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살된 귀여운 남자아이가 엄마와 함께 진료실에 들어왔다. 호기심이 많아 진료실 여기 저기에 눈길을 주었고, 엄마는 아이가 산만하다고 요즈음 많이 걱정하는 주의력 결핍 행동과다 증후군 (ADHD: attention deficit hyperactive disease)이 아닌가 걱정 된다고 했다.

진단을 위해 16개의 문항으로 이뤄진 코너 점수(Corner’s scale)를 체크했으나 ADHD에 해당하지 않고 나이도 너무 어려 다시 자세하게 아이에 대해 물어봤다. 늦게 퇴근하는 아빠와 놀기 위해 잠을 자지 않았고, 워낙 활동량이 많은 아이라 어떻게 하든 잠자리에 드는 시간을 뒤로 미루기 위해 떼를 쓰기도 했고, 낮잠도 거의 자지 않았다.

어른들은 잠이 모자라면 꼬박 꼬박 졸게 되지만, 어린 아이들은 잠이 충분하지 못하면 주의력이 떨어지고, 충동억제가 안 돼 과잉행동 가능성이 높아지며, 신체적 사고를 당할 위험도 훨씬 커진다.

대구와 아프리카의 합성어인 ‘대프리카’로 불릴 만큼 대구는 여름에 유난히 더운 곳이다. 나무를 무척이나 사랑했던 문희갑 전 대구시장의 노력으로 대구에 많은 나무들이 심겨지면서, 전국에서 가장 더운 지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한밤의 기온이 영상 25℃가 넘는 열대야 현상이 지속되면서 잠 못 이루는 밤이 늘어나고 있다.

영국 의학협회 발표에 따르면 17시간 이상 깨어 있는 상태로 운전하면 혈중 알코올 농도 0.05% 정도의 음주운전과 비슷하다고 한다. 어른이 잠이 부족하게 되면 처음에는 자극에 대한 반응시간이 조금씩 느려지게 되고, 그러다 점차 기억력이 떨어지고 기분이 가라앉는다. 수면부족이 만성화되면 약간의 환각상태에 빠질 수 있다. 만성적인 수면 부족은 기분을 매우 우울하게 만들므로 수면부족은 우울증의 원인이 된다.

그뿐만 아니라 잠이 부족하면 식욕억제 호르몬인 렙틴의 분비가 줄어들면서 과식의 위험이 높아져 체중이 늘어난다. ‘미인은 잠꾸러기’라는 광고 카피처럼 잠을 충분히 자면 피부를 밝고 맑게 해주는 호르몬인 멜라토닌의 분비가 촉진돼 피부 미인이 된다. 이처럼 충분하지 못한 수면은 신체적인 영향은 물론 감정적 문제와 나아가서는 인지적 문제, 사회적 발달의 문제까지 유발할 수 있다.

최근 의사들이 적절한 수면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면서 수면 클리닉이 많이 만들어졌고, 의료보험으로 수면다원화 검사가 가능할 뿐 아니라 가장 보편적인 치료인 양압기(C-PAP) 사용도 의료보험으로 지원되며, ‘하지 불안증후군’에 대한 치료법도 개발돼 있다.



성인들과 달리, 어린 아이들은 잠을 잘 자지 못하면 키가 자라기 위한 필수 성장호르몬 분비가 떨어져 성장에 어려움이 생긴다. 그리고 앞서 살펴본 아이처럼 잠이 부족하면 우리 뇌 가운데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전전두엽은 생각을 체계화하고 자신의 행동결과를 인식하고 예측하는 능력인 실행기능을 담당하는 매우 중요한 곳이다.

우리나라는 옛날부터 잠을 많이 자면 게으르다고 생각해 잠이 많으면 당연히 공부를 잘 못할 것이라고 짐작했다. ‘사당오락(四當五落)’이라고 하루에 겨우 다섯 시간을 자는 수험생들을 불안과 죄책감에 떨게도 했다.

하지만, 우리의 뇌 가운데 바다에 사는 해마의 모양과 닮았다고 해서 ‘해마’라 이름 붙여진 곳의 역할이 점점 알려지고 있는데, 해마는 단기 기억이 저장되는 곳이다. 해마에 저장됐던 단기 기억이 잠을 자는 동안 대뇌와 연결되면서, 마치 도서관에 문학, 역사, 과학 등의 서재로 분류되듯 장기기억으로 이행하기에 공부를 잘하기 위해서는 숙면이 필수적이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위해 대한수면학회에서는 건강한 수면을 위한 십계명으로 다음과 같이 권하고 있다.

1.규칙적인 기상, 취침 패턴을 유지하자. 2.잠들기 직전, 먹고 마시는 것을 피하라. 3.뇌를 각성하는 카페인 함유 음식과 니코틴을 피하라. 4.낮에 밝은 태양 아래에서 30분 이상 운동하라. 5.실내는 신선하게 유지하고 손발은 따뜻하게 하라. 6.낮잠은 15분 이내로. 7.잘 때는 TV를 끄고 스마트폰의 카톡이나 게임은 잠들기 한 시간 전에 끝내라. 8.침실은 수면만을 위한 편안한 공간으로 사용하라. 9.수면 전에 스트레스와 긴장을 풀어주라. 10.억지로 잠을 청하지 말라.

“새나라의 어린이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납니다”라는 가사는 만고의 진리이며, 어린아이에서부터노인에 이르기까지 대프리카의 잠 못 이루는 밤이 없는 건강한 여름이 되기를 기대한다.

김준식 계명대학교 동산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저작권자 © 대구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