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년 붉은 마음 동해를 깊이 열어/해무에 떠오르다 만파에 굳은 아픔//이제 온 보티첼리가/한눈파는 꽃 덤벙//우주의 둥근 하루 무한에 기대 누워/유연한 물빛 타고 열리는 흑 가리비//저마다/사랑하는 이/비너스로 세운다

「시조미학」 (2021, 여름호)

유정숙 시인은 경북 경주 출생으로 2021년 시조미학 신인상 당선으로 등단했다. ‘양남 주상절리’는 2012년 9월25일에 천연기념물 제536호로 지정됐다. 경상북도 경주시 양남면 공유수면 일대에 위치하고 있다. 육각 또는 오각기둥 모양의 수직단열이다. 이곳 해변에는 10m가 넘는 정교한 돌기둥들이 1.7㎞에 걸쳐 분포해 있으며, 주름치마, 부채꼴, 꽃봉오리 등 다양한 형태의 주상절리가 존재한다. 그리고 몽돌길, 야생화길, 등대길, 데크길 등 해안 환경을 고려한 테마로 1.7㎞에 걸쳐 주상절리 전 구간을 산책할 수 있는 파도소리길이 조성돼 있어서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당기는 관광명소다. 누구나 처음 맞닥뜨리게 되면 감탄을 금치 못할 정도로 아름답다.

‘양남 주상절리’에서 화자는 천만년 붉은 마음 동해를 깊이 열어 해무에 떠오르다 만파에 굳은 아픔을 읽는다. 그리고 곧장 상상력을 발휘해 이제 온 보티첼리가 한눈파는 꽃 덤벙이라는 현재적 의미 부여를 한다. 보티첼리는 누구인가? 푸른 바다의 거품으로부터 태어나 조개껍데기를 타고 있는 아름다움의 여신 비너스를 그린 화가다. ‘비너스의 탄생’에서 비너스는 로마 신화에 나오는 여신이다. 누구나 양남 주상절리 앞에 서면 우주의 둥근 하루 무한에 기대 누워 유연한 물빛 타고 열리는 흑 가리비를 쉬이 연상하게 될 것이고, 마침내 저마다 사랑하는 이를 그 한가운데에 비너스로 세우든지 아니면 자신이 그 자리에 서서 비너스가 되지 않겠는가? 그만큼 양남 주상절리는 정교한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 단박에 혹해버릴 만큼 신비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어서 제주 중문 주상절리와는 극명하게 대비된다. 중문 주상절리는 웅장해 남성성이 강한 반면 양남 주상절리는 섬세해 여성성이 돋보인다. 이 땅에서 한평생을 살면서 양남 주상절리는 꼭 가봐야 할 명승지다.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많은 자료가 나온다. 사진이나 영상으로 보는 것도 좋지만 직접 대면해 몸으로 부딪쳐보라.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자아의 비너스의 탄생이라는 경이로운 순간과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또한 유정숙 시인은 ‘독도’를 통해 나라 사랑에 대한 노래를 곡진하게 부르고 있다. 구름 낀 하늘을 이따금 쳐다보면서 아픔을 삭이는 별의 뜻 읽으라고 너처럼 자우룩한 슬픔을 헤아리는 나의 섬인 독도를 생각한다. 별의 뜻과 깊은 슬픔을 다 헤아릴 수는 없지만 동해 바다 끝자락에 우뚝 솟은 핏줄 같은 섬에 대한 그리움이 와락 밀려드는 느낌이다. 그리해 동해 멀리 망망 바다 바위벼랑 내려서면 저 바닥 꿈틀꿈틀 솟아나는 사랑을 화자는 온몸으로 받아 안는다. 그럴진대 어찌 아늑한 발길 더듬어 와락 안아 보지 않겠는가. 이를 두고 손증호는 독도 사랑을 강요하지 않으면서 가슴 속 깊이 독도를 품도록 하는 은근한 접근 방식이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고 있다고 본다. 적실한 평가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가치관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자신을 경영해 나간다. 자연이 빚은 비경 양남 주상절리를 통해 미의 세계에 대해 궁구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이는 곧 심미안을 기르는 일이다. 그러므로 일상에 쫓기더라도 때로 주상절리 앞에 서거나 독도를 마음에 한 번씩 품어 보자. 삶에 활력과 여유가 생길 것이다.

이정환(시조 시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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