수확한다.
초정약수로 유명한 청주시 내수면에 특별한 기념탑이 하나 있다.

‘1982년 전국 쌀 증산왕 수상 기념탑’이다.

수상자는 김△△(당시 청원군 북일면)씨로 단수(1천㎡ 수확량) 886.1㎏이라고 기록돼 있다. 대단한 수확량이다.

충북도지사가 세웠으며 은탑산업훈장을 받은 내용도 포함돼 있다.

정부에서는 1973년 쌀 증산을 위해 쌀 다수확 농가 시상제도를 도입했다.

두둑한 시상금에다 훈장까지 주며 다수확을 적극적으로 장려한 것이다.

쌀 증산왕은 개인은 물론 자치단체의 영광이었다.

카퍼레이드까지 열릴 정도였으니 짐작할 만하다.

식량자급을 위한 다수확이 절체절명의 과제였기 때문이다.

이후 보리와 콩, 참깨, 땅콩까지 확대됐다. 당시 증산왕은 모든 농민의 꿈이었다. 이제 다수확 시상제도는 없어졌지만 다수확은 여전히 농민의 희망이다.

특용작물과 과수 등 모든 분야에서 농민은 다수확에 도전한다.

이제는 다수확과 고품질을 동시에 추구한다.

소득과 직결되고 자부심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밤잠을 줄여 가면서도 다수확에 도전하는 이유다.

다수확에다 고품질까지 유지한다면 금상첨화다.

상주에서 고추 다수확과 고품질을 이룬 강소농이 있다.

시설하우스 고추 4천㎡와 벼 4만3천㎡를 재배하는 ‘더팜 상주고추연구소’의 김주완(57) 대표의 이야기다.

농장이름을 고추연구소로 네이밍했다.

꾸준한 연구를 통해 고추 다수확을 이루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다.

▲ 4그루에서 고추 148개를 한 번에 수확한 모습.
▲ 4그루에서 고추 148개를 한 번에 수확한 모습.
◆고추재배에 건축기술 접목…다수확왕 도전

김 대표는 건축 기술자다.

30년 동안 전국의 큼직큼직한 건축현장을 누볐다. 문경에서 건축 공사를 하고 있을 때 어머니는 고향인 상주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다.

주말이면 어머니의 농사일을 도왔다.

마침 다니던 회사가 구조 조정을 시작하자 귀농을 결심했다.

하지만 농사기술도 없고 농사일에 익숙하지도 않은 상태였다.

가장 먼저 어머니의 반대에 부딪쳤다.

어머니는 “편하게 살라고 공부를 시켰더니 왜 농사를 지으러 고향으로 오냐”며 “다른 사람 눈에는 실패해 귀향하는 아들로 보이는 것이 부끄럽다”고 강하게 반대했다.

하지만 그는 “농사를 잘 짓는다면 수익도 올리고 오랫동안 일 할 수 있는 좋은 직업이 될 수 있다”며 끈질기게 어머니를 설득했다.

어머니의 농사는 자급자족형이었다.

벼를 시작으로 콩과 감자, 양파, 참깨 등 없는 것이 없었다.

일 년 내내 일 속에 묻혀 살았지만 소득은 시원치 않았다.

김 대표는 가격 변동이 적고 고소득이 가능한 작물을 찾다가 고추를 선택했다.

비닐하우스를 짓고 고추재배를 시작하자 주변에서 ‘벼와 오이를 주로 재배하는 넓은 들판에서 고추는 맞지 않다’고 말렸다. 비웃음도 들었다.

6월에 접어들면서 2천여㎡의 고추밭 전체가 잎이 오그라들고 꽃도 피지 않았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이다.

주변에서 ‘파마머리’라고 비아냥거렸다. 오기로 버텼으나 회복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고민 끝에 경북농업기술원으로부터 기술을 지원 받아 과감하게 줄기를 자르고 새순을 받는 작업을 했다.

이후 고추는 정상적으로 자랐고, 4천600근(꼭지를 딴 고추는 1근 500g으로 계산, 2천760㎏)을 수확하는 성과를 올렸다.

이때 기술의 힘을 알았고, 고추재배 기술개발에 뛰어 들었다.

▲ 고추잎이 손바닥만큼 크다. 키가 크고 잎이 넓어야 다수확이 가능하다고 한다.
▲ 고추잎이 손바닥만큼 크다. 키가 크고 잎이 넓어야 다수확이 가능하다고 한다.
◆교육 마니아 농부…공부! 공부! 공부!

첫 해 고추재배를 통해 교육과 기술의 힘을 알게 됐다.

상주시농업기술센터의 영농교육을 시작으로 상주농업대학의 고추 및 채소 재배, 과학 및 친환경 영농 등의 많은 과정을 이수했다.

이론과 현장 기술도 익혔다.

토양학은 물론 수질·기후·화학 등의 기초과학 분야에 대한 교육도 받았다.

교육을 받기 위해서는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지금까지 수료한 교육시간이 1천700시간에 이른다. 흔하지 않은 교육 마니아다.

현재는 벨기에와 멕시코의 전문가가 진행하는 외국의 고추재배 기술에 대한 교육을 받고 있다.

외국의 고추재배 기술과 우리 기술을 비교해 특성화된 새 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밑그림을 그리는 중이다.

온라인 강의를 듣고 이메일로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는다.

이런 과정을 통해 외국의 기술을 습득한다.

마케팅 교육도 빠지지 않는다.

생산 못지않게 판매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는 “주변에서 교육만 받고 일은 언제 하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교육에 투자한 시간만큼 업무의 집중도를 높인다. 또 야간작업을 주로 하기 때문에 일에는 지장이 없다”고 설명했다.

오전 2시까지 일하는 야간작업은 일상이 된 듯했다. 농업이 천직인 듯, 마부작침(磨斧作針,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들듯 끈기 있게 노력함)의 마음으로 쉬지 않고 일하고 공부하는 농부처럼 보였다.

▲ 김주완 대표가 사다리에 올라서서 고추 유인작업을 하고 있다. 포기당 간격이 넓고 퇴비를 많이 넣기 때문에 키가 크고 튼튼하게 자란다.
▲ 김주완 대표가 사다리에 올라서서 고추 유인작업을 하고 있다. 포기당 간격이 넓고 퇴비를 많이 넣기 때문에 키가 크고 튼튼하게 자란다.
◆ 고품질·다수확의 기본은 흙과 물

김 대표에게 농한기는 없다.

겨울철에는 토양관리에 집중한다.

토양을 4회 정도 깊이갈이를 한다. 그런데 그 깊이에 입이 딱 벌어진다.

외날의 심경쟁기로 90㎝ 깊이로 심경(깊이갈이)을 한다.

땅을 완전히 뒤집는 정도의 깊이다.

그 다음에는 심경로터리로 40㎝ 정도 깊이로 로터리작업을 한다.

이후에 다시 2회에 걸쳐 20㎝ 깊이로 로터리 작업을 한다.

일반적으로 1회의 로터리작업을 한 후에 고추를 심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심경을 통해 염류집적을 해소하고 토양공극을 높여 뿌리의 발육을 촉진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폭 7m의 하우스에서 대형트랙터로 심경작업을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최상의 토양환경을 위해서는 그 수고를 감수한다.

660㎡에 11t 정도의 많은 퇴비를 뿌린다.

축분에 참깨와 들깨줄기, 볏짚, 왕겨 등 농산부산물을 넣는다.

산에서 채취한 낙엽, 미생물을 혼합해 완전 부숙 시킨 후 사용한다.

250m에서 끌어올린 암반수를 더 작은 입자의 전자 활성수로 만들어 사용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산도를 PH 6.5~7로 조정해 뿌리가 영양분을 잘 흡수하도록 한다.

해마다 4회의 수질검사, 3회의 토양검증을 실시해 부족한 영양분이나 무기질을 보충하는 것도 고추 다수확을 위한 노력이다.

매일 새벽 지하수를 하우스 내부에 분사해 습도를 조절하고 곳곳에 설치된 공기 순환팬으로 공기를 순환시켜 온도를 조절한다.

이 같은 환경관리 덕분에 노지재배와 비교하면 6~7배의 다수확을 거둔다.

▲ 수확한 풋고추 모습.
▲ 수확한 풋고추 모습.
◆친환경적인 자연농법 추구

병해충은 모든 농작물이 피할 수 없는 숙제다.

일단 발생하면 방제에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많은 농가가 예방을 위해 노력하지만 결과는 만족스럽지 않다.

김 대표는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한단다.

농장에 외부인의 농장출입을 억제해 병원균의 유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이 첫 번째다.

입구에 출입금지 표지판을 설치하고 사전 협의한 인원만을 출입시킨다.

물론 완벽한 소독을 거쳐야만 된다.

이런 까다로운 조치에 방문객들이 불만을 터트리지만 불가피한 선택이다.

방문객의 대부분이 고추를 재배하는 농민이기 때문에 다른 농장의 병원균이 옮겨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

두 번째는 가급적 친환경제재로 방제하는 것이다.

자리공과 은행, 고삼(너삼)을 삶아서 천연살충제로 쓴다.

황토유황제재를 만들어서는 천연살균제로 사용한다.

친환경적인 재배농법이라고 한다.

아직 정식으로 친환경 인증을 받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는 친환경 인증을 준비하고 있다.

이 같은 친환경 제재를 활용한 예방 위주의 방제를 통해 병해충 발생을 막는다.

야간에 하우스를 완전 밀봉하고 연막방제기를 이용해 방제한다.

연막방제기를 이용하면 미세한 입자가 하우스 내부에 골고루 퍼지기 때문이다.

밀봉한 하우스를 아침에 개방해 병원균을 완전 멸균시킨다. 야간에는 기온이 낮아 작업이 편한 장점도 있다.

▲ 김주완 대표가 두 팔을 뻗어 크게 자란 고추 높이와 비교를 해 보이고 있다. 3m를 넘길 정도로 자란다.
▲ 김주완 대표가 두 팔을 뻗어 크게 자란 고추 높이와 비교를 해 보이고 있다. 3m를 넘길 정도로 자란다.
◆지금껏 받은 혜택을 사회로 환원

이제는 자신이 받은 혜택을 지역에 돌려주고 싶다고 한다.

지금껏 받은 혜택보다는 작지만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겠다는 것이다.

먼저 자신의 고추 다수확 기술을 지역의 고추 농가와 공유해 농가들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했다.

희망하는 농가에게 재배기술을 공개하고 현장 기술지도를 지원하겠다는 것.

농장 인근에 귀농인을 위한 주택을 건립하고, 귀농귀촌 공동체를 구성하는 계획을 진행 중이다.

이미 7개 동의 건물을 건축할 수 있는 부지도 마련했다.

대형 유리온실을 건립해 고추농사에 한정하지 않고 딸기와 파프리카 재배까지 영역을 확대하는 방안도 계획 중이다.

어르신과 장애인 등 취약계층에 대한 고춧가루 나눔 봉사활동도 준비하고 있다.

올 가을에는 지역 사진 작가회와 함께 농장에서 고추사진 전시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농장을 단순한 농산물 생산현장을 넘어 문화예술 공간으로 업그레이드해 나가기 위한 것이다. 고추농장에서 열리는 고추사진 전시회가 기대된다.



글·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민간전문위원)



이동률 leedr@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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