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아침, 김원웅 광복회 회장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편향된 역사관을 드러내 보였다. 대선을 앞둔 민감한 시기에 공인으로서의 정치적 중립의무도 저버린 철부지 돌출 언행이다. 이승만 정권을 친일파 정부라고 비난하고, 그 작곡자를 친일파로 규정하면서 애국가를 폄훼한 그의 전력이 떠오른다. 빛을 회복한 날이라는 광복의 날, 아직 빛을 되찾지 못했다는 푸념은 어이없고 생뚱맞다. 그렇다면 언제 광복했단 말인가. 자가당착이자 자기부정이다.

연합군으로 한반도에 들어온 미군은 점령군이라는 말로 적대적으로 평가하고, 같은 연합군으로 진주한 소련군은 해방군이라는 말로 호의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점령군이란 말 속엔 한반도를 점령해 식민지로 만든 군대라는 저의가 담긴 반면 해방군이란 말 속엔 일제 식민 상태에서 해방시켜준 군대라는 숨은 뜻이 엿보인다. 그게 아니면 점령군이든 해방군이든 양자를 동일하게 불러주는 것이 맞는다. 북한이 양자를 달리 부르기 때문이라면 종북좌파의 올가미를 씌워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납득할 만한 고증도 없이 이승만 정권은 친일파 정권이라 결론짓고 설상가상 조선총독부 법통을 이어받았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말 얼토당토않은 해괴한 주장이다. 일본의 항복으로 독립을 이루고 유엔 감시 하에 총선을 실시해 합법적으로 출범한 대한민국 정부를 조선총독부 법통을 이어받았다니 할 말을 잊을 뿐이다. 일고의 가치도 없는 억지주장이다. 우리 선조들의 소중한 선택을 무단히 부정하는 터무니없는 생떼이고 대한민국의 존립과 정통성을 부인하는 반국가적 망발이다. 누워서 침 뱉기다.

이승만 친일 정권은 4·19로 무너졌고, 박정희 군사정권은 자체 붕괴됐으며, 전두환 정권은 6월 항쟁에 무릎 꿇었고, 박근혜 정권은 촛불혁명으로 탄핵됐다는 식으로 폄하하고 있다. 이 또한 잘못된 인식에 터 잡고 있다. 이승만 정권은 친일이 아닌 독재와 부정선거에 항거한 4·19로 막을 내렸고, 박정희 정권은 측근 세력 간 권력투쟁으로 무너졌으며, 전두환 정권은 국민투표에 의해 다음 정권으로 이어졌고, 박근혜 정권은 측근의 국정농단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으로 중도하차했다. 6월 항쟁은 대통령직선제를 쟁취한 시민운동이다. 이러한 기본적 사실마저 왜곡하는 자가 버젓이 행세하는 현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건군의 주역 백선엽 장군에 대한 평가도 국립묘지 파묘를 주장할 정도로 야박하다. 일제 때 간도특설대에서 활동하고 창씨개명을 했다는 이유다. 1920년생인 백 장군은 일제하에 태어나 그 제도권에서 교육받았다. 무의식적으로 일제의 시스템 속에 젖어들 수밖에 없었을 터다. 독립운동을 한 분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부관참시 할 정도는 아니다. 일제 때 수많은 선남선녀가 서슬 퍼런 강압에 못 이겨 창씨개명을 하고 신사참배에 동참했다. 당시의 그런 일상을 갖고 친일파로 매도하는 것은 표를 의식한 정치적 상징 조작이다.

일제의 제도적 틀에 순응했다는 이유로 친일파 낙인을 찍어 손가락질하는 행태는 이젠 지양해야 한다. 망국의 책임을 지고 비난받아 마땅한 자는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긴 그 당시 지도층이다. 무능한 황제와 부패한 지배계층이 나라를 팔아먹은 원흉이다. 피지배계층에게 적극적 의미의 책임을 묻기 힘들다. 식민치하에서 태어난 백성은 억울한 피해자일 뿐이다. 독립운동에 가담하지 않고 제도권에서 빌붙어 살았다고 대부분의 백성을 비난하는 것은 지나치게 가혹하다. 그 시대를 겪어보지 못한, 좋은 시절에 태어난 후손이 불행한 시대를 살다간 선조를 향해 돌을 던지는 일은 불손하고 무뢰하다.

잘한 것은 내 탓이고 잘못한 것은 조상 탓이라고 한다. 그래선 책임 회피와 다툼 밖에 남지 않는다. 너나 할 것 없이 내 잘못부터 찾는 것이 순리다. 종교적 차원에서 ‘내 탓이오’란 캠페인을 벌인 적이 있다. 모두 다 내 탓으로 돌리는 마음가짐을 가진다면 상호간 질시와 반목, 갈등과 분열이 존재할 여지가 없다. 정치공학적 계산의 반일몰이로 국민을 갈라 치는 일은 소탐대실이다. 불행한 과거사에 대해 일본 탓만 하는 것은 하수다. 모두 다 우리가 못난 탓이다. 광복 76년, 이젠 성숙하고 세련된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봐야 한다. 과거를 역사에 맡기고 미래를 향해 나아갈 때다. 빛을 되찾았으니 어둠은 털어버리자.

오철환 객원논설위원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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