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어떤 나라에 성질 고약하면서도 난폭한 왕이 있었다. 그는 전쟁 중에 부상을 당해 한쪽 눈을 잃고 외눈박이가 됐다. 자격지심에 더욱 포악해진 왕은 온 백성이 자신을 숭배하도록 하기 위해 위엄이 넘치는 초상화를 그리도록 했다.

왕의 명에 따라 대신들은 그 나라에서 가장 실력이 뛰어난 화가를 찾아 초상화를 그리게 했다. 완성된 초상화를 받아 본 왕은 대노하며 화가를 사형에 처했다. 사실 그대로 외눈박이 얼굴을 그렸기 때문이었다. 새롭게 선발된 화가는 두려움에 떨며 왕의 얼굴에 없는 한 쪽 눈까지 그려 넣었다. 하지만 그도 역시 목숨을 잃었다. 진짜 얼굴을 그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세 번째 화가가 다시 왕의 초상화를 그렸다. 그는 왕의 옆모습을 그렸다. 눈이 있는 쪽의 얼굴 모습이었다. 사실적이면서도 보기 흉한 다른 쪽도 가리는 기지를 발휘한 화가는 큰 상을 받았다.

몇 년 전 어느 매체에 실린 김기석 성공회대 교수의 글에서 읽은 우화다. 이 이야기에서 얻어야 할 교훈은 뭘까. 자기의 목숨을 구하고 큰 상까지 받은 세 번째 화가의 번뜩이는 기지일까. 아니다. 외눈박이 왕은 하나의 시각만을 허용했다. 보기 흉한 자신의 한쪽 모습은 감추고 다른 한쪽만 보라는 강요였다. 그런데 어떤 사안을 두고 한쪽 측면만 보다 보면 이게 어느새 고정관념이 된다. 이런 아집을 경계하라는 것이 이 우화의 교훈 아닐까. 김 교수는 이 글에서 “과연 우리가 보고 싶어 하는 것은 무엇이고, 감추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묻고 있다.

조선시대 중기 시인이자 문신인 백호(白湖) 임제(林悌 1549~1587)의 일화가 주는 교훈도 이와 비슷하다.

하루는 임제가 이웃 동네의 잔칫집에서 기분 좋게 취했다. 얼큰한 취기에 한쪽 발엔 가죽신을 신고, 다른 쪽엔 나막신을 신고 말에 올랐다. 하인이 짝짝이로 신었다며 말하자 그는 도리어 하인을 꾸짖었다. “어차피 오른쪽에 있는 사람은 가죽신만 볼 터이고 왼쪽에 있는 사람은 나막신만 볼 텐데 무슨 문제란 말이냐!”

정민 한양대 교수가 그의 저서 ‘죽비소리’(마음산책)에서 소개한 내용이다. 말을 기준으로 해서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그가 신고 있는 신발도 달리 보인다. 그래서 자기가 본 것, 자기가 생각한 것이 옳다고 한다. 반대편은 내가 본 것과는 다를 것이라고는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정면에서 보면 오른쪽엔 가죽신을 신고, 왼쪽엔 나막신을 신고 있음을 단박에 알 수 있는데도 그럴 생각은 애초에 없다. 이런 고정관념이 확신으로 굳어져 서로 “가죽신을 신었다”, “아니다, 나막신을 신었다” 싸움판만 벌인다.

문제는 싸우면서도 짝짝이 신발인지 아닌지 한눈에 알 수 있는 앞쪽에 서서 볼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저 내가 서있는 자리에서 보는 것이 진리라고 우길 뿐이다. 더 큰 문제는 말의 정면에 서있는 사람조차도 침묵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른쪽에 선 사람이 “가죽신”을 외치고 왼쪽에 선 사람이 “나막신”을 외치며 싸울 때도 짝짝이 신발을 신었음을 알려주지 않고 외면하고 있다. 500여 년 전의 백호 임제가 오늘날 우리에게 던지는 교훈이다.

문득 류시화 시인의 시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이 생각난다. 그는 외눈박이 물고기인 비목어(比目魚)를 통해 사랑을 표현했다.

‘두눈박이 물고기처럼 세상을 살기 위해 / 평생을 두 마리가 함께 붙어 다녔다는 /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比目)처럼 / 사랑하고 싶다’

시인의 시에서 비목어는 사랑을 상징한다지만 현실에선 그 반대다. 외눈박이 물고기가 보는 세상은 한쪽뿐이다. 다른 쪽은 알 수도, 볼 수도 없다. 다른 쪽은 두 마리가 짝을 이뤄야 비로소 볼 수 있다. 암수의 눈과 날개가 각각 하나씩이어서 짝을 짓지 않으면 날지 못하는 상상 속의 새 비익조처럼.

눈 두 개가 몸 한쪽으로 몰린 광어(넙치), 도다리 등도 비목어라 부른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광어, 도다리처럼 한쪽만 보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졌다. 두 마리가 짝을 지어야 반대편을 볼 수 있고, 날아오를 수 있음을 외면한다. SNS엔 이들의 확신에 찬 고정관념이 넘쳐나고 있다. 두 눈을 뜨고 있으면서도 굳이 한쪽만 보려고 애를 쓰니 이들이 비목어, 즉 외눈박이 물고기 아닌가.

박운석(한국발효술교육연구원장)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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