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정류장/박희정

발행일 2021-08-17 15:46:47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바다로 가는 버스는 아직 오지 않았다/모래가 둔덕 만들고 파도가 길을 부른/주문진 향호해변에 BTS정류장 푸르다//도착시간, 출발시간은 애초부터 없었다/발길 닿는 대로, 성근 마음 이르는 대로/젊음의 스펙트럼이 물때처럼 촘촘한 곳//수수께끼 풀어놓듯 노래하며 신화 쓰듯/당당히 자신을 향해 쉼표 찍는 봄날 오후/후렴구 밀물에 닿자 바다정류장 만원이다

「정형시학」(2021, 여름호)

박희정 시인은 경북 문경 출생으로 2002년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길은 다시 반전이다’, ‘들꽃사전’, ‘마냥 붉다’(현대시조 100인선) 등이 있다.

‘BTS정류장’은 방탄소년단의 이름을 딴 정류장이다. 강릉시 주문진읍 향호해변에 있는 방탄소년단 ‘봄날’의 앨범 촬영지다. 현재까지 방탄소년단은 전 세계에서 2천만장 가량의 음반을 판매했고, 대한민국 역대 최다 음반 판매량을 기록한 음악 그룹이다. 5개의 빌보드 뮤직 어워드, 4개의 한국대중음악상, 2개의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등을 수상했으며, 대한민국 정부 화관문화훈장 최연소 수여자다. ‘BTS정류장’에서 화자는 바다로 가는 버스는 아직 오지 않았다, 라면서 모래가 둔덕 만들고 파도가 길을 부른 주문진 향호해변에 BTS정류장이 푸른 것을 유의미하게 바라본다. 그리고 도착시간, 출발시간은 애초부터 없었다면서 발길 닿는 대로, 성근 마음 이르는 대로 젊음의 스펙트럼이 물때처럼 촘촘한 곳에서 잠시 깊은 생각에 잠긴다. 방탄소년단은 실로 수수께끼 풀어놓듯 노래하며 신화 쓰듯 당당히 자신을 향해 쉼표 찍는 봄날 오후의 시간을 스스로 마련했고, 그 파장은 세계적으로 퍼져나가서 세계인의 심장을 부단히 두들기는 음악으로 자리 잡았다.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꿈같은 일이 무진장 들끓어 오르는 현실이 됐고, 그 파급효과는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그래서 후렴구 밀물에 닿자 바다정류장이 만원이 되는 것이다. 한 사람의 여행객인 시의 화자는 이미 전설이 된 음악 그룹의 이름으로 서 있는 정류장에 머물면서 자신의 향방과 내면 그리고 시인으로서 갖춰야할 기량과 덕목을 골똘히 생각했을 법하다. 예술의 길은 엇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는 또 ‘어떤 알갱이’에서 우리가 처한 엄중한 현실을 노래하고 있다. 발붙일 곳 없어요, 환영받지 못해요, 라면서 때때로 떠다니며 당신들을 위협하는 마스크 촘촘한 틈으로 빨려드는 알갱이에 대한 두려움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 위협은 생명과 직결되는 일이기에 불안하다. 늘 걱정이 앞선다. 철저한 방역뿐이다.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갈가리 들쑤시고 끈끈한 목숨마저 쉼 없이 쥐락펴락하면서 망할 것, 지구촌 구석구석 낭설까지 넘쳐나니 더욱 조심스럽고 걱정으로 안절부절못한다. 또 한 편 ‘라르고의 봄’을 보자. 음계와 음계 사이 벚꽃이 노래할 때 너는 연주 하네, 하늘하늘 춤을 추며 봄날은 점점 익어가고, 빗소리는 낮아가고 있다고 노래한다. 그리고 오래도록 사모했던 베토벤, 브람스도 알레그로와 라르고 건너 네 곁을 스쳐지나 피아노 깊은 울림에 호흡이 슬며시 눕는다. 못갖춘마디, 그 음보는 긴장하듯 솔깃하듯 오케스트라 곡선 아래 묵음으로 스며들어 잠잠히 늦봄을 노래하다가 꽃비 돼 흐르고 있다. 라르고는 매우 느린 속도로 폭넓게 연주하라는 말이고, 알레그로는 빠르게이다. 제목이 ‘라르고의 봄’이므로 봄날을 느긋하게 보내고자 하는 화자의 바람을 읽을 수 있다. 베토벤과 브람스와 함께.

이정환(시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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