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혁거세, 석탈해왕, 미추왕 등의 흔적을 찾아

▲ 삼국유사기행단이 지난 14일 나정, 오릉, 석탈해왕릉, 미추왕릉 등을 돌아보며 역사문화에 대한 스토리텔링 작업에 나섰다. 기행단이 나정에서 신라 건국기에 대해 스토리텔링하고 있다.
▲ 삼국유사기행단이 지난 14일 나정, 오릉, 석탈해왕릉, 미추왕릉 등을 돌아보며 역사문화에 대한 스토리텔링 작업에 나섰다. 기행단이 나정에서 신라 건국기에 대해 스토리텔링하고 있다.


대구일보가 주관해 운영하는 삼국유사기행단이 신라 건국의 역사 현장을 둘러보는 삼국유사 기행에 나섰다.

대구일보는 삼국유사기행단을 조직해 매월 한 차례 삼국유사 기록 현장을 찾는 삼국유사 기행을 진행하고 있다.

이를 통해 신라와 고구려, 백제 등 삼국의 역사문화를 새로운 시각으로 흥미롭게 스토리텔링하며 문화콘텐츠를 육성하고 있다.

이번 달 삼국유사 기행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확진자와의 접촉이 없는 희망자 20명이 참가한 가운데 마련됐다.



▲ 삼국유사기행단이 지난 14일 나정, 오릉, 석탈해왕릉, 미추왕릉 등을 돌아보며 역사문화에 대한 스토리텔링 작업에 나섰다. 기행단이 미추왕을 추모하는 숭혜전에서 스토리텔링하고 있다.
▲ 삼국유사기행단이 지난 14일 나정, 오릉, 석탈해왕릉, 미추왕릉 등을 돌아보며 역사문화에 대한 스토리텔링 작업에 나섰다. 기행단이 미추왕을 추모하는 숭혜전에서 스토리텔링하고 있다.


이번 기행에서는 신라가 나라로 발전하는 건국기로 신라 초대왕 박혁거세, 석탈해왕, 미추왕 등의 흔적을 찾아 당시의 역사를 새로운 이야기로 꾸미는 스토리텔링의 시간을 가졌다.



박혁거세 탄생지로 알려지는 나정과 죽음의 현장인 오릉을 둘러보고, 4대 왕으로 석씨의 시조가 된 석탈해왕의 흔적 탈해왕릉, 그의 사당인 숭신전, 최초 김씨의 왕이 됐던 13대 왕릉인 미추왕릉과 사당 숭혜전과 함께 탈해왕이 배를 타고 신라로 들어왔다는 설화의 현장인 석탈해탄강지를 방문했다.



신라 시조인 박혁거세가 탄생한 곳으로 알려진 나정에는 발굴 과정에서 알려진 우물터와 시조 탄강을 기념하는 유허비가 세워져 있다.

특히 불국사 대웅전 크기와 비슷한 규모의 팔각 건물터를 확인했으며, 회랑지와 우물터가 드러나 박혁거세의 설화가 단순한 신화에서 역사로 전환된 계기가 됐다는 점을 알게 됐다.



신라 13대 왕인 미추왕은 김알지의 후손으로 김씨 최초로 왕이 된 석씨 왕의 사위였다. 미추왕은 백제의 침입을 여러 번 막았으며, 백성을 사랑한 까닭에 궁궐을 고쳐짓자는 신하들의 이야기도 듣지 않았다.

왕은 죽어서도 죽엽군을 내어 나라를 지켜내고, 나라를 떠나려는 김유신 장군을 만류하는 등 나라를 사랑한 왕이라는 설화가 전해진다.



신라 4대 왕릉인 석탈해왕릉은 금강산자락 소나무 숲에 둘러싸여 있다.

3대 유리왕의 유언으로 62세에 왕위에 올라 24년 간 재위에 있으면서 나라 이름을 계림국으로 바꾸기도 했다.

양남면 월성원자력본부 남쪽에는 용성국으로부터 도착한 석탈해탄강 유허지가 있다. 이곳에는 유허비와 비각이 유일한 흔적으로 남아있다.



탈해왕은 죽어서 토함산신이 됐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토함산 정상에 석탈해왕을 추모하고자 설치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당터가 최근 발굴되기도 했다.



김구석 경주남산연구소장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등의 다양한 역사 서적의 기록에는 다소 차이는 있지만 박혁거세가 나정에서 탄생했다는 점과 석탈해왕은 용성국의 사람으로 산신이 됐다는 것은 공통적으로 전해지고 있다”며 “신라의 건국 역사는 신화 같은 설화로 내려오고 있지만 여러 유물을 통해 역사적 사실로 재조명되고 있다”고 해설했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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